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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짧지만 강렬했던 행복했던 순간들8

행복 조회수 : 4,492
작성일 : 2021-02-23 01:10:03
대학을 남들보다 좀 늦게 갔습니다
등록금 마련도 쉽지 않았고 용돈벌이도 내가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직장인에서 대학생이 됐다는것이 참 꿈같더라구요
직장다닐때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오전시간에 강의실 한켠에 앉아 있는것이 한동안 적응이 안되 자꾸 시간을 보는 버릇도 생겼어요
그러나 현실은 참 잔인하더라구요
기적처럼 어렵게 입학은 했지만 차비 점심값 기타 들어가는 부수적인 비용들..입학후 얼마간 꿈 속에서 헤매다 현실을 마주하며 어떻게든 그걸 혼자 오롯이 헤쳐나가야만 했어요
항상 그래서 바빴던것 같아요
학교주변에서 알바하고 다시 학교도서관가서 공부하다 집으로 오는
내가 어쩌면 상상속에서 꿈 꿨던 그런 일상을 그때 현실에서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런 육체적 힘듦을 감내할 만큼 그시절 나는

나이차 나는 동기들도 좋았고 구내식당 아닌 학교식당서
여러가지 메뉴 같이 먹는 것도 좋았고 과제한다며 빈강의실에서 모여 수다만 떨었던것도 좋았어요
시험때면 밤새도록 학교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고 새벽에 산책한다며 돌아다니고 족보 받는다며 나이어린 선배에게 부탁했던것도 좋았어요 그냥 나는 대학생이란 이름이 좋았던것 같아요
남학생이 더 많았던 우리과 동기들은 그냥 내눈에 철부지 어린아이들 같았고 막내동생과 나이가 같았던 동기들이 그냥 다 동생들 같아 늘 챙겨주고 그랬지만 내삶이 고단하고 바쁘고 늘 정신없어 사실 다른게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학년이 오르고 복학생 선배들이 들어왔을때
유난히 날카롭고 섬세하면서 깐깐해 보였던
우리과에 유일하게 향수를 뿌리고 다녔던 선배
학창시절 내가 짝사랑 했던 샤프한 수학선생님을 닮았던
그선배를 처음 본날
상큼하고 깨끗한 남자의 향수냄새가 그렇게 좋을수도 있는거구나 생각했습니다
그선배를 실습실에서 스쳐지날때면
늘 그상큼한 향수냄새가 은은하게 전해졌어요
복도 자판기 앞에 다른선배들 무리와 같이 서 있을때도 멀리서 그향이 왜 나에겐 그리도 잘 전달된건지..멀리서도 그선배가 그곳에 있겠구나 나는 알수 있었어요
어느날 부터인가 나는 그향을 맡기위해 학교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우리과 건물 곳곳 온통 그향에 집중 하느라 신경을 곤드세웠드랬죠

우연히 만나 복도 자판기에서 선배가 커피를 뽑아줬을때 종이컵에서도 그향이 났어요

상큼하고 싱그럽고 깨끗한 봄 냄새 같았던 선배의 향수냄새
나는 그향수냄새가 좋았던걸까 선배가 좋았던걸까
선배가 좋았기에 그선배향도 좋았던걸까요?
친구들과 농구하던 선배를 우연히 보고 선배가 벗어놓은 선배옷을 몰래 잡았던적이 있어요
금방 옷을 놓고 자리를 떴지만 그날 내손에선 하루종일 선배 향이 나는것 같았어요 알바하느라 손을 자주 씻었는데도 그향이 늦게 집에가는길에서도 나는것 같더라구요 내손 끝에 선배가 있는것 같았어요
그때 알았죠 나는 선배의 향수향을 좋아했던게 아니고 그선배를 좋아하고 있는거라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의 모습은 이랬어요
짧고 단정한 헤어스타일
입매가 단정하고 깨끗한 사람
손톱과 손끝이 깨끗한 사람
옷이 단아하고 정갈하고 단정한 사람
나는 참 단정하고 깔끔한 사람을 좋아했던것 같아요
둥근선보단 날카롭고 뽀족한 선을 더 좋아했어요
여자에게 여지를 주지 않고 잘웃지 않지만 남자들사이에서 인기많은 남자를 또 좋아했던것 같아요
그선배가 그랬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그선배는 다 가지고 있었어요


수줍고 용기가 없어 먼저 다가가거나 말 한마디 붙이기 참 힘든 선배였지만 그선배와 같은 공간에 있을때 그향이 전해지는 향기로움은 커다란 행복이였었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뛰고 달리고 잠이 모자라 지치고 힘들었을때 어디선가 바람에 상큼하게 선배의 향이 전해올때면 가슴이 마구 뛰었어요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날씨가 추웠던 어느날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었는데 앞자석에 그선배가 앉은적이 있어요
고개를 들수 없더라구요 선배가 커피 마시자며 불러냈을때
가슴은 떨리고 뛰는데 선배랑 둘만의 시간을 가질수 있다는게 꿈 같았어요
그렇게 시험준비를 하면서 선배랑 매일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저녁도 먹었어요 학교 밖 분식집에서..
칼국수를 먹었는데 면발 끊는게 부끄러워 국물만 먹었던게 기억나요
선배가 그런 내모습을 보고 웃으며 편히 먹으라고 했는데 그말이 더칼국수를 못먹게 해서 끝내 먹질 못했어요

둘이 나란히 걸을때 선배옷에서 내가 좋아했던 그상큼하고 깨끗한 항수냄새가 났을때 언제까지나 그옆에서 그향을 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 산책로에서 처음 손을 잡고 걸었을때 심장 뛰는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몸을 틀고 걷기도 했어요
참 미련하고 바보같았었죠
내마음을 좀 더 많이 표현하고 좋아하는 만큼 감정에 충실했다면
그시절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무엇이 그렇게도 나를 옭아매고 억눌렀던걸까요?
처음이라 서툴렸다고 뒤늦게 후회했지만 그댓가는 가슴이 많이 아프다 못해 아렸어요
세월이 한참 흘려 선배모습은 흐릿해졌는데
그때 선배에게서 맡았던 그 상큼한 향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것 같아요
그향수를 선배와 헤어진후 내가 사용했었어요
그리고 또 내가 그향수를 사용하며 만났던 사람이 나를 그상큼한 향으로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짧지만 강렬하게 아직도 영원히 콧끝에 남아있는 상큼하고 깨끗한
그향은 내 첫사랑입니다

























IP : 112.154.xxx.39
1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선배
    '21.2.23 1:14 AM (125.178.xxx.241)

    짧은 글만으로 그때의 고단함과 설레임과 향이 전해지는거 같네요~~
    아름답고 안타까운 추억이네요

    그래서 그 향수는 뭐죠?

  • 2.
    '21.2.23 1:22 AM (220.79.xxx.102)

    본인얘기인지..

  • 3. 향수
    '21.2.23 1:23 AM (112.154.xxx.39) - 삭제된댓글

    ck one 이요~^^ 지금도 가끔 사용해요

  • 4. ...
    '21.2.23 1:26 AM (1.229.xxx.92) - 삭제된댓글

    wow.. ck one 같은 향기를 생각하면서 글을 읽었는데 신기하네요.

  • 5. ...
    '21.2.23 1:26 AM (221.151.xxx.109) - 삭제된댓글

    https://www.82cook.com/entiz/enti.php?bn=15&searchType=search&search1=1&keys=%...

  • 6. 행복
    '21.2.23 1:37 AM (112.154.xxx.39) - 삭제된댓글

    윗님 제가 그동안 쓴 글 링크는 삭제해주심 안될까요?

  • 7. ..........
    '21.2.23 1:44 AM (121.132.xxx.187)

    아련한 추억이네요.
    향수하니까 떠오르는 사람이 있네요.
    내가 선물한 향수의 포장을 정돈해서 깔끔하게 보관하고 있던 그 사람...

  • 8. ...
    '21.2.23 1:46 AM (113.10.xxx.49)

    여기서 남자향으로 글케 좋다던 휴고보스 아님 ck one 일까요?
    저도 ck one 바르면 다들 무슨 향이냐며.. ^^

  • 9. 향수
    '21.2.23 1:47 AM (112.154.xxx.39)

    ck one이요 ~^^아직도 쓰고 있어요

  • 10. ^^
    '21.2.23 6:47 AM (110.15.xxx.45)

    어떻게 전개가 될까??....하며 조마조마하며 읽었어요^^
    짝사랑이 아니고 첫사랑이었다니 부러울따름 입니다
    그 분도 어디선가 원글님을 추억하고 있을지도요
    예쁜 글이네요

  • 11. ...
    '21.2.23 7:06 AM (175.121.xxx.111)

    향수 수기공모전 있으면 상탔을듯한 글ㅎ
    단편소설처럼 휘릭 읽어버렸어요. 글 잘쓰시네요~

  • 12. 궁금
    '21.2.23 7:45 AM (211.177.xxx.23) - 삭제된댓글

    휘리릭 스킴만 하고 왔지만... 웹소설 등단 추천드립니다^^

  • 13. ㄱㄱㄱ
    '21.2.23 9:23 AM (124.49.xxx.34)

    사고 싶어지네요. 나도 좋아했던향. 다시 맡으면 추억들이 생각날거같아요.

  • 14. ㅇㅇ
    '21.2.23 10:21 AM (180.230.xxx.96)

    오우 그렇게 멋진 선배랑 결국 사귀었던거네요
    부럽습니다
    좋은추억 이었네요

  • 15. 추억소환
    '21.2.23 5:06 PM (112.187.xxx.131)

    짧은 글이지만 강렬한 인상이네요.
    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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