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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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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주소

하리 조회수 : 815
작성일 : 2021-03-12 09:36:14
아버지 돌아가시고 말소자 초본을 떼었어요
그동안 생각지도 않고 살았던 아버지의 역사가 그 초본에 적혀있더군요
50여년 전
어렸을적 아버지는 건설업을 하셔서 집에 거의 안계셨는데 먼곳에서 그림책이며 옷, 가방, 신발등을 때에 맞춰서 보내줬어요.
초등 입학 전에는 그림책을 보내줘서 시골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며 늘 그 그림책을 보며 지냈어요
초등학교 입학 할 때는 빨간색 책가방과 빨간 운동화.
그리고 학년 올라 갈 때마다 잠바스커트와 하얀색 타이즈, 까만 구두.
판탈롱 바지와 조끼 등 시골에서는 본 적도 없는 것들을 보내줬어요.
판탈롱 바지를 입으면 남자애들이 나를 '나팔바지' 라고 놀려서 안입겠다고 떼를 쓰며 울기도 했어요.
고모들한테 오백원 받고 입곤 했어요
내가 열살쯤 되었을때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엄마는 나에게 주소를 주며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어요.
'아빠 너무 보고싶어요. 얼른 돌아오세요...'
마루에 업드려서 엄마가 불러주는데로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요.
강원도 고성군 간성..
그런 주소들이 희미하게 기억이 났었죠.
어린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그 주소가 생각이 났어요.
아마도 그 주소를 보면서 아빠를 그리워했던 기억때문이겠지요.
마을 높은 곳에 올라 기러기떼가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빠는 어디에 계실까. 언제 돌아오시나'하며 시린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한숨섞인 엄마의 노래
이미자의 '기러기아빠' 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바로 눈물이 나요.
강원도 고성군 간성
그곳은 우리 가족에게 평생을 지고 갈 슬픔과 아픔을 준 곳인데 왜 나에게는 그리움이 한조각 얹어진 곳이 되었는지
그러다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마주한 그 주소.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아~ 내가 10살때 아버지는 그곳에 가셨구나
마루에 업드려서 편지쓰던 때가 바로 그 때였구나
아버지의 초본 속에 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었어요
아픔과 슬픔만 주었던 주소들..
그런데 이상하게 언젠가 강원도 간성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닌데도 왜 그 곳에 가보고 싶은건지..
왜일까. 왜일까..
그런 생각에 휩쌓여 있는 요즈음 입니다.
IP : 116.127.xxx.16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ggg
    '21.3.12 9:49 AM (211.199.xxx.87)

    글을 잘 쓰세요.
    옛날 아버지들은 그런 분이 많았지요.

  • 2. ㅜㅜ
    '21.3.12 9:52 AM (121.141.xxx.138)

    님 글을 보니,, 제가 슬프고.. 아련하고.. 억울하고.. 밉고.. 그러네요..
    힘내세요.

  • 3. 아빠
    '21.3.12 9:56 AM (180.211.xxx.2) - 삭제된댓글

    정말 글을 잘 쓰시네요
    오늘 저희 아빠 생신이라 그런지 읽으면서 괜히 가슴이 저릿하고 눈물이 나요
    비오는 날 연세 드시고 약해지신 아빠 생각햐면서 기분이 좀 쳐져서 더 그런가 싶기도 하구요
    아버지께서는 다른 가정 꾸리고 멀리 계셔도 어린 따님 많이 아껴 주셨나 봐요

  • 4.
    '21.3.12 10:07 AM (114.205.xxx.69)

    단편 소설 한편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아버지의 주소라는 제목 또한 그옛날 신경숙이나 공선옥 류의 소설집 제목같아요.

  • 5. 원글
    '21.3.12 1:36 PM (116.127.xxx.16)

    멋진 분들이 댓글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마음에 무엇인가가 일렁일 때마다 꼭 이곳에 글을 쓰고 싶어져요
    공감 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글을 쓸 때는 담담한 마음으로 썼는데 댓글을 읽다가 서러운 마음에 눈물샘이 터져버렸네요
    지금은 아버지도, 그 여자도 가고 없으니 억울하고 서러워도 어디 따져물을데도 없어요
    우리아버지. 왜 그랬어요?
    어렸을 때 나를 더 봐주고 예뻐해주지..
    그 결핍이 얼마나 사람을 목마르게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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