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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게를 삶으시는 아버지 모습

조회수 : 2,902
작성일 : 2021-02-19 17:02:27

집이 지방이에요. 지역시장에 가면 홍게를 구매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제가 음식 중에 게를 제일 좋아해서 가끔 집에 가면 먹으라고 삶아서 주시고 그럽니다.


얼마 전 집에 갔는데,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는 어머니는 3교대 나가시고 아버지랑 저만 있었어요. 근데 어머니가 저 좋아하니까 게 좀 사서 먹으라고 아버지한테 그러셨나봐요. 아버지가 게를 가져오셔서 솔로 문질러 씻고, 냄비를 꺼내서 그걸 삶으시네요. 제가 배불러서 못 먹는다고 하니까 갈 때 가져가라고 얼음팩이랑 해서 넣어주셨어요.


부모님이 참 어리석은 방법으로 키우셨거든요. 어머니는 수틀리는 거 있으면 온몸 멍들도록 때리고, 아버지는 할 말 못할말을 못 가리고 하셨어요. 제가 대꾸를 해서 어머니가 화내니까, 시집가서도 지 남편한테 대꾸하다가 사니 못사니 지 엄마한테 맨날 그래봐야 정신차린다고 했었어요. (대꾸하다가 맞아 봐야 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이거는 기억이 명확치 않아서). 대학 입학 이후에는 그렇게 자란 어린 때 기억이 없어지질 않아서 병난 마음으로 허송세월로 보낸 날들이 많아요. 근데 또 자기 자식 성취욕에서 나온 거긴 하지만 없는 형편에 이것저것 해줘서, 크게 부족하지는 않게 자랐어요.


아버지는 20년을 넘게 자기 손가락 하나 안 움직이고 사셨거든요. 배고프면 고프다고 어머니한테 신경질 내고 엄청 짜증냈어요. 일이 없어서 쉴 때도 본인이 차려 먹을 생각은 안하고. 얼마 전에 제가 집에 있을 때, 누가 아버지한테 채소를 줘서 집에 가져오셨는데, 냉장고에 넣어놓을 생각은 안하고 나는 집에 가져왔으니 끝- 하고 그걸 그냥 현관 앞에 놔둔 거에요. 그래서 요양 일 하러 가는 어머니가 늦게 보시고 그게 상하는 음식인데  가져왔으면 넣어놔야지 없는 시간 쪼개서 출근 전 그걸 짜증내면서 넣다가 시간 없다고 아버지한테 넣으라고 하고 출근 하시니까, 나중에 냉장고에 느직 느직 넣으셨죠.


그랬던 분이 게를 삶고 있는 걸 보니까
위의 기억들과 겹쳐져 말로 설명하기 어렵게 느낌이 그러네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 기억나는 아버지 모습 중에 하나일 듯해요. 부엌에 서서 게를 삶는 아버지 뒷 모습. 뭘 읽다가 갑자기 기억나서 써봅니다.


IP : 222.108.xxx.3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메리포핀스
    '21.2.19 5:10 PM (221.150.xxx.188) - 삭제된댓글

    누구나 아름다운 추억만 있으면 좋겠지만 삶은 늘 그렇듯 롤러코스트죠~
    늙어 쇠약해진 뒷모습에 그래도 자식사랑은 남아 있으신~
    옛날엔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폭력이 사방팔방 행해졌죠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그 때 그시절 같이 자란 같은 세대로써 그냥 맘이 짠합니다~

  • 2. Jane
    '21.2.19 5:11 PM (180.65.xxx.51)

    생활에서 잔잔한 수필 한편이 나왔네요. 어린 시절의 아픔은 심장에 각인되어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지만요.

  • 3. 그게 뭐
    '21.2.19 5:11 PM (211.187.xxx.172)

    이제는 자식에게 함부로 못 하는걸 인지하신 것에 대한 자연스런 행동인거죠 뭐

    강자와 약자가 바뀌는 순간

    굳이 부모의 은혜....로 미화 할것도 없는

  • 4.
    '21.2.19 5:15 PM (222.108.xxx.3)

    네 굳이 미화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위 글이 미화한 글이라고도 생각도 안해요. 어릴 때는 자식이 약자 맞았지만 제가 지금 집에 경제적 보탬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야 몰라도 지금 강자일 것도 없고요.

    그러게 삶은 항상 롤러코스터... 멀리서 보면 희극,가까이서 보면 비극...ㅎㅎ 짠한 마음 공유 되어 좋네요.

  • 5. ...
    '21.2.19 5:26 PM (39.112.xxx.69) - 삭제된댓글

    때리고 나쁜말(?)하신건 잘못하신거지만..
    전 성인되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아빠도 그저 한명의 사람일 뿐이고..
    엄마아빠도 부모는 처음 해보는거고..
    그래서 몰랐고 어설프고 상처주는말도하고 그랬던게 아닐까..본심은 그게 아니였을텐데.. 뭐 그런 생각이요.

    그리고 지금처럼 부모교육이나 이런게 흔치 않았던 옛 세대의 경우는 더더욱 아이를 한명의 인격체로 대하는게 어렵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해요. 어릴때 상처받은 일들이 지워지지 않겠지만..되새기면 원글님 마음이 더 힘들테니..그래도 자식 좋아하는 게를 깨끗하게 씻어서 쪄주고 챙겨주는 그 모습을 기억하시면 어떨까요..^^

  • 6. ㅁㅁ
    '21.2.19 9:54 PM (125.184.xxx.38)

    좋은 포착,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7. ㅇㅇ
    '21.2.20 12:59 AM (124.50.xxx.153)

    어딘가에서 앞뒤로 앉았는데 아빠의 뒤뒷부분에 굵은주름이 눈에 들어왔어요
    사이좋은 관계가 아니지만 울컥 울음이 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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