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문득 떠오른 신비한? 신기한 기억
그때 직장이 서울이지만 산자락을 끼고 있는 곳에 있어서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암자 들이 많았거든요. 뭐 수월암 보살암 미타사 해월사 이런거요. 가보면 대웅전 역할을 하는 삼간 전각 하나가 전부인 작은 절들이요.
직장 뒤에도 그런곳이 하나 있었는데, 제가 불교집안임에도 직장생활 5년간 한번도 안가봤어요.
근데 그때 너무 심란해서, 점사라도 보고 싶더라고요. 아는 점집은 없고, 혼자 찾아가기도 무섭고, 참 예의 없게도 스님이면 다 사주쯤은 봐 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무턱대고 사무실 조퇴를 하고 갔었나 쉬는 날 갔었나... 하여간 갔어요.
하얀 마사토가 깔린 절 마당에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연배 정도의 스님이 비질을 하고 있다가 절 보고는 어떻게 왔냐 묻더라고요.
그래서 쭈뼜쭈뼜 스님 제가 지금 너무 심란한 일이 있어 말씀 좀 들으러 왔습니다. 했어요. 그 와중에도 점보러 왔네 어쩌네 하는 정도의 무례는 범하지 않을 정신은 있더라고요.
스님이 잠시 절 보더니 그럼 법당에 가서 부처님께 인사를 먼저 여쭈라고.. 그래서 삼배를 하고 불전함에 그때 삼천원인가를 넣고 나왔더니 법당 옆에 ㄱ자 형태로 붙은 요사채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더라고요. 사극에 나오는 창호지 붙은 여닫이 문 있잖아요. 툇마루도 없이 댓돌에 신발 벗어놓고 들어가 작은 책상을 사이에 놓고 앉아서
스님이 뭔 일이냐 말을 해 보래요. 그래서 그냥 주저리 주저리 그때 내 상황, 내가 하는 고민, 그 고민을 하게 된 이유, 지금 내 감정 등등... 막 얘기를 했더니 한참 듣고 계시다가 그럼 사주를 내놔 보래요. 저랑, 당시 제가 심란했던 이유 예비신랑의 사주. 그리고 진짜 다 낡은 한자만 가득한 책을 펼쳐서 이리저리 뒤적뒤적... 그리고 백지를 꺼내 제 사주는 이러하고, 그 사주에 따른 내 성격은 이렇고 성장과정은 이러했을 터인데 (기가 막히게 맞춤) 이건 니 사주에 이게 있고 이게 없고... 이러며 설명하고,
예비 신랑은 사주에 나온대로는 이러이러한데... 이게 넘치고 이게 부족하고 근데 그 요철이 둘이 잘 맞고... 지금도 기억나는 한마디가 니 성격이 요망하니.... 요망하니... 요망하니....... ㅎㅎㅎㅎ 넌 어려운 신랑을 만나 니 머리위에 이고 살면서 기가 좀 눌려야 한다... ㅠㅠㅠㅠ
결론은 둘이 천생연분이니 엎을 생각하지 말고 잘 살아라 였어요.
그리고 그 사주 적은 종이를 접어서 책 사이에 끼워 두실려는 걸 제가 스님 그거 저 주세요. 살면서 두고두고 보고싶습니다. 했더니
그래? 하시며 두말 않고 내 주셨거든요. 제가 그걸 고이 받아 3단 장지갑 가장 깊은 주머니에 넣었구요.
그리고 복비를 드린다는 생각도 안하고, 나왔는데 어느새 해가 지려하고.. 스님이 또, 부처님께 인사나 하고 가라고 해서 절을 하고 나왔더니 스님은 여전히 마당을 쓸고 계심.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나와서
그냥 결혼하고 잘 살았어요.
그 뒤로 그 절에 갈 생각도 안했구요.
그리고 3년인가. 친구가 너무 심란해 해서
그 일이 생각나 같이 가 보자고 그 절에 갔어요.
제가 본 스님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몸이 좀 비대한 분이셨는데 아주 쇠꼬챙이마냥 마른 파파 할아버지 스님이 계시더라구요. 3년새 저리 늙으셨나... 하기에는 3년치의 노화는 아니고 최소 10년의 노화.
그리고 무엇보다.... 법당 본채 곁에 ㄱ자 형태로 붙어있던 요사채가 없어요....... 스님께 여쭸더니 요사채가 있었던 적이 없고, 이 절은 15년째 스님 혼자 계시는 절이래요. 밥 해주는 보살님 두분만 있고 따로 처사님을 둔 적도 없구요. 스님은 절 뒤에 두 이자 모양으로 법당과 나란히 지어진 일자형 집에 기거하신다고... 그리고 점사는 봐 준적이 없고 사주는 공부 안해 모르신대요. 그냥 밥이나 먹고 가래서 얼떨결에 뒤채에 가서 보살님들과 밥만 먹고 옴. 당연 그때기준 3년전 내가 들어간 그 요사채 아님...
제가 이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안믿어요. 그때 내가 뭘 착각했나? 싶어서 다음날 친구랑 둘이 그 산에 작은 암자 몇근데를 가 보자 싶었는데, 더른 곳은 다 너무 멀리 있고요. 지금도 기억나는게 제가 그 절에 갔을 때가 가을이 한참 깊을 땐데 제가 발목 위로 올라오는 앵클부츠, 굽이 8센치짜릴 신었거든요. 지퍼를 올리고 내린 기억이 나는데, 다른 암자들은 도저히 그 신발로는 갈 수 없을 곳에 있었고요.
집에 와서 그 삼단 장지갑을, 안쓰고 쳐박아 둔 걸 (나름 명품이라 안버렸어요...)꺼내 열어봤더니 그 종이도 없음.
제 인생 최고의 미스테리 입니다...
이상, 남편에게 기 눌려사는 요망한 냔... ㅎㅎ 이었어요. ^^
1. 어머나
'21.3.2 1:25 PM (222.101.xxx.249)얼마전 유퀴즈에 나온 이삭토스트 회장님 이야기처럼 신기해요!
남편과는 즐겁게 잘 살고 계신거죠? 결혼 꼭 했으면 하는 수호신이 도와주셨나봅니다.2. ,,
'21.3.2 1:27 PM (68.1.xxx.181)신기하고 재밌네요.
3. ㅇㅇ
'21.3.2 1:29 PM (117.111.xxx.130)신기하네요 @@
4. 오
'21.3.2 1:29 PM (144.91.xxx.113)넘 재밌어요. 글 잘 쓰시네요 ^^
5. 원글님이 복이
'21.3.2 1:43 PM (121.179.xxx.224) - 삭제된댓글있으신가봐요. 대부분 여자들은 그런 소리 들으면 기분나빠서 종이도버리고 스님 욕하고 나왔을텐데.
6. ..
'21.3.2 1:51 PM (218.52.xxx.71)우와 전래동화 같아요 정말 무섭지도 않고 신비로운 경험이네요
7. 그런데
'21.3.2 1:51 PM (121.165.xxx.112)복비가 아니고 복채.. 아닌가요?
전 불교도 모르고 점도 본적없는데
복비는 부동산 사고팔때 부동선에 주는 돈이고
그럴땐 복채라고 쓰는거 아닌가 싶어서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복비는 아닌것 같아서...
아님 죄송요.8. 어머
'21.3.2 2:09 PM (218.150.xxx.81) - 삭제된댓글님 결계에 갔다오셨네요ㅋ
스님의 요망하다하신건
아니 얘가 결계를 어떻게 뚫고 들어왔지?요망하구나ㅠㅠ어차피 들어온거 곱게 돌려보내주자 이런 마음이였을듯요9. 와우
'21.3.2 2:15 PM (222.120.xxx.60)전 믿어요.^^
근데 유퀴즈에서도 이런 신비로운 이야기가 나왔나요?
저 이삭토스트 아줌마 이야기 다 봤는데...10. 이삭회장님
'21.3.2 2:20 PM (222.101.xxx.249)그 소스 이야기 해준 여학생 이야기요.
아무리 찾아다녀도 그 학생을 찾을수없었다고 하더라고요 ㅎㅎ11. 와우
'21.3.2 2:23 PM (222.120.xxx.60)아하... 그 여학생 이야기는 기억나요~^^
12. 와..
'21.3.2 3:01 PM (175.223.xxx.177)정말신기해요!!!!!!!!!!!
13. 와..
'21.3.2 3:01 PM (175.223.xxx.177)댓글에 결계가 뭔가요?
14. ㅎㅎ
'21.3.2 3:23 PM (175.197.xxx.189)이런 얘기 너무 재미있어요!!!ㅎㅎㅎ 한 시공간을 공유하며 사는 존재가 있을 것 같다란 생각을 가끔 하곤 했는데!!!! 전래동화 속 신선 얘기 같아요!!
15. .........
'21.3.2 4:33 PM (112.221.xxx.67)요망한 ...요망한...ㅎㅎㅎㅎ
16. ᆢ
'21.3.3 4:15 AM (125.142.xxx.212) - 삭제된댓글요망한ㅎ.. 글 넘 재밌게 쓰시네요. 완전히 모두 확실한 기억이 맞나요? 세부적인 부분까지요. 혹시 기억의 왜곡은 아닐지?
17. ᆢ
'21.3.3 4:15 AM (125.142.xxx.212) - 삭제된댓글요망한ㅎ.. 글 넘 재밌게 쓰시네요. 완전히 모두 확실한 기억이 맞나요? 세부적인 부분까지요.
18. ᆢ
'21.3.3 4:16 AM (125.142.xxx.212) - 삭제된댓글글 넘 재밌게 쓰시네요. 완전히 모두 확실한 기억이 맞나요? 세부적인 부분까지요.
19. ᆢ
'21.3.3 4:17 AM (125.142.xxx.212) - 삭제된댓글글 넘 재밌게, 잘 쓰시네요. 완전히 모두 확실한 기억이 맞나요? 세부적인 부분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