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예요. 며칠 전 뉴스에서 ‘코로나블루’라는 단어를 들었는데 제가 그 병에 걸린 것 같아요. 몇 달 째 전염병이 유행하고 최근에는 한 달 이상 집안에만 갇혀서 지내다 보니 무척 힘이 듭니다. 우울할 때가 많고 평소보다 자주 짜증이 나요.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가족들 뒷바라지가 힘이 들어요. 세 끼 밥을 차리고 간식을 준비하느라 하루 종일 부엌에서 살아야 됩니다. 게임이나 TV에 정신이 팔려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러다가 공부는 아예 안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계속 잔소리를 하고 결국 가족들과 관계만 나빠지네요.
요즘 저를 가장 많이 괴롭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예요. 뉴스에서 매일 사망자 숫자와 수많은 관들을 봅니다. 전염병 때문에 혼자 쓸쓸하게 죽은 사람들 이야기와 가족들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화장을 해야 된다는 소식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워서 많이 울었어요. 만약에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해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병에 걸려서 잘못되는 상상을 할 때도 있어요.
자주 우울하고, 화가 날 때도 많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걸 보면 아무래도 제가 코로나블루에 걸린 것 같아요.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지난 겨울은 나쁜 소식들만 줄줄이 들리는 날들이었습니다. 매일 우울하고 불안한 뉴스만 듣다보니 올 봄에는 꽃도 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봄이 오기나 할까?” 당연한 계절의 흐름조차 의심이 될 정도로 상상해보지 못한 일들을 매일매일 눈 앞에 펼쳐졌지요.
오래 전에 읽은 책에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돌도끼를 휘둘러 큰 짐승을 사냥하고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해가 잘 드는 따뜻한 곳에 누워 편안하게 잠든 원시인은 우리의 조상일까요?” 이 질문의 답은 “아니오”입니다. 인간은 뱀처럼 치명적인 독을 갖지 못했고 치타처럼 빠르게 달리지도 못합니다. 악어처럼 두꺼운 가죽에 강인한 턱을 갖고 태어나지도 않았지요, 호랑이의 강인한 근육과 날카로운 어금니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인류가 무자비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고 번성한 원동력은 다른 동물에 비해 발달한 뇌 덕분이라고 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안’ 덕분이지요. 끝없이 주위를 살펴 사나운 짐승의 공격을 피해야했고, 자연 환경의 변화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옷을 입고 집이라는 형태를 발전시켜왔습니다.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이 없다는 생존의 불안 덕분에 농사를 지어 식량을 보관하고 저장식품을 만들기도 했지요. 이렇게 불안은 다른 동물보다 나약한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아남은 원동력입니다.
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생존의 위협이 말끔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라서 불안은 늘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전 지구적인 재난 상황일 때는 어두운 뉴스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지배를 받게 됩니다. 코로나블루에 걸린 것 같다고 걱정을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커다란 해일이 밀려오고 있는데 조개껍질 주워서 목걸이 만들 생각만 할 수는 없지 않나요? 코로나블루는 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이니까 걱정에 걱정을 보태서 진짜 병을 만들지는 마세요.
지금부터 뉴스나 SNS를 통해서 듣는 정보를 구분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꼭 알아야 되는 내용이 아니면 거기 주의를 집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안감을 높게 만들거나 지나치게 흥미위주인 소식은 걸러도 좋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배제하는 이야기에도 관심을 주지 마세요. 결국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현실에서 벌어질거라고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겪는 중입니다. 모두가 두렵고 불안한 상태지요. 저는 한 달 동안 코로나19에 감염된 분들을 치료했던 의사가 남긴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은 누구 탓보다 누구 덕으로 우리는 이긴다”고 하더군요. 마치 전쟁터 같던 대구에 살아서 그런지 이 말의 뜻을 더 잘 압니다.
매일 최고치를 갱신하는 확진자와 사망자 소식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저는
도와달라는 요청에 달려온 수백 명의 의료진 덕분에.
대구를 향해 줄지어 달려오던 구급차 덕분에
대구의 쪽방 거주민과 장애인들을 위해 전국에서 보낸 음식들 덕분에.
아픈 엄마를 대신해서 아이 다섯을 매일 거둬준 이웃 덕분에.
울었던 적이 더 많습니다. 저는 울린 이 ‘덕분에 뉴스’가 결국 우리가 버티는 힘이 되고 다시 삶의 터전을 회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병 걸린 거 아니예요. 가족들 챙기는 일은 정말 힘이 들지요. 나쁜 뉴스를 들으면 불안할 수 있어요. 그래도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당신 덕분에 우리는 괜찮아질 겁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http://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11056&fbclid=IwAR1xM-VVMa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