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이 소설은 마치 지금 상황을 예언한 듯 하네요.
내용 일부중
전염병을 신의 분노와 징벌이라고 보고 이런 재앙도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나름대로 유익한 점이 있다고 여기는 파늘루 신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신부는 외칩니다. 인간이 사악해지고 타락했으니 이런 불행을 겪어 마땅하다고요. 신부는 설교시간에 이 불행한 사태를 매우 드라마틱하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을 더욱 깊게 심어주면서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몇 달이 지나 오랑시의 페스트는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닫혔던 도시의 문도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감격의 포옹을 나누었고, 재회의 기쁨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순간부터 자신들이 어떤 고통의 터널을 지나왔는지를 죄 까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그 지독한 불행을 겪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불행을 생생하게 목격한 의사 리외는, 시내에서 터져 나오는 환희의 함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생각합니다. “이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말이지요. 그는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고 있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가지고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달이 지나 오랑시의 페스트는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닫혔던 도시의 문도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감격의 포옹을 나누었고, 재회의 기쁨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순간부터 자신들이 어떤 고통의 터널을 지나왔는지를 죄 까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그 지독한 불행을 겪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불행을 생생하게 목격한 의사 리외는, 시내에서 터져 나오는 환희의 함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생각합니다. “이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말이지요. 그는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고 있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가지고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