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무 그리고 배추.
냉장고를 열때마다 안방 마님처럼 자리를 떡하니 잡고 있는 무, 너와 마주친다. 너를 볼때마다 살짝 부담이 생기지만
나중에...라면서 너를 스쳐지나 옆에 소세지에게 손을 뻗는다. 너는 필러를 꺼내고 껍질을 벗기고 도마를 꺼내 썰어야 하지만 소세지는 가위와 집게로 가능하다.
너의 사촌인 배추... 역시 하늘 높은줄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알았던 점순이처럼 무진장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있다.
역시 하... 어찌해야하나 번뇌가 생긴다. 배추전,배추국,겉절이등이 스쳐가지만 오늘도 못본척 황급히 시선을 옮긴다.
그 뒤로 깐 생마늘 300g이 삐죽허니 나를 쳐다보고 있다.
겉절이를 하려고? 삼겹살을 구우려고? 내가 필요하잖아! 빨리 맘을 정하라고 각 알알들이 재촉하는듯 하다.
생각을 멈추고 레트로 추어탕 두봉지를 집어든다.
내일 아침에 커피에 우유를 타기위해 냉장고를 열면
또다시 메멘토의 한 장면처럼 반복될 나의 일상이여.
차라리 깍쟁이처럼 유통기간이 또박히 적혀있으면 이 게으른 미루기가 멈춰질듯 싶다.
유통기간안에 먹던가, 날짜가 지나면 눈딱감고 버리듯이
쉬울텐데.
너네들은 우직하고 의리있는 시골개처럼 묵묵히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 내일 다시 보자. 굿나잇.
1. 야옹냐옹
'21.1.27 10:13 PM (121.129.xxx.92)한편의 시 같아요...
2. ㅎㅎ
'21.1.27 10:27 PM (124.216.xxx.149)너무 재밌어요~^^ 빨리 요리로 승화시켜 주세요. ㅠ 기다림의 미학도 있지만. 얘네들 피지컬이 무너지면 더 가슴아플것 같아요.
3. 무배추마늘
'21.1.27 10:29 PM (121.130.xxx.192) - 삭제된댓글무 : 오늘도 그녀는 차갑다.
분명히 시선이 마주친듯도 한데 모른척 내 옆의 소세지를 집어간다.
오늘도 나는 또 이 캄캄한 냉장고에서 아침을 기다리게 되겠구나.
배추 : 그녀가 돌아왔다. 봄에 자란 나는 키가 크지 못하고 옆으로 누웠는데 그녀는 내가 못마땅한가보다.
나도 배추전, 배추국, 겉절이 모두 잘 될 수 있는데..
자괴감이 든다.
마늘 : 그녀는 나를 왜 사온걸까? 나를 잊은건 아닐까?
난 삼겹살에도 겉절이에도 제몫을 할 자신이 있는데 그녀는 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오늘도 캄캄한 냉장고 안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Don't forget me4. 무우좋아
'21.1.27 11:06 PM (211.178.xxx.251)엄지척 입이다!,
5. 무우좋아
'21.1.27 11:06 PM (211.178.xxx.251) - 삭제된댓글엄지척입니다!
6. 민트라떼
'21.1.27 11:38 PM (122.37.xxx.67)이맛에 82와요!! 브라보!!!!
7. 12
'21.1.28 12:53 AM (203.243.xxx.32)원글님과 121.130님 글은 작가가 쓴 것 같습니다.
잠깐 머리 식히려 들어오신 듯.
원글님 글도 대단한데, 시각을 달리한 무배추마늘 글도 참신합니다. 두 분 모두 엄지 척!!!!!!!8. 열심녀
'21.1.28 7:11 AM (118.235.xxx.151)재밌게 잘 읽었어요
82홧팅9. ㅎㅎㅎ
'21.1.28 7:45 AM (211.231.xxx.206)아침부터 끄덕이며 ㅋㅋ거렸어요
저랑 똑같아서,,
아, 근데 생배추는 잘라서 그냥 쌈장하고 먹으니
손도 안가고 맛있네요10. ㅋㅋ
'21.1.28 8:26 AM (222.109.xxx.116)딱 제 마음이네요.
너를 보고 미소짓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길.
덩치나 작나.11. 딱 제맘 2
'21.1.28 1:58 PM (116.41.xxx.141)냉장고 열때마다 ㅜㅜ
진짜 메멘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