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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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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휘몰아치는 바다를 보고 왔어요

간만에겨울 조회수 : 2,007
작성일 : 2020-02-16 18:19:44

일요일 오후면 항상 바다를 보러 드라이브를 가요. 
아이들은 다 커서 독립한지라 남편과 둘이서 커피 한잔씩 뽑아 느지막이 서해 바다를 향해 달렸습니다. 
복잡하고 시끄러웠던 지난 일주일의 생활 속 먼지들을 털어버리는 조용한 시간이예요. 
평소 여기 바다는 흔히 상상하는 넓고 파도치는 바다라기 보다는 멀리 송도도 보이고 오이도도 보이는 넓은 호수같은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 가보니 완전히 다른 모습의 낯선 바다가 있더군요. 
저 멀리 시화호 전망대까지 연결되는 바다 한가운데 쭉뻗은 길 양옆으로 갯벌마냥 시커먼 바다가 거친 파도를 여기저기 뱉어내면서 생기는 하얀 거품들이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었어요. 
눈인지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뿌연 회색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르게 사방을 덮어버렸고 덕분에 여기가 대한민국 경기도 서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ㅎㅎ
나도 모르게 영화 투모로우의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덮치던 파도를 떠올리고, 흔한 모험영화에서 배를 손바닥 공기알처럼 던져버리던 파도를 떠올리는 즐거운 상상을 하다보니 어느새 전망대에 도착.

차에서 내리니 몇달동안 잊고 있었던 차가운 겨울공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오네요.
눈은 내리는게 아니라 양 옆으로 가로질러 달려가고 때론 헝클어진 머리카락마냥 마구 휘저으며 날리더군요. 
너무너무 추운데 갑자기 달리고 싶어져서 바닷가로 뛰었습니다. 
얼굴은 아팠고, 차에서 내릴 생각없이 입고간 얇은 바지 탓에 다리가 얼얼했지만 폐 속 깊이 마시는 시린 겨울 공기가 얼마나 좋던지요. 
바로 앞 조그만 섬에 사정없이 치는 파도를 눈으로 귀로 잠시 느끼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간만에 느낀 겨.울. 이었어요. 



*바다 이야기가 나와서 바다가 나오는 책 한권과 영화 한편도 올려봐요.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실테고 소감을 쓸 수준도 안되지만 얼마전 보면서 잔잔하니 좋아서 적어봅니다. 


1. 책
존 밴빌의 '바다' (The Sea)라는 책인데 소중한 것들, 관계맺은 사람들. 사랑과 상실에 대하여 기억을 통해 떠올리고 정리하며 이야기하는 책이예요. 
특히 문장이 아주 아름다워서 문장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책입니다. 
영어로 읽으면 그 느낌이 훨씬 더 살고요. 

2. 영화
'문라이트' (Moonlight) 인데 상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우리의 기생충이 받았던 작품상을 2017년에 받은 영화입니다. 
그린북으로 잘 알려진 마하셜라 알리가 여기서 남우조연상을 탔고요. 
한편의 시같은 영화, 한 소년의 성장영화로 잔잔하지만 이야기 전체를 뚫고 흐르는 사람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푸르르면서도 짙은 영화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수백겹으로 쌓인 외로움이 참으로 두꺼우면서도 부서지기 쉬운 거구나... 느껴지는 
어둠 속에도 달빛은 있고, 그 세상은 햇빛이 환한 세상과 시간만 다를 뿐 같은 세상이란 생각도 드는.







IP : 218.101.xxx.31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오오
    '20.2.16 6:23 PM (49.174.xxx.190)

    와 좋네요 글만으로도 상상이 되요 겨울바다 좋죠 ^ ^ 설산도 가보고싶네요 누군가 추천해주신 선자령 가려고 벼르고 있어요

  • 2. ..
    '20.2.16 6:27 PM (125.178.xxx.90)

    오늘 서해가 멋졌군요
    존 밴빌 '바다' 좋은 소설이죠
    저도 잘 읽은 소설이라 반가운 마음에 댓글 답니다
    문라이트는 못봤는데 봐야겠어요

  • 3. 겨울과 바다
    '20.2.16 6:30 PM (218.101.xxx.31)

    그동안 코로나니 미세먼지니 해서 마스크로 걸러서 마셔야했던 공기라 답답했는데 간만에 속이 시리도록 실컷 들이마시고 왔더니 정신이 맑아지네요^^
    역시 겨울은 추워야 제맛인듯 해요

  • 4. 리메이크
    '20.2.16 6:53 PM (221.144.xxx.221)

    문라이트와 라라랜드의 2017년 아카데미 해프닝도 기억나네요

    그래도 둘다 좋은 영화였죠ㅎ
    그 해는
    맨체스터바이더씨, 퍼스널쇼퍼, 덩케르크같은 잊지 못할 영화들도 나왔고

    원글님 글 속 눈이 휘몰아치는 서해바다도 너무 아름답구요

    요새 영화와 눈에 대한 갈증을 한풀이하듯 풀어주는 대한민국이네요^^

  • 5. 그렇잖아도
    '20.2.16 7:32 PM (218.101.xxx.31)

    어제밤 설국열차 다시 보면서 창 밖에 내리는 비는 언제 눈으로 바뀌나... 기다렸죠
    그러다 오늘 바다가는 길에 쏟아지는 눈을 뚫고 가다보니 snow piercer라는 설국열차의 영어제목이 떠오르더라고요.
    리메이크님 말씀대로 저 역시 요즘 기생충과 오스카상 수상으로 영화에 대한 갈증도 풀고, 꺼져가는 갬성도 덩달아 살아나고 있어서 하루에 많게는 세편씩 달리고 있네요 ㅎㅎ

    2017년 해프닝도 기억나고 저는 특히나 덩케르크에 꽂혀서 몇번을 봤나 몰라요.
    시각과 청각에 민감한 제가 온몸으로 본 영화랄까.
    불안감으로 끌고들어가는 음악과 사운드, 카메라의 시선이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서 지금도 한번씩 돌려 봅니다.

  • 6. ...
    '20.2.16 8:05 PM (124.111.xxx.101)

    언젠가 눈보라 휘몰아치는 바다에 아무말 없이 따라가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 7. 좋겠어요
    '20.2.16 8:54 PM (121.167.xxx.124)

    나는 차가 없어서 바다고 뭐고 뚜벅이에다 버스에다가
    이런글 보면 몹시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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