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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버스에 칼잡이 협박범과 저만 남았던 이야기입니다.

.. 조회수 : 3,412
작성일 : 2020-05-08 13:03:51
제가 대학생 때이니 3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이야기에요.
이맘때였을거에요. 덥긴 하지만 한여름은 아니었어요.
수업 끝나고 옥수동에 있는 집으로 귀가하던 길에
여름 옷을 사러 동대문에 가보고 싶더군요.
동대문행 버스에 탔는데 맨 뒤 바로 앞의 좌석이 하나 비었길래 얼른 앉았지요.
버스가 동대문에 가까워지니 점점 사람들이 많이 타고 내리고 번잡했어요.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내릴 준비를 하고있는데
정거장에서 건장한 체격에 약간 허름한 옷차림의 30대말? 40대초반쯤의 남자가 앞문으로 올라서서는
버스안을 휘 둘러보더니 가방에서 커다란 식칼을 꺼내 드는거에요.
버스 뒷문은 내리는 몇몇 사람들로 인해 열려있었는데
그 남자가 칼을 꺼내자마자
갑자기 버스안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허둥지둥 내리기 시작했어요ㅠㅠ
그 남자 뒤로 버스에 오르던 사람들은 다시 돌아 내려버리고요.
저도 내려야겠다고 느껴서 가방을 챙기고 일어서려는데
책이 쏟아져 다시 챙기는 와중에
그 남자가 제 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겁니다...
그리고는 저를 밀치고 제 옆자리에 엉덩이를 밀어넣고 앉았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안에는 저와 바로 옆의 칼 주인,
그리고 버스 기사님 셋 뿐인거죠.
버스기사님의 당황하는 눈빛이 백밀러로 보였어요.
그리고 문을 닫고 버스는 출발.
심장이 펄떡거리며 뛰는 와중에 버스기사님이 얼른 가까운 파출소 앞으로 곧장 가주기를 기다렸죠.
그 남자는 칼을 제 옆에 탁하니 놓더니
" 나 지금 교도소에서 나온지 일주일도 안돼서 배도 고프고 짜증나거든!!"
일케 소리치는 거에요.
옆 눈으로 칼을 보니 완전 새거. 잘 들겠더라구요 ㅠㅠ
" 이봐~돈 있으면 좀 줘봐! 배고파 살 수가 없어"
휴... 내 지갑에 옷 살 돈은 3만원 정도 있었지만
이건 한달 용돈인데 뺏길 생각을 하니 넘 원통하더라구요.
제가 대꾸를 안하고
"어휴~~ 덥네" 하며 버스 창문을 열고는 몸을 돌려 창밖을 보는 척했어요.
사실은 창문으로 몸을 던져 뛰어내릴 궁리를 한거죠.
여차하면 가방부터 창밖으로 던지고 뛰어내린다...
동대문 대로라 차량이 많았지만 칼에 찔려죽느니 뛰어내리는 게 낫겠더라구요.
버스 기사님이 얼른 파출소로 가주시면 좋겠지만 왜 이렇게 시간이 늦게 가는지 애가 타구요.
옆의 남자는 제가 대답을 안하니 열이 받는지
"야, 너 이 칼 안보이냐?? 간땡이 부었네? 엉?? 안들려??" 이러며 지 어깨로 저를 밀어대기 시작했어요.
제가 그 때 뭐라했는지 아세요?
" 왤케 시끄러워?" 이랬어요...
저 미쳤었나봐요...
옆의 남자가 흠짓 어깨밀기를 멈추더니
재수 옴붙었다고 중얼거리더라구요.
그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문열어줘! 소리치니 버스기사님이 정류장도 아닌데 얼른 뒷문을 열어주더군요.
그 남자는 칼을 다시 가방에 넣어서 내렸어요.
기사님이 학생 괜찮아?? 물으셔서 괜찮아요 대답하고는
저 남자를 경찰에 신고해야하지않나 우려도 되고
밥 사먹으라고 3만원이라도 쥐어줄걸 그랬나 후회도 되고
내가 왜 미친놈에게 3만원을 뜯기냐?? 오기도 생기고
저 남자가 탈 다른 버스 승객이 걱정도 되고...
맘이 복잡해지면서 동대문에서 내렸지만
옷을 살 마음이 없어져 집으로 갔어요.
그리고 가족에게 아무말 안했답니다.
말해봤자 뭐하겠어요.
다만 버스를 타면 절대절대 뒤쪽에 안앉아요.
뒷문 가까운 중간지점에만 앉고요, 2인 의자에는 통로쪽에만 앉아요.
여차하면 얼른 버스에서 내릴 수 있어야겠더라구요.
간땡이가 부었던,
아니 초보 노상 강도를 만났던 옛이야기였습니다.





IP : 61.75.xxx.36
2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20.5.8 1:11 PM (175.207.xxx.116)

    아이고야.. 간땡이 부은 이 아가씨야..


    30년 전 일이라 가능했네요
    지금 같으면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바로 신고했을 거고
    cctv가 있어서 범인 잡기도 쉽고
    근데 그 나쁜 놈, 30년 전이라 어찌보면 순한 놈이기도 하네요
    지금 같으면 분노조절장애, 묻지마 폭행 등으로
    아무 생각없이 일 저지르는 놈들도 많아서..

  • 2. 그대에게s
    '20.5.8 1:14 PM (122.46.xxx.180)

    정말 대단한 담력의 소유자시네요.
    평소에도 담력 좋으신거죠?^^
    저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네요.
    보통 책이고 뭐고 도망부터 갈텐데...
    책 챙기느라 못내렸을 때 이미 마음 속에
    뭔가 자신이 있었던 듯? 합니다 ㅎㅎ

  • 3. ㅇㅇ
    '20.5.8 1:18 PM (110.70.xxx.209)

    원글님이 대가 쎄다고 해야할지, 운이 좋았다 해야할지..
    칼 들고 나온 남자가 그러고 쉽게 포기해버리는게 더 황당하네요
    진짜 막나가는 인생이었으면 인정사정 없었을거 같아요.
    별탈 없으셔서 다행요. 읽으면서 제가 다 조마조마..

  • 4.
    '20.5.8 1:19 PM (223.39.xxx.248)

    간이 큰게 아니라 무모하시네요;;;;;

  • 5. ....
    '20.5.8 1:20 PM (110.70.xxx.41)

    30년전 어설픈 강도였기에 망정이지
    피씨방 천원 사용료로 살인하는
    요즘 세상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네요..

  • 6. 어쩜..
    '20.5.8 1:28 PM (182.208.xxx.58)

    그 시절에도 막나가는 폭력범들 있었어요
    공중전화 빨리 안 끊는다고 뭐라했던 뒷사람이 칼 맞고 그랬던 거 같은데..

    저였으면 책이고 뭐고 그냥 내리거나
    한 달 용돈 아니라 가진 거 모두 줬을 거 같네요
    아님 그자리에서 얼어붙었거나

  • 7. ...........
    '20.5.8 1:41 PM (211.109.xxx.231)

    그나마 덜 미친 놈이라 살아 남으신 거예요...ㅠㅠ

  • 8. ..
    '20.5.8 1:41 PM (61.75.xxx.36)

    제가 몸치라 느려서 그 와중에 책도 떨구고 도망못친 걸거에요 ㅜ
    체육실기가 전교 꼴찌에 가까운 몸치라서요.
    창문으로 뛰어내릴 궁리하면서도 나같은 몸치가 잘 뛰어내릴 수 있을지 걱정이 ㅠ
    3만원이 들어있는 지갑을 줄까도 생각했는데
    벌벌 떠는 걸 들켜서 얕보이면... 더 나쁜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결국은 그 남자분도 독하지못한 초보강도였고,
    저같은 재수없는 반응을 하는 상대를 만나서 성공을 못했으니
    강도짓은 접고 열심히 사셨기를 바래봅니다.

  • 9. 칼부림
    '20.5.8 2:05 PM (210.178.xxx.131)

    할거였음 간도 보지 않고 바로 찔러요. 칼 찌르는 것도 해본 놈이 하지. 운이 아주 많이 좋으셨어요. 그때 죽을 운명이 아니었음 훗

  • 10. ...
    '20.5.8 2:06 PM (211.212.xxx.169)

    가족한테 얘기했음..
    가방 안닫고 책흘렸다고 잔소리 일단 한바가지..
    돈안주고 소리질렀다고 또 잔소리...들으셨겠

  • 11. 그깟
    '20.5.8 2:13 PM (178.191.xxx.60)

    책이 뭐라고...
    님아 제발 상황판단 잘하세요.
    그냥 다 버리고 내리는게 답이죠.
    미련하게 책 때문에 생명을..어휴..

  • 12. 미투
    '20.5.8 2:14 PM (125.15.xxx.187)

    우리 집에 강도가 칼을 들고 짱!하고 들어 오네요.
    그것도 대낮 1시에

    저 혼자 있는데 현관문을 제가 열어 줬네요. 글쎄

    결론
    칼을 제가 빼앗아 버렸고요.

    그런데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경찰은 제 말을 안 믿고 약간 돈 여자 취급

    망상----뭐라고 하나 없는 말 꾸며대는 정신이 없는 사람인 줄 알고 우리 아이한테 엄마가 평소에 망상을 잘하지 하면서 2시간이나 줄기차게 물어 봐서 우리 아들이 화가 엄청났다고.

    범인은 한 6일 후 잡혀서 제가 제 정신인 걸 증명해줬죠..

    제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인터넷에 그 글이 올라온 사이트를 여기에 올릴 수도 있어요.

    칼을 제가 빼앗았는데 범인이 들고 뛰었다고 말이 나서 각 초등학교에서는 1주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네요.
    사는 곳은 외국입니다.

    망상을 할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바삐 사는 사람입니다.

  • 13. ...
    '20.5.8 2:17 PM (218.237.xxx.40) - 삭제된댓글

    당시 대학 책값 비쌌어요. 그걸 어떻게 두고내려요. 3만원 주고말지. 지나간 일이니 웃고 지나가지만 요즘같은 세상에선 웃을수도없네요

  • 14. 휴~
    '20.5.8 2:35 PM (112.214.xxx.115)

    무모하신 분들 많네요. 하기야 지인은 미국슈퍼에서 알바하는데 권총강도 들어오니까 사장 아줌마가 돈주기 싫다고 자꾸 자기한테 한국말해서 미치는줄 알았다고. 그럴 땐 그냥 돈 털리고 영어만 해야한다네요. 한국말로 둘이 얘기하면 못알아들으니까 꼼수 쓰는줄 알고 총 쏴버린다고.

  • 15.
    '20.5.8 2:43 PM (124.58.xxx.171)

    소설쓰고있네

  • 16. ..
    '20.5.8 3:17 PM (61.75.xxx.36)

    바로 윗님처럼
    소설쓰고 있다고 비웃는 사람이 있어서 남에게 말 안한거에요.
    누구나 재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같은 해에 대학 후배에게 강간을 당할 뻔 했는데
    강도에게 했듯이 그 무서운 상황을 안무서운 척
    무심히 대하니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더군요.
    그 상황도 주위에 얘기 안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이라며 안 믿어주거나, 당하고도 안당한 척한다거나, 오하려 선배가 먼저 유혹한 거 아니냐는 등의 입방아에 올라서 2차 3차의 정산적 가해를 받을 여지가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혼자서 곰곰히 궁리하다가
    대자보를 붙여서 학교측의 처벌을 요구할까도 생각했지만
    대학교 교수님들의 보수적 성향을 생각해보면 제게 유리한 상황으로 갈 것 같지않더군요.
    몇 년 후에
    한참 어린 여자 후배를 그 놈이 건드려서
    여자후배가 자퇴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넘 아팠습니다.
    내가 그 때 용기를 내어 폭로 대자보를 붙였으면
    비슷한 피해자들이 뭉쳐 그 놈을 처벌하는 계기가 되었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어요.

  • 17. 저는
    '20.5.8 3:49 PM (210.178.xxx.131)

    제가 방문 잠그고 있었고 다른 방의 돈만 훔쳐간 좀도둑이 있었어요. 도둑은 제가 여자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내가 밖에 누구냐고 소리질렀으니까요. 가족이 아니라고 직감하고 핸드폰만 들고 있었죠. 만약 강도였으면 방문을 어떻게든 열어서 나에게 접근했겠죠. 강간 전적이 있는 사람이면 말할 것도 없구요. 저도 운이 좋은 케이스였죠. 경찰은 30분 뒤에나 왔고

  • 18. ㅇㅇㅇ
    '20.5.8 4:06 PM (110.70.xxx.209) - 삭제된댓글

    네..성추행이건 희롱이건, 피해를 당하면 다른 피해자가
    없도록 주위에 알리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것 같아요.
    일말의 희생은 있더라도 말이죠.

  • 19. ㅇㅇ
    '20.5.8 4:07 PM (110.70.xxx.209)

    네..이미 지난일이니 어쩔수 없지만..
    글 읽고나니 성추행이건 희롱이건, 피해를 당하면
    다른 피해자가 없도록 주위에 알리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것 같아요.
    일말의 희생은 있더라도 말이죠.

  • 20. ㅠㅠ
    '20.5.8 5:05 PM (175.196.xxx.92)

    현명한 대처는 아닌듯합니다.

    글케하면 무시한다고 더 자극받아 큰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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