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버스에 칼잡이 협박범과 저만 남았던 이야기입니다.
이맘때였을거에요. 덥긴 하지만 한여름은 아니었어요.
수업 끝나고 옥수동에 있는 집으로 귀가하던 길에
여름 옷을 사러 동대문에 가보고 싶더군요.
동대문행 버스에 탔는데 맨 뒤 바로 앞의 좌석이 하나 비었길래 얼른 앉았지요.
버스가 동대문에 가까워지니 점점 사람들이 많이 타고 내리고 번잡했어요.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내릴 준비를 하고있는데
정거장에서 건장한 체격에 약간 허름한 옷차림의 30대말? 40대초반쯤의 남자가 앞문으로 올라서서는
버스안을 휘 둘러보더니 가방에서 커다란 식칼을 꺼내 드는거에요.
버스 뒷문은 내리는 몇몇 사람들로 인해 열려있었는데
그 남자가 칼을 꺼내자마자
갑자기 버스안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허둥지둥 내리기 시작했어요ㅠㅠ
그 남자 뒤로 버스에 오르던 사람들은 다시 돌아 내려버리고요.
저도 내려야겠다고 느껴서 가방을 챙기고 일어서려는데
책이 쏟아져 다시 챙기는 와중에
그 남자가 제 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겁니다...
그리고는 저를 밀치고 제 옆자리에 엉덩이를 밀어넣고 앉았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안에는 저와 바로 옆의 칼 주인,
그리고 버스 기사님 셋 뿐인거죠.
버스기사님의 당황하는 눈빛이 백밀러로 보였어요.
그리고 문을 닫고 버스는 출발.
심장이 펄떡거리며 뛰는 와중에 버스기사님이 얼른 가까운 파출소 앞으로 곧장 가주기를 기다렸죠.
그 남자는 칼을 제 옆에 탁하니 놓더니
" 나 지금 교도소에서 나온지 일주일도 안돼서 배도 고프고 짜증나거든!!"
일케 소리치는 거에요.
옆 눈으로 칼을 보니 완전 새거. 잘 들겠더라구요 ㅠㅠ
" 이봐~돈 있으면 좀 줘봐! 배고파 살 수가 없어"
휴... 내 지갑에 옷 살 돈은 3만원 정도 있었지만
이건 한달 용돈인데 뺏길 생각을 하니 넘 원통하더라구요.
제가 대꾸를 안하고
"어휴~~ 덥네" 하며 버스 창문을 열고는 몸을 돌려 창밖을 보는 척했어요.
사실은 창문으로 몸을 던져 뛰어내릴 궁리를 한거죠.
여차하면 가방부터 창밖으로 던지고 뛰어내린다...
동대문 대로라 차량이 많았지만 칼에 찔려죽느니 뛰어내리는 게 낫겠더라구요.
버스 기사님이 얼른 파출소로 가주시면 좋겠지만 왜 이렇게 시간이 늦게 가는지 애가 타구요.
옆의 남자는 제가 대답을 안하니 열이 받는지
"야, 너 이 칼 안보이냐?? 간땡이 부었네? 엉?? 안들려??" 이러며 지 어깨로 저를 밀어대기 시작했어요.
제가 그 때 뭐라했는지 아세요?
" 왤케 시끄러워?" 이랬어요...
저 미쳤었나봐요...
옆의 남자가 흠짓 어깨밀기를 멈추더니
재수 옴붙었다고 중얼거리더라구요.
그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문열어줘! 소리치니 버스기사님이 정류장도 아닌데 얼른 뒷문을 열어주더군요.
그 남자는 칼을 다시 가방에 넣어서 내렸어요.
기사님이 학생 괜찮아?? 물으셔서 괜찮아요 대답하고는
저 남자를 경찰에 신고해야하지않나 우려도 되고
밥 사먹으라고 3만원이라도 쥐어줄걸 그랬나 후회도 되고
내가 왜 미친놈에게 3만원을 뜯기냐?? 오기도 생기고
저 남자가 탈 다른 버스 승객이 걱정도 되고...
맘이 복잡해지면서 동대문에서 내렸지만
옷을 살 마음이 없어져 집으로 갔어요.
그리고 가족에게 아무말 안했답니다.
말해봤자 뭐하겠어요.
다만 버스를 타면 절대절대 뒤쪽에 안앉아요.
뒷문 가까운 중간지점에만 앉고요, 2인 의자에는 통로쪽에만 앉아요.
여차하면 얼른 버스에서 내릴 수 있어야겠더라구요.
간땡이가 부었던,
아니 초보 노상 강도를 만났던 옛이야기였습니다.
1. ㅇㅇ
'20.5.8 1:11 PM (175.207.xxx.116)아이고야.. 간땡이 부은 이 아가씨야..
30년 전 일이라 가능했네요
지금 같으면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바로 신고했을 거고
cctv가 있어서 범인 잡기도 쉽고
근데 그 나쁜 놈, 30년 전이라 어찌보면 순한 놈이기도 하네요
지금 같으면 분노조절장애, 묻지마 폭행 등으로
아무 생각없이 일 저지르는 놈들도 많아서..2. 그대에게s
'20.5.8 1:14 PM (122.46.xxx.180)정말 대단한 담력의 소유자시네요.
평소에도 담력 좋으신거죠?^^
저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네요.
보통 책이고 뭐고 도망부터 갈텐데...
책 챙기느라 못내렸을 때 이미 마음 속에
뭔가 자신이 있었던 듯? 합니다 ㅎㅎ3. ㅇㅇ
'20.5.8 1:18 PM (110.70.xxx.209)원글님이 대가 쎄다고 해야할지, 운이 좋았다 해야할지..
칼 들고 나온 남자가 그러고 쉽게 포기해버리는게 더 황당하네요
진짜 막나가는 인생이었으면 인정사정 없었을거 같아요.
별탈 없으셔서 다행요. 읽으면서 제가 다 조마조마..4. 헐
'20.5.8 1:19 PM (223.39.xxx.248)간이 큰게 아니라 무모하시네요;;;;;
5. ....
'20.5.8 1:20 PM (110.70.xxx.41)30년전 어설픈 강도였기에 망정이지
피씨방 천원 사용료로 살인하는
요즘 세상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네요..6. 어쩜..
'20.5.8 1:28 PM (182.208.xxx.58)그 시절에도 막나가는 폭력범들 있었어요
공중전화 빨리 안 끊는다고 뭐라했던 뒷사람이 칼 맞고 그랬던 거 같은데..
저였으면 책이고 뭐고 그냥 내리거나
한 달 용돈 아니라 가진 거 모두 줬을 거 같네요
아님 그자리에서 얼어붙었거나7. ...........
'20.5.8 1:41 PM (211.109.xxx.231)그나마 덜 미친 놈이라 살아 남으신 거예요...ㅠㅠ
8. ..
'20.5.8 1:41 PM (61.75.xxx.36)제가 몸치라 느려서 그 와중에 책도 떨구고 도망못친 걸거에요 ㅜ
체육실기가 전교 꼴찌에 가까운 몸치라서요.
창문으로 뛰어내릴 궁리하면서도 나같은 몸치가 잘 뛰어내릴 수 있을지 걱정이 ㅠ
3만원이 들어있는 지갑을 줄까도 생각했는데
벌벌 떠는 걸 들켜서 얕보이면... 더 나쁜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결국은 그 남자분도 독하지못한 초보강도였고,
저같은 재수없는 반응을 하는 상대를 만나서 성공을 못했으니
강도짓은 접고 열심히 사셨기를 바래봅니다.9. 칼부림
'20.5.8 2:05 PM (210.178.xxx.131)할거였음 간도 보지 않고 바로 찔러요. 칼 찌르는 것도 해본 놈이 하지. 운이 아주 많이 좋으셨어요. 그때 죽을 운명이 아니었음 훗
10. ...
'20.5.8 2:06 PM (211.212.xxx.169)가족한테 얘기했음..
가방 안닫고 책흘렸다고 잔소리 일단 한바가지..
돈안주고 소리질렀다고 또 잔소리...들으셨겠11. 그깟
'20.5.8 2:13 PM (178.191.xxx.60)책이 뭐라고...
님아 제발 상황판단 잘하세요.
그냥 다 버리고 내리는게 답이죠.
미련하게 책 때문에 생명을..어휴..12. 미투
'20.5.8 2:14 PM (125.15.xxx.187)우리 집에 강도가 칼을 들고 짱!하고 들어 오네요.
그것도 대낮 1시에
저 혼자 있는데 현관문을 제가 열어 줬네요. 글쎄
결론
칼을 제가 빼앗아 버렸고요.
그런데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경찰은 제 말을 안 믿고 약간 돈 여자 취급
망상----뭐라고 하나 없는 말 꾸며대는 정신이 없는 사람인 줄 알고 우리 아이한테 엄마가 평소에 망상을 잘하지 하면서 2시간이나 줄기차게 물어 봐서 우리 아들이 화가 엄청났다고.
범인은 한 6일 후 잡혀서 제가 제 정신인 걸 증명해줬죠..
제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인터넷에 그 글이 올라온 사이트를 여기에 올릴 수도 있어요.
칼을 제가 빼앗았는데 범인이 들고 뛰었다고 말이 나서 각 초등학교에서는 1주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네요.
사는 곳은 외국입니다.
망상을 할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바삐 사는 사람입니다.13. ...
'20.5.8 2:17 PM (218.237.xxx.40) - 삭제된댓글당시 대학 책값 비쌌어요. 그걸 어떻게 두고내려요. 3만원 주고말지. 지나간 일이니 웃고 지나가지만 요즘같은 세상에선 웃을수도없네요
14. 휴~
'20.5.8 2:35 PM (112.214.xxx.115)무모하신 분들 많네요. 하기야 지인은 미국슈퍼에서 알바하는데 권총강도 들어오니까 사장 아줌마가 돈주기 싫다고 자꾸 자기한테 한국말해서 미치는줄 알았다고. 그럴 땐 그냥 돈 털리고 영어만 해야한다네요. 한국말로 둘이 얘기하면 못알아들으니까 꼼수 쓰는줄 알고 총 쏴버린다고.
15. ㅋ
'20.5.8 2:43 PM (124.58.xxx.171)소설쓰고있네
16. ..
'20.5.8 3:17 PM (61.75.xxx.36)바로 윗님처럼
소설쓰고 있다고 비웃는 사람이 있어서 남에게 말 안한거에요.
누구나 재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같은 해에 대학 후배에게 강간을 당할 뻔 했는데
강도에게 했듯이 그 무서운 상황을 안무서운 척
무심히 대하니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더군요.
그 상황도 주위에 얘기 안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이라며 안 믿어주거나, 당하고도 안당한 척한다거나, 오하려 선배가 먼저 유혹한 거 아니냐는 등의 입방아에 올라서 2차 3차의 정산적 가해를 받을 여지가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혼자서 곰곰히 궁리하다가
대자보를 붙여서 학교측의 처벌을 요구할까도 생각했지만
대학교 교수님들의 보수적 성향을 생각해보면 제게 유리한 상황으로 갈 것 같지않더군요.
몇 년 후에
한참 어린 여자 후배를 그 놈이 건드려서
여자후배가 자퇴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넘 아팠습니다.
내가 그 때 용기를 내어 폭로 대자보를 붙였으면
비슷한 피해자들이 뭉쳐 그 놈을 처벌하는 계기가 되었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어요.17. 저는
'20.5.8 3:49 PM (210.178.xxx.131)제가 방문 잠그고 있었고 다른 방의 돈만 훔쳐간 좀도둑이 있었어요. 도둑은 제가 여자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내가 밖에 누구냐고 소리질렀으니까요. 가족이 아니라고 직감하고 핸드폰만 들고 있었죠. 만약 강도였으면 방문을 어떻게든 열어서 나에게 접근했겠죠. 강간 전적이 있는 사람이면 말할 것도 없구요. 저도 운이 좋은 케이스였죠. 경찰은 30분 뒤에나 왔고
18. ㅇㅇㅇ
'20.5.8 4:06 PM (110.70.xxx.209) - 삭제된댓글네..성추행이건 희롱이건, 피해를 당하면 다른 피해자가
없도록 주위에 알리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것 같아요.
일말의 희생은 있더라도 말이죠.19. ㅇㅇ
'20.5.8 4:07 PM (110.70.xxx.209)네..이미 지난일이니 어쩔수 없지만..
글 읽고나니 성추행이건 희롱이건, 피해를 당하면
다른 피해자가 없도록 주위에 알리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것 같아요.
일말의 희생은 있더라도 말이죠.20. ㅠㅠ
'20.5.8 5:05 PM (175.196.xxx.92)현명한 대처는 아닌듯합니다.
글케하면 무시한다고 더 자극받아 큰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