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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잘하는 일이 없는 제가 하고있는 선행 한 가지.

ㅇㅇ 조회수 : 2,393
작성일 : 2020-06-24 15:05:02


길고양이들 구역을 찾아다니며 주기적으로
밥을 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거창하게 일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우스운듯하지만,
알음알음 고양이들 밥을 주기 시작한지가 근 두달째쯤 되었나봐요.


원래 몸 쓰는걸 귀찮아하고, 기력이 없는 타입이라 집에서 쉬는게 다인데
고양이 밥주는 일은 크게 귀찮거나 질리는 일 없이 사명감?
의무감 같은 걸 갖고 해요.
제가 슈퍼우면은 아니지만, 내가 아니면 배척당하는 쟤네 밥을 제대로 챙겨줄 사람이 너무도 적다..는 생각 하에서요.


그래서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짐들고 걸어오다가 익숙한 얼굴을
고양이가 삐쩍 마른 채로 밥 달라며 따라올때도,
동네 고양이가 울면서 집근처에 맴돌아도...누워서 휴대폰 하다가 귀찮음을 무릎쓰고 사료포대에서 사료를 꺼내 그릇에 부어주고 들어와요. 저한테는 아주 어려고 힘든 일은 아니니까요.


생각해보니 밤늦게 운동갔다 지쳐오는 길에도 오랫만에 보인
고양이 사료를 챙겨주느라, 집까지 돌아갔다가
다시 사료갖고 나와서 주구요.
나의 정성과 관심을 쏟아 사물을 대하고, 살리는 것에는
평소 관심도 없던 무정한 저인데 이렇게 하다보니...
쟤네들에게 감정이입도 되면서 공감능력이 생기고 마음 가짐이 달라지는걸 느껴요.


그리고 비온 다음날에는 골목 땅 바닥에 지렁이가 말라붙거나
햇볕에 죽어 있기도 한데...저는 골목을 걸어다니면서 습관처럼 개중에
목숨이 붙어있어서 도움이 필요한 지렁이는 없는지 봐요.

지렁이가 살아있는 기미가 있으면 나무젓가락을 가져오거나 근처에 눈에 띄는
전단지 같은 걸로 겉피부가 상하지 않게 슬슬 옮겨서
저희 집 정원 흙밭이나 축축하고 그늘이 잘 진데 옮겨줘요.
그다음 물을 한 됫박? 뿌려주구요. ㅋㅋ


무의식중에 생명이 죽는게 안타까워 그렇게 하게 되던데
언제부터 이랬나..를 헷수로 따져보니 거의 28년째네요..ㅎㄷㄷ

원래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아이였어요.
비가 그친 뒤의 학교 운동장에서 햇볕이 내려쬐는 맨바닥 웅덩이 근처에서
고통스럽게 꿈틀거리던 지렁이가 눈에 선했던 기억이 나요..
아이들이 힘든 지렁이를 갖고 장난하며 놀던 그 광경이 뭔가 척박하고
힘겹게 보여서 도와주고 싶었던 모양이예요;; (오지랖?)

경력이 쌓이다보니 이제는 건조한 날씨에 땅에서 굳어져 가는 지렁이는
손으로 집어올려 더 편한 곳으로 옮겨주는 대담함??도 생겼네요.ㅜ ㅋㅋㅋ 비위상하시지 않길요.


저는 예전부터 뭐하나 잘하는 일이나, 뛰어난 데도 없고 인간관계도 젬병에...
화가 많고 까탈스러워 주위에서도 좋은 평가를 못받는 사람인데요,
글을 적다보니 나도 이렇게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이구나..를 상기하며 스스로를 인정하게 돼요..;;ㅎ
(적다보니...일기를 쓰게 되네요..ㅎ)


사는데 서투르고 노력부족인지, 내 삶의 영역에서는
의욕과 열정이 떨어지고 무력할 때가 너무도 많은데,
우리 고양이들에 대해서는 이런 지극정성이 어디서 나왔나 싶어요. 스스로도.

동물도 호구를 알아본다더니, 사실인가보다...이건 농담이고요 ㅋㅋㅋ
저에게 간접적으로 삶의 의욕을 주는 고양이들에게 감사해야 할것 같아요.
삶에서 매사 준비없이 덥썩 뛰어들었다가, 용두사미로 일을 그르치기가 일쑤였거든요.

냥이 사료를 챙긴다는건 나 아닌 누구도 할수 있는 조그만 일이지만,
그걸 먹어주는 그들의 존재가 새삼 고맙기도 해요.


그리고 저는 어려서부터 착한사람 콤플렉스가 너무도 심했던 사람이예요.
내 의사표현조차 못하고 타인에게 반대하거나 주장을 두려워 하는 소심이 였거든요..


지금은 82와 각종 심리 계발서의 영향으로 어느정도는 개화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누구나 좋아하는.. 흔히 말하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은 안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고, 내가 거기에 맞추려면 무리해야 하니까요.)


그저 약자에게 강하지 않고 생명을 존중하는 선량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경제적으로는 많이 부족하지만, 정신적으로 이렇게 어느 정도 충족이 되고 있으니
작게나마 만족을 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런 행동들이 작은 생명들 뿐만 아니라
내 삶에 충실해지기 위해서도 애쓰고 있는 과정중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IP : 110.70.xxx.240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000
    '20.6.24 3:08 PM (124.50.xxx.211)

    좋네요. 많이 행복해지실거에요.

  • 2. ...
    '20.6.24 3:10 PM (223.38.xxx.26)

    이 글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어요
    잔잔하고 공감가는 일기 감사해요
    원글님 너무 좋은 분 ㅡ 저와 길고양이들과 지렁이들 생각^^

  • 3. ㅂ11
    '20.6.24 3:11 PM (49.174.xxx.237)

    짝짝짝!! 응원합니다

  • 4. ㅇㅇㅇ
    '20.6.24 3:12 PM (110.70.xxx.240)

    아 고맙습니다. 저도 뿌듯하고 행복감이 느껴져요^^
    그래서 이 일??에 더 매진하게 되는것 같아요.
    길고양이를 성가시게 보거나, 미워하는 주민분들도 있지만요..ㅜ

  • 5. 칭찬합니다^^
    '20.6.24 3:13 PM (106.102.xxx.151)

    이런분들이 많아져야 더 살기좋은 세상이 될텐데......

  • 6. .....
    '20.6.24 3:18 PM (203.251.xxx.221)

    이 글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어요 2222

  • 7. ㅇㅇ
    '20.6.24 3:18 PM (110.70.xxx.240)

    너무 주관적인 얘기라 핀잔을 들을까 우려도 했는데
    댓글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렸다니 저도 한결 편안해져요.

    적다보니 점점 일기같은 글이 되어서 적으면서도 민망했거든요..ㅎㅎ

    제가 고양이와 생물들한테는 너그럽고 좋은 사람으로 묘사됐는데
    생각해보면 주변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니네요..;;
    무심하고 기계적인 냉정한..그 이상으로 여겨질텐데..
    이게 딜레마가 되네요.
    사람은 너무 복잡하고 대하기 힘들어서 냥이나 동물들이 친숙한지도요^^

  • 8. ㅇㅇㅇ
    '20.6.24 3:27 PM (110.70.xxx.240)

    마음이 편해지고 다행이란 생각을 하셨다니 저도 보람있어요
    좋은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동물과 약한 생명들에게는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실 선행이라곤 했어도 매일 사료는 못 챙기고, 2~3일씩 걸러서 하고 있어요.
    그래도 할수 있는 한은..지치지 않게 꾸준히 밥 챙겨주고 싶어요.
    응원해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 9. 좋은 분이네요
    '20.6.24 7:16 PM (116.36.xxx.231)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

  • 10. ㅇㅇㅇ
    '20.6.24 7:59 PM (110.70.xxx.240) - 삭제된댓글

    감사합니다. 스스로 내세운게 좀 부끄럽기도 했어요..-///-
    격려의 뜻으로 칭찬해주시니 생명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 11. ㅇㅇㅇ
    '20.6.24 7:59 PM (110.70.xxx.240)

    감사합니다. 스스로 내세운게 좀 부끄럽기도 했어요..-///-
    격려의 뜻으로 칭찬해주시는거라 알고 생명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어요

  • 12. 불교
    '20.6.25 2:31 AM (125.130.xxx.219)

    에서도 가장 큰 공덕과 복 짓는 일이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고 하잖아요.
    잘 하는게 없으신게 아니라 가장 소중한 일을 잘 하고 계시는거네요.
    복 많이 지으신만큼 다 돌려 받으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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