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감기증상이 있어 스스로 강제집콕했어요.
어차피 간간히 들어오던 일도 멈췄고 외출은 원래 잘 안했지만 못하게 되는 기분은 역시 남다르네요.
감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은 정말 많이 좋아져서 그냥 감기였구나, 고맙고 감사했지만요
오늘은 강풍이 극심할 거란 예보답게 제가 사는 오래 된 집 유리창문이 부서질 듯 흔들리고 누군가 계속 문을 발로 차는 것 같은 바람 소리에 이상하게 참 많이 두렵더라고요.
(사실 이 감기도 멈춰있는 기간에 꼭 보고 싶던 '체르노빌'을 밤새 보고 난 후 얻은 거라...약간 목디스크도 왔어요..)
바람이 이토록 거셀 동안 내가 그 바람을 잊을 수 있도록
아주 따뜻한 물 한 잔 같은 그런 뭔가를 보고 싶었는데, 그건 영화 '가을날의 동화'였어요.
어떤 영화는 이렇게 성인이 되고 난 후 뭐랄까..
보는 시선도 마음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참 그렇지 않네요 그대로 그대로 있어요.
전 예전 꽤 꼬맹이였을 때 언니 손을 잡고 서울의 한 변두리 극장가에서 본 영화였어요.
못되고 잘난척 하고 거만한 언니라 사춘기 땐 서로 미워하기도 했는데
그 날 따라 나를 불러 이 영화를 보자고 했었어요.
퍽도 예쁘게도 꾸미고 나온 것이 내가 아닌 그 누군가를 만나고자 했을 텐데...결과는 차갑고 무참한 바람이었겠죠.
별로 슬프지도 않은 장면에서 혼자 막 울던 언니를 기억해요. 눈이 퉁퉁 부었던 언니와 매운 쫄면을 먹던 것도요
(쫄면값은 여러모로 알뜰히 학습지나 학용품 비를 삥쳐 모았던 제 주머니에서 나갔고요)
이상하게 이 영화는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이 긴 세월 동안 비디오로도 다시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근데 왜 그랬을까..오늘은 이상하게 미친 듯이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었어요.
주윤발, 종초홍, 그리고 진백강. 나계리 각본. 장완정 연출.
어떻게 이렇게 간결하고 힘있게 유쾌하고 서정적이게 잘 만들었을까...
여자는 '차블'이라는 대사도 새록새록 기억나고 '샘 팬'이라는 식당을 열겠다는 희망을 바라보는 두 사람..
마치 오 헨리 소설처럼 시계와 시계줄이 서로의 마음처럼 엇갈리는 선물로 등장하는 것도요
한 개도 버릴 장면이나 대사가 없어요.
키스 한 장면도 없는데 이렇게 아련한 영화도 사랑도 있구나 내내 생각하게 되네요.
전 이 영화에서 어릴 때도 지금도 진 백강이란 배우가 참 좋았어요. 가수이자 배우인 진 백강.
여러가지 이유로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장국영과 라이벌로 이야기를 많이 남겼던 진 백강.
영화 속 그는 참 예쁘네요 깍아놓은 듯이 참 그야말로 예뻐요.
덕분에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어요
좋은 영화라는 건, 따뜻한 이야기라는 건 이런 힘이 있구나, 세구나 생각합니다.
주제가도 너무 좋았어요.
이젠 구해보긴 참 어렵게 되었지만 어떤 분들은 다시, 어떤 분들은 새로 마음이 힘들고 추운 이 봄에 다시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이런 사랑이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희망과 함께..
주제가와 제일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kAtS_S0d-I ..
https://www.youtube.com/watch?v=mDuTNP09xHo&t=4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