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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닭 간 요리.(다소 호러블하니 비위 약하시면 통과를)

... 조회수 : 2,209
작성일 : 2020-04-29 09:40:18

어릴 적엔 고기를 못 먹었어요.. 소, 돼지, 닭 모두.

유일하게 닭의 간은 좋아해서 닭 한 마리에서 나오는 조그만 간 하나는 제 차지였습니다.

고소하고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듯이 부서지는 식감도 좋았고 진한 특유의 향도 좋아했죠.

친구들은..

간은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 너 구미호니? 

요즘은 판매 닭에는 간이 미포함이라

가끔 돼지 간이나 사 먹으며 입맛을 달랬는데 돼지 간은 좀 뻣뻣해서 닭의 그것이 그리웠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냉동 닭간을 파는 걸 알게 되었죠..

알고 보니 고양이 밥 제조를 위해.. 많이들 사는 거.

뭔가가 먹고 싶어지는 오후 5시

인터넷으로 냉동 닭간을 주문했습니다..

1킬로그램 단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리고.. 드디어 물건이 도착했는데.

포장을 뜯자.

반쯤 녹은 그것이 보였습니다.

간은 피를 많이 갖고 있는 무른 조직

그것이 반쯤 해동되었으니..

선명한 핏빛의 비닐팩이 눈앞에 ,,,,

일단 뚜껑 덮고 밥부터 먹었습니다..

밥 할 기운이 없어서 휴교중인 딸에게 김치 볶음밥을 해달라고 요청했죠.

먹으면서도 핏빛의 간 생각.

도저히.. 저 물건을 맹물에 못 씻겠다. 그 생각뿐.

물과 함께 씻겨서 싱크대 배수구로 흘러내려가는 붉은 핏줄기..

상상만 해도 속이 메슥거렸습니다.

큰 냄비에 물을 가득. 월계수 잎도 넣고 정종도 넣고

물이 끓었습니다.그것들을 풍덩풍덩

붉은 액체는 갈색 거품으로 변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겉이 대충 익은 그것들을 다른 윅으로 옮겼습니다

파프리카, 대파, 당근, 양파. 냉장고에 있는 채소들을 넣고

마늘도 듬뿍 넣고 맛술도 뿌렸습니다.

엄마가 해주셨던 닭볶음탕처럼 간장과 고춧가루와 깨소금 등등 갖은양념을 다 넣고

한참을 가열했습니다. (혹시라고 속이 안익었을까봐..ㄷㄷㄷ)

완성된 모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맛을 볼 차례인데...

아.. 안 땡긴다.

배가 불러서가 아니다.. 그냥 안 땡긴다.

고심끝에 냉장고 포도주를 꺼냈습니다.

접시에 그것 조금, 약 7~8개..

포도주 한 잔.

조금 떼어먹어보니 부드러운 식감은 어린 시절 먹었던 그 맛이 분명합니다..

분명

그러했습니다.


포도주도 한 모금.

포도주에서 피맛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의 마지막 만찬도 아닌데

왜.. 피 맛이 나는 걸까요.

닭 한 마리과 같이 조리된 닭간 1개랑 비교해보면

백 마리의 닭의 간을 농축시킨 맛..1킬로그램의 달간의 맛은...............

백 배 정도 강했습니다.


그것을 먹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영화 <옥자>가 꿈에 나왔습니다.

- 옥자는 아직 안 본 영화인데도.. . 옥자가 도축장에 끌려가는 장면이 여러 번 되풀이..ㄷㄷㄷ

아침에 계란말이를 했습니다. 한 개도 안(못) 먹었습니다.  계란을 마는 동안에도 어디선가 피 냄새가 나는 듯했습니다..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도 통과.

마침 사다 놓은 연두부 한 팩을 얌전히 까먹고

출근하자마자 한 일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 먹기.

남편이 출근길에 말하더군요.

어쩌면 넌.. 그런게 먹고싶냐. 난 살면서 한번도 닭의 간이 먹고싶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

- 네, 저도 이제 그럴것같습니다.


당분간 채식주의자가 될 것 같습니다.

팀원들에게 오늘은 각자 먹자 했습니다.​




IP : 203.142.xxx.241
1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0.4.29 9:45 AM (110.70.xxx.145)

    어제 글은 못봤지만
    닭내장은 냉동을 사면 안되어요.
    우리 어렸을때 먹은 맛있고 적당히 탄력있고 구수함이 입안가득 퍼지는 닭간은
    막 시장닭집에서 산닭 잡아와서 바로 냄비에 들어간 경우에 해당되죠.

    인천인가 닭내장탕 하는 유명한 집들도
    다 닭공장이 바로 옆에 있어서 생물로 바로 당일 잡은 것들로 하는 것이지 냉동은 아니됨.

  • 2. 왜..
    '20.4.29 9:47 AM (211.212.xxx.169)

    이 글을 읽고 피천득의 인연이 생각날까요..
    첫사랑 만나기 직전에 자리를 파했던 이전 기억도 나고....

    그나저나 즐거운 닭간의 기억이 그리 되어...지못미

  • 3.
    '20.4.29 9:51 AM (110.70.xxx.145)

    이 글 읽다보니
    큰 재래시장 닭집이라도 가서
    한마리 즉석에서 잡아다가
    닭똥집,닭발, 닭간, 뱃속에서 나온 알노른자 모여있는 것등등 넣고서
    울엄마가 간장설탕파마늘생강 넣고 졸여주시던
    닭졸임 해먹고 싶네요.

  • 4. ...
    '20.4.29 9:52 AM (58.235.xxx.246)

    호러블해야 하는데.. 생생하기만 하네요 ㅎㅎㅎㅎ
    이렇게 표현력이 좋으시니 못 드실 밖에요 ㅎㅎㅎㅎ

    (아무렇지도 않은 나는 뭔가...)

  • 5. ㅇㅇㅇ
    '20.4.29 9:55 AM (49.196.xxx.67)

    그냥 전자렌지에 넣고 5분해서 지저분하니 한번 헹구시던지
    건져서 소금 정도면 되는 데 너무 많이 손대셨네요

  • 6. 음님
    '20.4.29 9:56 AM (175.127.xxx.153)

    재래시장 닭 잡는거 혹시 보셨나요
    산채로 기계 넣고 돌린다던데 그 장면 보면 못먹을듯

  • 7.
    '20.4.29 9:59 AM (110.70.xxx.145)

    네, 엄마손잡고 시장가서 매번 봤어요.
    기계넣고 돌려야 얘네들이 깃털옷을 벗고 누드닭이 되죠.

    닭집앞에선 항상 까맣고 커다란 가마솥웍에서
    시장 통닭이 통으로 세상 고소한 냄새를 온시장에 은혜로이 풍기면서 튀겨지고 있었더랬죠.
    안따라갈수 없었던게
    순대좌판에서 썰어지는 족족 순대찍어먹고 등등 맛난것 얻어먹으러.

  • 8.
    '20.4.29 10:12 AM (110.70.xxx.145)

    아, 그리고 산채로 넣는 것은 아니에요
    목을 살짝 칼로 .....
    목없는 미녀상태로.......
    그렇지만 기계안에 들어가서는 살아있는 닭보다 활동성이 뛰어나죠.
    그래서 산채로 넣는다고 하신듯.

    그리고 저렇게 닭의 모든 부위를 넣고 음식을 해놓으면
    원글님처럼 닭간만 쏘~옥 빼내서 입에 넣어도
    닭한마리의 맛난 맛들이 모여있어서 닭간만 단독조리한 것과 맛이 영 달라요. 완전 다른 음식이라고 봐도됨.

    그래서 중국에서 닭이 닭벼슬,머리부터 닭발까지 한마리가 온전히 요리되어서
    눈감고 접시에 누워서 등장하는 것도 이해가 감.
    맛이 워낙 차이나니.

    원글님 댓글 길게 많이 달아서 죄송.
    아무튼 욕보셨어요. 당분간 비건식으로 입이랑 코랑 정화기간을 가지소서.

  • 9. ..
    '20.4.29 10:32 AM (203.142.xxx.241)

    - 110님. 신선도 문제도 크겠네요.. 아.. 진즉 알았더라면 그냥 전문점 찾아갈것을..ㅠ
    - 211님..ㅋㅋㅋ 그렇네요. 그냥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것을.. 그랬더라면 그는 참 좋은 간,,,
    - 음님..저도 그 맛을 그리워하다가 이 지경ㅇ을
    - 58님.. 표현력..실은 조금 순화시켰습니다...다들 밥맛 떨어지실까봐..칭찬 감사합니다.
    - 49님.. 너무 과했던듯 싶네요. ㅜ
    - 175님과 음님.. 제 기억으로는 그 닭잡는 기계에 넣을 때는 식칼로 닭의 배를.. 푸덕거리는 닭을,, 뜨거운 물 한바가지와 함께 기계에 넣고 돌렸더랬죠. 비릿한 김이 기계 밖으로 무럭무럭.. 나온 뒤에 빨가벗겨진 닭과 깃털이 분리되거 배출되었더랬는데..
    정말 호러블하게도 저와 몇몇의 아이들에겐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였습니다.

  • 10. 그리고 음님
    '20.4.29 10:34 AM (203.142.xxx.241)

    절대 죄송하실거 없습니다.
    뭐랄까.. 숨겨왔던 저의 호러블한 취향을 함께 나눌 분을 넷상에서 만난 반가움을 느꼈답니다.
    아무튼
    몰빵은 옳지 않아요. 앞으로 절대 몰빵은 안할거에요.

  • 11. 자끄라깡
    '20.4.29 11:19 AM (14.38.xxx.196)

    살코기를 먹는 것과
    선지를 먹는 것과
    간을 먹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안해요.

    그냥 다 같은 남의 살이죠.

  • 12. 자끄라깡
    '20.4.29 11:20 AM (14.38.xxx.196)

    호텔에서 거위간 먹은적 있어요.
    맛있었어요.

    거위간이나 닭간이나

  • 13. ..
    '20.4.29 1:39 PM (180.230.xxx.123)

    오랜만에 어릴적 기억이 살아나네요
    집근처에 시장이 있었는데 철망같은데 산닭이 잔뜩 있었고 어른들은 닭을 골라서 저놈으로 주세요 하면
    주인아저씨가 닭날개를 뒷짐진 자세로 한손에 모아쥐고 목을 탁 쳐서(떨어지진 않고 ) 뜨거운 물이 끓는 드럼통에 잠깐 담궜다 꺼내서 닭털을 직접 뽑으셨어요
    털뽑는 드럼통은 저 어린시절엔 없었던지, 아님 우리동네시장만 그랬던지 모르겠네요
    배를 가르면 계란이 되다만 크고작은 노른자들이 조랑조랑 들어있었어요
    생선가게에는 바께스에 손질하고 남은 장어대가리만 잔뜩 들어있었는데 대가리만 있는데도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것처럼 움직이고 있어서 지나가다 멈춰서서 구경했던 기억도 있네요ㅎㅎ
    지금같으면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을텐데 그땐 그게 늘 보던 풍경이라...
    어언 오십여년전..참 오래된 옛날이네요

  • 14. djflfE
    '20.4.29 1:43 PM (203.142.xxx.241)

    어릴때는 왜 그런 것들이..
    잔혹하다는 생각 하나 없이 흥미진진하기만 했을까요..
    개 잡는 건 불쌍하고 그랬는데 닭은 그냥 고기로만 생각했었나봐요.-.-
    이쯤되면 성악설이 맞을지도 모르겠고요.
    생각나는게.. 옛날에 별 유흥거리가 없던 시대에 공개처형은 아주 재미난 구경거리였다는,,

  • 15. 글재밌네요
    '20.4.29 4:00 PM (223.38.xxx.235)

    아 저도 각종 내장 성애자인데
    닭백숙 하면 거기 붙은 간 정말 좋아해요 ㅎㅎㅎㅎ
    성공하셨으몀 저도 따라해보는 건데요!

    프렌치식당에사 파테 먹는 걸로 만족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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