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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가정 이야기>>풍금이 있던 자리, 나의 산까치.

산까치 조회수 : 2,972
작성일 : 2020-06-14 12:11:10
재혼가정에서 자란 이야기 읽고 새엄마의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의 신경숙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가 생각나 다시 꺼내서 읽었어요

저는 재혼가정이라기 보다는 첩이 우리엄마를 밀어내고 살다가 병으로 죽었고 나중에 또 자식없는 여자와 삼혼을 해서 살았어요

그 얘기는 너무나 길고도 어둡고 슬픔으로 점철된 시간이라 나중에 하기로 하고요.

어린시절 초등 저학년쯤 아빠는 사업한다고 밖으로 돌고 엄마는 아파서 외가에 가 있었어요

할머니 삼촌 저와 여동생 그렇게 살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살림과 농사일에 힘들었는지 늘 우리에게 화를 내셨고 삼촌도 농사일 하느라, 우리 자매는 돌봄을 받지 못한채 알아서 크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삼촌이 예쁜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 동거를 시작했어요

눈이 크고 날씬하고 예쁜 그 여자는 "미선이"라고 불렀는데 우리는 호칭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않지만 작은엄마라고는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엄마 아빠 없이 조금 슬프던 내 유년의 시간속으로 들어와 무료하고 촌스럽던 생활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줬어요

이것저것 간식도 만들어 주고 배고프면 마당의 가지도 따다 먹으며 키득거리고

할머니처럼 야단도 안치고 친구처럼 잘 놀아줬어요

엄마와 달리 세련되고 예쁜 그녀를 좋아했어요

자기집 얘기를 해줬는데 아버지가 술만마시면 괴롭혀서 이방에서 저방으로 피해다니며 살았대요

어린 제 눈에도 참 불쌍 해 보였어요

할머니는 미선이한테도 화를 많이 내셨고

'소가지가 사납다'고 했어요

쌀을 씻는데 흘리고 씻는다고 야단치던 기억이 나네요

임신을 했는데 삼촌이 지우라고 해서(나중에 엄마한테 들은 얘기) 낙태를 했었고

삼촌은 미선이를 집으로 보내버렸어요

아마도 할머니와 자주 싸우니까 어쩔 수 없이 헤어졌던 것 같아요

우리와는 정이 한껏 들어버렸는데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도시의 세련된 여자와의 생활이 참 좋았는데

우리는 다시 어미잃은 새처럼 외로운 처지가 되었어요

그때가 가을이었는데 저는 날마다 마루에 나와 앉아 미선이를 기다렸어요

그 가을이 다 가고 겨울이 올때까지 미선이는 오지않았어요

외가에 가 있던 엄마는 별로 보고싶지 않았는데 왜 그리 미선이를 기다렸는지

찬바람 불던 그때의 기다림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시리고 스산해요

그당시 나왔던 '산까치'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미선이를 기다리며 매일 불렀어요

외로운 우리 자매에게 날아와 사랑을 주고 날아가버린 산까치

지금도 멜론으로 산까치를 들어요

최안순 이라는 가수가 불렀는데 요즘 유숙이 더 멋지게 부르더군요

슬픈 유년의 기억을 왜 끄집어내고 싶은건지 참..

가끔 미선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해요

성도 모르고 그냥 미선이었던 예쁜 사람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피해 시집은 잘 갔을지..

지금은 칠십이 넘었을 나이 이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그리움으로 남아있어요
IP : 116.127.xxx.16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0.6.14 12:24 PM (59.15.xxx.61)

    슬픈 이야기를 잔잔하게 잘 쓰셨네요.

  • 2. 소설
    '20.6.14 12:26 PM (211.54.xxx.165)

    한편의 소설 같아요. 저도 '미선' 이라는 분이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 3. 아놔
    '20.6.14 12:29 PM (39.7.xxx.224)

    왜 전 미선이가 아부지 첩으로 읽혔는지 바본가봅니다

  • 4. 저도
    '20.6.14 12:50 PM (1.241.xxx.109)

    풍금이 있던자리 하고 원글님 어린시절이 비슷하게 느껴지네요.원글님께서 미선씨 기다렸다니..두계절이 흐를동안,
    어린아이들은 누군가 정서적으로 친근하게 대해준것을
    오랫동안 기억하는군요.
    지금은 행복하시리라 믿어요.

  • 5. ....
    '20.6.14 12:53 PM (221.157.xxx.127)

    재미있게 읽혀요 수필집 내셔도 될듯

  • 6. 풍금
    '20.6.14 1:11 PM (61.74.xxx.169)

    풍금이 있던 자리를 처음 읽었을 때 정말 한장면 한장면이 떠오르는듯 했어요 신경숙 소설 중 최고지요

    최근 읽은 책에서 '내게 무해한 사람'에 그런 내용이 있어요. 최은영 단편소설들로 '손길'
    주인공은 어린시절 가정사정으로 삼촌집에 맡겨져 숙모와 살게되는데 숙모도 21살 어린 나이지요 친구처럼 어찌보면 서로 의지?하며 지내다가 다시 부모에게 돌아오고 숙모는 삼촌과 헤어져요. 주인공은 원글님처럼 숙모와 지낸 그 시간을 나름 행복하게 기억하고 숙모가 잘 지내기를 기원해요. 미선씨에게도 원글님이 함께 있었던 것이 당시 상황에서 위로가 되었을 것 같아요.

  • 7. 미선씨
    '20.6.14 2:36 PM (211.250.xxx.199)

    행복하기를.
    원글님 글이 수채화 그려진 동화책 같아요.
    언제든 마음 나실때
    원글님 얘기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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