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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토론 좋아하는 남편, 드디어 출근시작했어요

해비토커 조회수 : 3,171
작성일 : 2020-05-23 07:52:54
평소 대화많은 부부입니다.
같이 술한잔 하며 얘기 서너시간씩 하고, 책이나 뉴스보다가 드라마보다가 스포츠경기보다가..암튼 어떤 이슈만 있으면 저랑 얘기하기 좋아하는 남편이거든요.
자기랑 말 제일 잘 통하는 소울메이트래요, 제가.
평소에 다양한 분야 책도 많이 읽는 편이라 아는 것도 많고,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늘 갖고 있고, 다큐 프로나 시사고발프로 좋아하고..그런 타입인 남편이라, 저도 뭐 적당히 같이 읽고 보고 얘기하며 잘 살았어요. 대화 잘 통하는 남편이라 생각하면서요. 실제로 일상대화에서도 그다지 문제 없는 편이었구요.
근데 코로나로 직장이 잠시 문을 닫으면서 3개월 정도 무급휴직을 했는데, 와......ㅠㅠ
24시간 붙어있는거 첫 한달은 견딜만 하더니, 그 뒤부턴 진짜 인내심을 시험하는 시간들이었네요.ㅎㅎㅎㅎㅎㅎ
티비보다 무심코 던진 말에도 토론이 시작되고, 주변 누군가의 발언에 대해 무심히 한 마디했다가 토론이 시작되고..가수의 신곡 얘길 하다가 또 토론이 시작되고..
원래 그런 타입이니 첨엔 저도 그럭저럭 같이 얘기했죠. 근데 진짜 시간이 갈수록 제가 여지를 안주기 위해 입을 다물게 되더라구요. 드라마보면서도 입 꾹 다물고 같이 봤어요.

웃자고 던진말에 죽자고 달려든다.
개그를 다큐로 받는다.

딱 이런 상황이 매일 여러 번 반복되는 기분이랄까...
물론 안 받아주는 사람한테는 안 그러는 사람이에요. 저랑 그 전에 워낙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잘 하며 살아서 습관적으로 그러는거죠.
그게 하루 24시간 내내이고 3개월이상 지속되어 제가 지친것일뿐..

라떼는 말이야 하는것만 꼰대가 아니라, 상대가 궁금해하지 않을 수도 있고 조언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하고 말하는것도 꼰대가 되는거겠죠.
저희 남편은 꼰대가 안되기 위해 정신 똑바로 차리며 나이들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굉장히 합리적인 편이고 '타인의 생각은 나와 다를 수 있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걸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한다' 하는 사람이지만, 본인이 조절을 살짝만 못해도 결국 꼰대로 보일 수도 있는 요소가 있는거구나 싶어요.

이번 주부터 다시 출근 시작했는데, 정말 휴식이 이건가 싶네요 ㅋㅋㅋ
어제 저녁 야구를 같이 봤어요.
제가 어이없는 플라이로 아웃되는걸 보며 '아 안타 좀 치지 이 상황이 플라이가 뭐냐' 하며 아쉬워했거든요. 그 타자는 원래 땅볼을 잘 치는 편이라 병살플레이 자주 해서, 그나마 땅볼보다는 플라이가 나았던건 저도 알고 있었구요. 그냥 경기보다가 하는 감탄사 탄식 흥을 돋구기 위한 어떤 것. 그런 말일뿐.
그러자 남편이 이 때다 싶게 한 마디하더라구요. 일부러 의도하고 플라이 친걸수도 있다, 병살 안되게.
그래서 그냥 농담으로 받으려고, 일부러 칠거면 안타를 치지 플라이를 치고 그럴까~ 했다 다시 설명 시작됨.ㅠㅠ
저도 다 알아요...제가 안다는 것도 그 사람이 모를 리가 없어요...제가 야구 잘 아는 사람인걸 아는 사람이 그래요..
그래서 그냥 고개 끄덕끄덕하며 들어준 후에 슬쩍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출근해서 다행인건 월급때문만이 아니군요.
직장 다니다 그만둔지 좀 되었는데, 남편이 은퇴할 때를 대비해 제가 나갈 구실 만들려고 공부도 시작했어요. 알바라도 하며, 아니면 뭐라도 배우며 집에서 나가 몇 시간이라도 분리될 수 있는 핑계를 만들려구요.
IP : 175.223.xxx.40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0.5.23 7:56 AM (175.112.xxx.58)

    저라면 정말 환장할듯ㅠ
    원글님 보살입니다요~~

  • 2. 원글
    '20.5.23 8:06 AM (175.223.xxx.43)

    ㅎㅎㅎㅎ저도 제가 보살같아요.
    원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인데 밖에서 꼰대짓 안하겠다는 일념으로 조용히 지내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다가, 집에 오면 고삐 풀리는거겠거니 하고 받아주며 살았거든요.
    코로나 시기에 제가 귀에서 피나서 죽을 뻔...

  • 3. ㅠㅠ부럽네요
    '20.5.23 8:09 AM (110.15.xxx.45) - 삭제된댓글

    비슷한 남편 둔 여잡니다
    너무나 휴머니스트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전 퇴직 5개월차 남편인데
    집에 있으니 온통 에너지가 입에 가있어요
    한마디를 그냥 안넘기고 따지는데다가
    자꾸 한거 안했다하고 안한거 했다하고 실수도 도통 인정하지않고 똥고집 같은 억지 부려요
    한두번은 참겠는데 하루종일 그러니까 너무 짜증이 나요
    어떨땐 그냥 멍하니 딴 생각합니다

  • 4. ..
    '20.5.23 8:12 AM (125.186.xxx.181)

    부부도 적당히 떨어졌다 만났다 해야 환기가 되는 듯

  • 5. ㅅㅈㄴ
    '20.5.23 8:15 AM (175.209.xxx.157)

    전 아들이 그렇습니다요.
    아들아 제발...

  • 6.
    '20.5.23 8:18 AM (49.180.xxx.187)

    원글님 배우신 분인 듯. 글에서 느껴집니다. 지성과 아름다움 가득한 주말 보내세요^^

  • 7. ...
    '20.5.23 8:26 AM (14.34.xxx.78)

    원글님의 피로감을 조절할 수 있게 관리하실 수 있다면 이런 관계 완전 부럽습니다.

  • 8. 원글
    '20.5.23 8:39 AM (39.7.xxx.110)

    그간 잘 지내와서 그런게 문제가 될거라 생각 자체를 안해봤는데, 이번에 깨달았어요.
    은퇴 후에 뭔가가 필요하구나..
    내가 내 피로감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

    별님, 감사해요. 덕분에 자존감이 올라가는 기분입니다^^

    저 위에 비슷한 남편 또는 아들 두신 분들, 그 마음 압니다...좋은 방법 있음 공유해요 우리..

  • 9. ㅇㅇ
    '20.5.23 9:06 AM (175.207.xxx.116)

    저는 아들이 그래요.
    편하게 일상 대화가 힘들어요

    연예인, tv 프로.. 뭐든지 다 분석해서 설명하려고 들어요
    제가 상대하면 토론 내지 언쟁이 되구요

    그 프로 웃기지 않니..
    네 맞아요ㅋㅋ

    저는 이 정도로 끝내고 싶은데
    이 프로가 왜 인기가 있는지 언제부터 이랬는지
    다 얘기해요..

    친구들도 넌 왜 이렇게 설명하고 가르쳐들려고 하느냐고
    뭐라고 한대요
    아들말이 자기는 불필요한 말은 하기가 싫대요
    본인의 설명 분석이 불필요하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요

  • 10. ㅇㅇㅇ
    '20.5.23 9:30 AM (121.190.xxx.131)

    그 놀라운 사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말이 많아진다는 것이죠.
    그 중에 필요한 말은 거의 없다는것도 슬픈 진실.
    ㅡ 퇴직자 아내ㅡ

  • 11.
    '20.5.23 11:56 AM (117.111.xxx.124)

    저도 말많은 남자랑 사는데 나중엔 멀미나요. 이젠 남편이랑 티비 안보고 조용히 딴방으로 피신 ㅠ

  • 12. ㅋㅋㅋ
    '20.5.23 12:51 PM (116.36.xxx.231)

    상황이 너무 실감나게 생생하게 쓰셨네요.
    그래도 원글님은 남편분 사랑하시는거 같아요.
    저는 사랑하지 않는 남편이 그렇게 아는척하고 설명을 해요.
    그러니 저도 점점 더 아무말도 안하게 되더라구요 ㅠ
    완전 이해하며 읽었어요.
    난 대화가 하고 싶은거지 설명을 듣고 싶지 않거든요.

  • 13. ㅎㅎ
    '20.5.23 1:40 PM (175.223.xxx.75) - 삭제된댓글

    원글님..
    저는 25년간 진행 중 ..ㅠ
    불붙으면 밤새고 새벽 네시 다섯시까지 토론하는데요
    이제 나이가 들어서 너무 지쳐요...

    슬적슬적 자리 피하는데
    자기가 누구한테 이런 이야길하겠냐며
    요즘은 직장 점심시간에도 보고싶다면서 전화합니다ㅠ

    저는 스몰토크로 던진 걸
    뭐든지 진지하고 무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요즘 애들이 말하는 진지충 설명충이란 게 이런 건가 ..
    무슨 말 하기가 좀 겁납니다..

    남편이 책을 엄청 많이 읽는데
    제가 말을 걸지 않아도 이젠
    책 요약, 핵심부분 보여주기,
    뭔가 꽂힌 내용에 대한 토론으로
    저는 맨날맨날 독서를 간접적으로 하고 있어요ㅠ

    뭐..저의 하찮은 의견도 진지하게 수용하고
    그럴 듯한 질문으로 만들어줘서
    제가 대단히 똑똑해지는 것 같은 느낌아닌 느낌은 있지만..
    저도 좀 나가버릴려고요.
    사실 지금도 산책간다고 나옴ㅎㅎ

  • 14. 원글
    '20.5.23 2:39 PM (14.36.xxx.139)

    비슷한 남편분들 많으시네요 ㅎㅎㅎ
    저도 20년째 이러고 사는데, 그동안은 불만없었거든요.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부부로 산다는 생각이었고, 세상을 보는 시선이 비슷해서 얘기도 잘 통했구요.
    아마 코로나로 이렇게 오래 붙어있을 일이 없었다면, 은퇴전까지 그렇게 살았을거에요.
    3개월 이상 늘 붙어있다보니 역치를 넘어서버린게 문제. ㅎㅎㅎ

    부부의 노후 준비는 건강한 정신과 신체, 적당한 경제력이면 될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생각해보니 장시간 함께 보내야 할 시간에 대한 준비도 포함인거 같아요.
    각자 떨어져 집중할만한 뭔가가 있어야, 둘 사이도 원만하겠다는.
    30년 정도 기간동안 같이 살긴 하지만 각자 일하고 저녁과 주말에만 함께 지내는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24시간 함께 지내는 날이 닥쳤을때 어떻게 지내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미리 계획해두는 것도 노후준비 같아요.

    일단 저는 해방감을 좀 즐기는 중입니다. 매일 저녁에나 만나고 주말에만 함께 하루를 보내는 생활이 이렇게 좋군요.

  • 15. 비슷
    '20.5.23 2:55 PM (175.208.xxx.230)

    토론 좋아하는 남편ㅠ
    피곤해요.
    뭔주제에 대해 제가 열을 내면 동의하면서도 상대쪽 입장도 꼭 얘기해서 얘기를 하려합니다.
    내가 열받아서 얘기하는데 공감은 못해줄 망정 상대방 입장을 대변하다니. 그래서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따져물으면 자기생각이 아니라 그렇게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수있다고.
    말도 못하게 한다고.
    말안섞고 싶어요

  • 16. 어유아유
    '20.5.23 5:47 PM (182.214.xxx.74)

    토론도 그렇게 되는데 그게 설교라면 어떻겠어요 ? 주변 사람들 중엔 아부하고 이용하는 사람만 남더군요 그런 사람도 있다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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