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지원아 잘 지내지? (오뎅탕 끓이려다가 묻는 안부)

... 조회수 : 2,483
작성일 : 2020-04-15 03:02:17
봉사활동 했던 기관에서 만난 아이가 있었어요.
주중에 한번 늦오후에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 연령이 지나서
어른된 입장에서 어떻게 애보고 오지 말라고 해- 하며
어렵게 말을 건넸어요. 으른이래봤자 저도 이십대였지만;

여기는 지원이보다 어린 아이들만 올 수 있어서,
그 친구들한테도 기회를 주어야 할 것 같아
선생님 말 이해할 수 있지?

입이 어찌나 안 떨어지던지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요

선생님 근데 그냥 오면 안돼요?
그냥 오기만 할게요

왜 동생들 보고 싶을 것 같아?
너 혹시 여기 안 오면 학원 가야해?

아니요...그게 아니고...
그 시간에 엄마 남자친구가 집에 오는데 난 싫어요

엄마는 얼굴 뵌 분이고 아이들 잘 케어하시는 것 알고 있었어요
지원이 위로 동생을 이뻐라 하는 언니가 둘이나 있었고요
건너 알기로는 재혼을 고려한다고 들어 미루어 짐작컨데
아마도 남자분이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 같았어요
그 상황안에서 어른들 나름의 애를 쓰고 계셨겠죠
하지만 어린 마음에는 그냥 싫을 수 있지요
언니들은 아저씨 좋아한다고, 그래서 나만 외톨이라고 투덜투덜

담당 복지사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원칙 얘기하고
저는 애 눈 보면서 괜히 생각이 멀리 가다보면
이거 조금 오바해서 염려를 해야 하나 걱정이 가득해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쪼랩 봉사자는 머리가 터질것 같고...

일단은 아이에게 봉사를 맡겨서 그 시간에 계속 불러내었어요
가위질도 시키고, 꼬맹이 코도 닦아달라 하고, 잡일 부탁하고
어쨌든 오는게 그저 좋은 이 어린 아가씨는 뭐든 신나하고
짐짓 선생님인 체 하느라 부탁한 일들을 곧잘 해주어서 대견했죠
양면 복사를 을매나 척척 잘했는지

그러던 아이는 끝나면 집에 가기 싫어서 센터 앞을 맴돌고
아이 엄마는 갸 기다리느라 고기 못 굽고 있다고 전화가 오고
언니들이 애 데리러 오고
그럼 애들 호떡 오뎅 뚱바 하나씩 입에 물려 집에 보내고...
바나나 우유 물고 있는 아이를 보면 그저 애 같다가도
언니 손에 끌려 가는 애 등짝 보면 괜시리
이 아이 마음의 어딘가는 일찍 어른이 되는걸까 해서 좀 아프기도 하고
그랬었었더랬어요...아이고 벌써 십여년 전의 일

지원아 선생님은 이제 영락없는 아점마가 되었어
다행히 선생님만 늙은 건 아니라서 ㅎㅎ
어느새 지원이도 이십대가 한창이겠네
선생님은 한번씩 네 생각을 하면서
혹시라도 지원이에게 잘못했던게 있을까
선생님도 그때 많이 어리숙해서
네 마음을 다 알지 못해 어렵고 늘 미안했단다
지원이가 건강히 잘 지내고 있을거라 생각해

메뉴 오뎅탕 하려다가...
편지쓰고 있네요;
잘 컸겠죠 지원이

* 엄마 욕은 혹시라도 하지 마세요 ㅋㅋ
IP : 67.161.xxx.47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좋은글 감사해요
    '20.4.15 3:56 AM (211.215.xxx.107)

    지원 양,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잘 컸기를 바랍니다
    원글님이 끓이신 오뎅탕, 저도 얻어먹고 싶어요.
    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 만든 요리는 얼마나 맛있을까요.

  • 2. ...
    '20.4.15 4:49 AM (67.161.xxx.47)

    제 오뎅탕 맛있습니다 왜냐면 고향의 맛 다시다...따순 댓글 주신 윗님 감사합니다!

  • 3. ==
    '20.4.15 6:40 AM (220.118.xxx.157)

    지원양이 살아나갈 미래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좋은 시간들이길 바랍니다.

  • 4. 나무
    '20.4.15 8:28 AM (114.200.xxx.137)

    저도 주1회 정기적으로 만나는 아이들이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시설에 외부인 방문이 금지된지가 두 달이 지났어요. 밤마다 자기전 기도에서 꼭 아이들 기억하고 있는데도 가끔 넘 보고싶어요. 작은 마음이지만 이런 소중한 마음이 모이면 아이들에게 지금이라도 힘이 될거같아요. 원글님이 지원이 사랑하던 마음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기억하는 마음이 지원이에게 잘 저달되었을거라 믿어요.

  • 5. ...
    '20.4.15 8:33 AM (116.39.xxx.29)

    원글님 글에 힘입어 82 이모들이 한마음으로 레이저 기도 쫙 보내요.
    오뎅,핫바 사주신 고마운 선생님. 세상 외톨이 된 기분였을 때 손 내밀어서 잠시나마 역할을 맡겨주신 고마운 선생님으로 원글님을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지원양의 앞날에 행복만 있길~

  • 6. ㅇㅇ
    '20.4.15 9:22 AM (39.7.xxx.118)

    넘 따뜻하고 좋은 쌤이셨네요.
    저도 글 읽으면서 마음이 흐뭇해지니..
    당시의 어린 지원이에게도 방황하며 힘들어했을 자기를
    받아준 곳이 있어 편안하고 감사했을 거예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077153 황신혜 정말 예뻤었죠 17 as 2020/05/22 5,162
1077152 손발저림이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4 오렌지 2020/05/22 2,384
1077151 먼데이 라는 뜻이 미국에선 어떻게 쓰이나요? 12 .. 2020/05/22 3,877
1077150 잠 안 오면 뭐하세요? 4 Darius.. 2020/05/22 1,948
1077149 사는게 참 팍팍하네요 ㅜㅜ 5 ㅇㅇ 2020/05/22 3,894
1077148 다음 대통령 이재명 67 버스떠났다 2020/05/22 4,899
1077147 흰색 쿠션 커버 등 때 쏙빠지게 하려면요. 3 .. 2020/05/22 1,348
1077146 저는 지진희 얼굴이 가장 나아보여요. 8 ㅇㅇ 2020/05/22 2,838
1077145 인터넷 tv없는 시골에서 어찌 지낼까요? 10 시골 2020/05/22 2,403
1077144 이시국에 결혼식. 축가? 1 2020/05/22 1,424
1077143 끊어내기 하는법좀 알려주세요. 13 .. 2020/05/22 3,326
1077142 수상 기본정석 할 때 6 과외 2020/05/22 1,555
1077141 남편이랑 같이있는게 불편해졌어요 6 ... 2020/05/22 5,348
1077140 치킨을 반만 먹고 나뒀는데 2 ㅇㅇ 2020/05/22 2,053
1077139 감량과 요요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인생..... 15 dd 2020/05/22 3,707
1077138 미통당파들은 말투가 너무 똑같아요~ 11 .., 2020/05/22 898
1077137 출산 후 잔디인형 상태예요. 5 잔머리 2020/05/22 3,159
1077136 재난지원금 감안해서 이불샀더니 4 oo 2020/05/22 3,424
1077135 유튜브 유료 회원인 분들 어떤 점이 좋은가요? 17 ........ 2020/05/22 3,407
1077134 kbs애서 음성을 내 놓았습니다. 4 한만호씨의 .. 2020/05/22 1,568
1077133 40대 연봉 3000 많이 챙피한 금액인가요? 20 2020/05/22 9,952
1077132 부세조기는 맛없던데 보리굴비는 왜 맛있을까요? 16 굴비 2020/05/22 4,272
1077131 영화질문)뚱뚱한 여자와 잘생긴 남자가 사기치고 다니다가 14 .. 2020/05/22 3,550
1077130 독일언론 "한반도 대형지진 가능성" 7 . . . 2020/05/22 3,738
1077129 오! KBS가 무슨 일로? 고 한만호 씨 육성 인터뷰 찾았어요... 14 육성인터뷰 2020/05/22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