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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이야기를 보니 할매생각이 납니다

할매생각 조회수 : 1,275
작성일 : 2021-01-12 10:18:32

우리 김0순 할매는

1900년 생이셨는데 88년 올림픽이 끝나고 그해 10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시절이 그러하니 여자한테는 글자공부도 못하게 하였다는데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신문도 읽으시고 언문으로 된 책도 읽어주시던 분이 바로 우리할매였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거, 공부 못하게 한 게 서러워서 오빠들 글공부하던 거 어깨너머로 공부하셨다고 하시던 분이셨지요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살았는데 어릴 때 집에 닭이 계란을 낳아도

꼭 아들손자들한테만 주시고 여자애들은 남의 집 식구 될 거라서

안 먹여도 된다고 하시던 분이셨어요

 

제가 고3이던 85년 봄에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4년여를 대소변 받아가며

집에서 모셨는데 그때 집에 세탁기가 없어서

하루에도 손빨래를 몇 번을 했던지 고3이라도 휴일마다 빨래 엄청 해댔거든요 제가 손마디가 거친 것은 이 영향도 있는듯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알바하고 장학금 받아서 그때가격 34만원으로 탈수조가 따로 있는 2조 세탁기를 들여놓고 빨래에서는 해방이 되었지만요

 

우리 할매가 가장 좋아하시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바나나였어요

그때 저 한달 용돈이 3만원이었는데 대구 서문시장 노점에 가면 작은 바나나 2개가 천원이었어요

주말에 시골에 갈 때마다 두개에 천원짜리 바나나를 사가지고 가서 할매 를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작은 용돈 아껴서 사가지고 가던 제 마음도 참 풍요로웠었는데 사업하시고 잘 사시던 큰아버지들은 잘 모르시던지 바나나를 잘 안 사드렸던 것으로 기억해요

 

바나나를 그렇게 좋아하시던 할매는  그렇게 오랜시간을 누워서 투병을 하셨는데

88올림픽이 끝나고 10월하순경 제가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고향집으로 간다며 노란가방에 흰옷을 한 벌 챙겨서 길을 나서는 ...

 

기분이 너무 이상해서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그냥 오라고하셔서 다음주에 시험이라고 안된다고 해도

무조건 내려오라고 하셔서 그날 저녁에 시골집으로 내려갔습니다.

 

도착하니 저녁9시였는데

엄마가 세숫대야에 따뜻하게 데운 물을 주시면서

할머니 주무시기 전에 세수시켜 드리라고 하더라구요

세수시켜 드리고 손도 씻겨드리고 발도 씻겨 드렸어요

그리고 좀 길어진 손톱도 발톱도 깍아 드렸는데

할매가

“ oo야 와 내한테 이렇게 잘해주노 고맙데이 ”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구요

늦었다고 빨리 주무시라고 내일 새벽차 타고가서 인사 못 드리고 간다고 하고 문을 닫고

 나왔거든요

 

한 1주일정도 후 시험 마지막 날에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와서 시골집에 왔더니

제가 다녀간 다음날부터 혼수상태로 아무도 못 알아보시고 1주일간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정신 있으실 때의 마지막 모습을 좋게 기억할 수 있어서 지금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둘째딸인데 또 딸 낳았다고 호적에도 1년 후에 올리라고 하실 정도로

남아선호사상이 강하셨지만

어릴 때 상장받아가고 성적표 보여드리면 아무리 노력해도 남자만큼 능력을 펼칠 수 없는

세상이라서 같은 여자로 참 속상해 하셨던 거 자라면서 가끔 느꼈거든요

어릴 때는 무서웠고 남자손자들하고 차별하셔서 싫었지만

참 멋있는 우리 할매

바나나 이야기를 보니까 오래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매가 생각납니다

 

 

할매 보고싶다

지금은 내가 할매 좋아하는 바나나 실컷 사드릴 수 있는데 ....!!!!

IP : 117.110.xxx.20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1.1.12 10:29 AM (121.175.xxx.109) - 삭제된댓글

    우리 할머니는 시골에서 사셨는데
    농사를 짓진 않으셨어요
    할아버지가 일본 유학도 다녀오시고 대처에서 일하시다
    나중에 고향으로 내려와서 지내셨거든요
    할머니가 얼마나 자신의 몸을 아끼고 중하게 여기셨는지
    곱게 단장하고 그 시골에서
    늘 양산쓰고 다니시고 흰 망사 장갑에 ....
    늙으막에는 며느리들 흉거리로 입에 오르내리셨죠.
    근데 본인이 스스로를 귀히 여기니
    주변에서도 면전에서는 귀하게 대접해 주더라는...

  • 2.
    '21.1.12 10:29 AM (222.239.xxx.26)

    저도 님 글읽으니 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저는 캔 복숭아요. 항상 이없으신 할머니께 손님들이
    사오시면 다락에 넣어놓구 제가 아프거나 할때는
    특별히 꺼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저희도 엄마가
    몇년을 치매가 오셔서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 병간호
    하셨는데 그때의 엄마들은 대단하신것 같아요.

  • 3. 이상한 할매
    '21.1.12 10:35 AM (14.52.xxx.225)

    자기는 글도 못배우면서 자라놓고 손자,손녀 먹는 걸로 차별하고
    그런 할매 뭐 좋다고 바나나를 사다 드리고 손빨래, 세수 시키는 건 뭔가요.
    저는 손자,손녀 차별한 외할머니한테 대판 대들고 그 다음부턴 꼴도 안봤어요.

  • 4. 나이가 드니
    '21.1.12 11:43 AM (222.109.xxx.195)

    아들손주들과 차별하던 행동들.. 다 털어지고 그 시절 참 고단하고 고생스러웠겠다는 안스러움만이 남아요. 심정적으로는 따스한 기걱 별로 없지만, 세상이 이리 편해지고 좋아졌는데 예전 사람들, 먹고 사느라 참 고생 많이했어요...

  • 5. 짱아
    '21.1.12 3:33 PM (223.62.xxx.58)

    와우 정말 군더더기 없이 글 잘쓰시네요 글쓰시는 일 하시나봐요 넘 술술 잘읽었어요

  • 6. 원글이
    '21.1.12 4:00 PM (117.110.xxx.20)

    제가 50중반 나이가 되니 무덤덤하게 봐지는부분도 있어요
    그때의 서운함은 희미해지고 이제 그냥 그리워요

    윗님 !! 저 글을 잘 못써요
    그냥 생활문 있는그대로 간략히 .... 칭찬해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 7. 저는
    '21.1.12 7:35 PM (39.122.xxx.164)

    1986 년에 고3이었어요.
    대구에서...

    원글님 글 읽으니
    그 시절 생각에 가슴이 뭉클 하네요.

    저도 당시에 할머니가 계셨어요.
    저희 집안은 할머니 손주들 중 아들만 하나고
    나머지는 모두 딸들이었는데
    하나하나 다 소중히 사랑하셨어요
    그중 아들손주를 가장 사랑하셨지만

    저희 할머니는 92년에 돌아가셨어요.
    아직도 꿈에 나올만큼 보고싶고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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