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전우용님 페이스북.-1

공감 조회수 : 1,913
작성일 : 2020-04-16 17:26:34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언론매체들이 정치학자나 정치 평론가들의 전문적 평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들 경청할 만한 이야기지만,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향후의 ‘역사적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개요를 담기에도 터무니없이 짧지만 SNS에 올리기에는 긴 글을 몇 꼭지로 나눠 올릴까 합니다. 물론 순전히 제 개인 의견일 뿐이라서 한국 역사학계 전체에서는 ‘특이 소견’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 이후로는 당분간(아마도 꽤 오랫동안) 정치 관련 글은 쓰지 않으려 합니다.

1. 중도층과 밭갈기

저는 프로야구에 관심을 끊은 지 꽤 오래 됐습니다. 류현진, 추신수 말고 아는 선수 이름도 없고, 작년에 어느 팀이 우승했는지도 모릅니다. 야구 경기장에 안 가는 것은 물론, TV 중계도 안 봅니다. 당연히 누가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고 물으면 “관심 없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담아둔 팀은 있습니다. 40년 전 프로야구 개막 때부터 몇 년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를 응원했었고, 그 관성 때문에 지금도 누가 집요하게 물으면 두산이라고 답합니다. 당시 OB 베어스를 응원한 이유는 고향 연고팀이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다섯 살 때 떠난 고향이지만 지역 연고의식은 이렇게나 강력합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현재 50대 이상 서울 사람들 태반은 자기가 ‘서울 사람’이자 ‘고향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역적 이중 정체성’은 1960년대 급속한 도시화가 낳은 산물입니다.

프로야구팀 응원보다 더 강력한 정체성 구성 요소가 정당 지지입니다. 일단 어떤 정당과 자기 사이에 주관적 ‘연계’를 맺은 사람은 거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아무리 못해도, 홧김에 경기를 안 볼지언정 라이벌팀 응원으로 돌아서지는 않는 게 사람 심리입니다. 정당 지지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른바 ‘중도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마음속에 지지 정당이 있으나 누가 물으면 “관심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예 투표장에 안 가고, 속마음을 숨기는 ‘중도층’은 상황에 따라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합니다. 이른바 ‘중도층’ 중 상당수는 ‘속마음을 숨기는 소극적 지지자’라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그래서 선거의 승패는 어느 정당에 ‘적극적 지지자’가 많으냐보다는 어느 정당이 ‘소극적 지지자’들을 투표장에 더 많이 끌어오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상황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꾸는 이른바 ‘스윙 보터’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겁니다.

물론 ‘더 강한 연고’에 이끌려 지지 정당을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지 정당도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대다수 가정에서는 자식이 아버지 말도 안 듣고, 어머니가 자식 말도 안 듣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지난 4년 간 총선, 대선, 지선, 총선에서 민주당이 연거푸 승리했습니다. 현 정권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비교해 모든 면에서 ‘총체적 우위’를 입증한 것도 주요 이유지만, 민주 시민들이 자기 돈과 시간과 열정을 기울여 타인의 ‘정체성’을 바꾸려고 노력한 것이 더 큰 이유일 겁니다. 30년 전 ‘3당 합당’ 당시에는 요원한 일이라고 여겼던 일이, 불과 한 세대만에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런 일상적인 노력이, 한국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힘의 원천입니다. 이번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라기보다 ‘밭갈이’한 시민들의 승리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한국민으로 하여금 ‘후진국민’이라는 자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민주시민들의 ‘밭갈이’가 계속되는 한, 한국 정치도 ‘선진국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IP : 14.42.xxx.85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출처
    '20.4.16 5:27 PM (14.42.xxx.85)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3716357481769847&id=10000186896182...

  • 2. 와우
    '20.4.16 5:40 PM (223.33.xxx.208)

    짝짝짝 좋은 글 기쁜 마음 감사합니다

  • 3. 야구는모르지만
    '20.4.16 6:37 PM (175.211.xxx.106)

    항상 공감하며 읽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몇없는 분중의 한사람.

  • 4.
    '20.4.16 10:05 PM (218.236.xxx.162)

    글 고맙게 잘 읽고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정치관련 글도 써주시면 좋겠는데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067220 딸이랑 언제부터 쇼핑가능해요? 6 2020/04/20 1,789
1067219 요가 필라텥스 코로나후 2020/04/20 1,039
1067218 로스트란드 그릇은 스웨덴의 국민그릇인가요? 2 ........ 2020/04/20 1,946
1067217 시부모나 남편한테 잘해서.. 14 .... 2020/04/20 5,276
1067216 포린 폴리시 "문재인의 압도적인 승리가 한국정치를 영원.. 21 일독강추요 2020/04/20 4,608
1067215 대통령님 핏. . 18 ㄱㄴ 2020/04/20 4,228
1067214 백번양보해서 유시민이 이재명 뽑으라면 뽑으시겠어요? 66 ㅇㅇ 2020/04/20 3,198
1067213 다른집 초등 애들도 조부모님댁 가면 티비만 보나요?ㅜㅜ 18 .... 2020/04/20 4,046
1067212 총선 부정선거 조사 청원을... 29 배꼽빠짐.... 2020/04/20 3,545
1067211 홈즈. 테라스 앞에 실개천 흐르면 좋을것 같죠, 12 ... 2020/04/20 5,059
1067210 부부의 세계 가장 마음아픈 장면 51 2020/04/19 18,844
1067209 168에 서른아홉인 남자도 결혼할 수 있을까요? 56 168 2020/04/19 6,941
1067208 홍새우&보리새우 맛이 깊은 거는? 국물 2020/04/19 539
1067207 자발적 자가격리자. 나야나. 5 ㅇㅇ 2020/04/19 1,217
1067206 꼬아서 듣지 않고 담백하게 답변하는 노하우 있으세요? 9 네에 2020/04/19 3,320
1067205 점 뺐는데 오래 가네요?ㅜㅡ 6 ㅡㅡ 2020/04/19 1,856
1067204 뭔가 유시민급이 더높아지는 느낌 20 ㄱㄴ 2020/04/19 3,617
1067203 꼬릿한 냄새 없어질까요? 2 oo 2020/04/19 2,591
1067202 싸고 안전하고 예쁜 그릇 추천 부탁드려요 14 가성비 2020/04/19 4,080
1067201 영어문장은 읽을 때의 규칙이 있나요. 4 영어 고수님.. 2020/04/19 2,035
1067200 질문) 침대 매트리스 대학생 2020/04/19 622
1067199 유시민의 뽑지말아야할 정치인과 이재명이 딱 맞아떨어져요. 21 ㅇㅇ 2020/04/19 2,828
1067198 까눌레 배울 수있는곳 & 까눌레 맛집 소개 부탁드려요 12 ^^* 2020/04/19 1,702
1067197 미용실 다녀와서 5 ㄱㄴㄷ 2020/04/19 2,538
1067196 그냥 하이바이마마 보고 8 . . 2020/04/19 3,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