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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 나의 친구 병화를 추모하며

이런 인생 조회수 : 1,797
작성일 : 2020-02-15 17:59:45
두번째 보육원에서 만난 병화.

키는 자그마하고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이국적인 아이였어요.

저는 국민학교 졸업직전. 그아이는 4학년이라 예쁘장한 아이,

잘은 모르나 왠지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까칠하고 쌀쌀맞을거같은 생각에 말걸기도 어러운 이미지였어요.



그러다 저는 그아이와 한 방을 사용하게 됐어요.

보육원의 방배정은 원장님사모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시는거라 우리들의 희망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졌어요.

한 방에 3층짜리 침대가 2개. 앉은뱅이 책상 하나. 겨울이면 연탄난로, 그리고 창문아래 조그마한 붙박이장이 있어 개인의 짐을 사과박스 등에 넣어 보관할 수 있었어요.



보통 3층에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데 큰 아이는 혼자, 작은 애들은 2~3명이 사용하므로 한방에 12~13명 정도가 사용을 했어요.



병화와는 그때 처음 한방을 사용하면서 친해졌어요.

그 아이는 어디서 배웠는지 ' 얼굴' '과수원길' '회상' 등

노래를 많이 알았고 저는 노트에 그 노래를 적어 같이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동그라미 그리러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마음 따라 흘러가던~' 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자동반사적으로 그아이 얼굴이 떠오르면서 급 슬퍼져요.



학년은 제가 2학년 위였으나 나이는 제가 두살아래였어요.

보육원아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생년월일을 정확하게 모릅니다.

발견되었을 당시의 외모를 보고 추정해서 생년월일을 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보다 학년이 2~3개 낮은 아이들이 저보다 2~3살이 많은데도 언니, 누나라고 부르는게 흔했어요.

저는 그나마 부모님이 맡기면서 저의 생년월일을 밝혔기때문에 정확히 아는거고요.

어쨌든 저희는 서로 나이를 떠나서 오랫동안 같은 방을 썼기때문에 친하게 지낼수 있었어요.

저는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그 아이는 중학교 졸업후 남의집살이를 조금하다가 다시 돌아와 약간의 돈을 받고 보모로 지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대학교를 원장님댁 부엌살림과 어린 원생들을 돌보면서 마치게 돼요.

저는 학생이라 일을 해도 월급을 받지 않았기때문에 병화가 저에게 맛있는걸 많이 사주었어요.

아마 아직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병화는 수원으로 취직해서 떠납니다.

저더러 한번 꼭 놀러오라고 해서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찾아가서 하룻밤 잤던 기억이 나요.

수원에서는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않고 한숨도 안자고 밤새 얘기했던 기억만 있어요.

그후 병화는 잠실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 입주 가정부를 하게 됩니다.

주인에게 허락을 받았으니 놀러오라고 하도 성화를 부려

그때도 겨울이었는데 놀러간 기억이 있어요.



아파트 문간방이 식모방이라 그 방에서 하릇밤 잤습니다.

제가 방문한 그날 마침 주인아줌마가 손님초대를 했는데 메뉴가 소고기불고기였는데 원장님댁 살림을 해본경험이 있어서 저도 병화랑 같이 열심히 부엌일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날밤도 안자고 밤새 수다를 떠는데 그집의 어린딸이 자다 일어나 언니랑 잔다고 병화방을 찾아와 제가 한참을 업어줬어요.



친구는 바쁜 주인아줌마 대신 살림하면서 아이들도 키웠던거 같아요.

그런데 그집 어린딸이 말이 늦는가 했는데 친구가 보기엔 듣지도 못하는거 같다고 믿지않는 아줌마를 설득해서 병원 치료를 시작하면서 병원도 열심히 데리고 다녔어요.

병화는 그 아이를 굉장히 예뻐하고 그아이도 엄마보다는 병화한테서 안떨어지려고했어요.



그러다 시간이 흘러 저도 원에서 나와 직장을 다니며 결혼을 했어요.

그러면서 병화와는 조금씩 멀어졌는데 제가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집으로 찾아왔어요.

잠실 그 집에서 나와 혼자 방얻어 자취하면서 직장을 다닌다 고 했어요.

밀린 얘기 하느라 또 밤을 새우고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이고 각자 일을 하러 가느라 그렇게 헤어졌는데 그게 그아이와 마지막 밤이었어요.

그때 느낀게 이 친구가 외로움을 참 많이 타는구나.

빨리 얘도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죠.



우리집을 다녀간 몇달후 병화에게서 보고싶다고 놀러오겠다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한달 쯤 후 서로 시간이 맞을거같아 악속을 잡았죠.

그 사이에 저는 아파서 수술을 하고 병원에 일주일 정도 입원을 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아 잠깐 병화생각을 했으나 곧만날건데 싶어 하지 않았어요.



출산한지 몇달 되지 않은데다가 수술로 몸을 채 추스리기도 전에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병화가 죽었다고. 사인은 잘 모르나 자살인거 같다고.

세상에 피붙이 하나 없이 혈혈단신으로 이세상에 와서 잠깐 살다가 갔기 때문에 장례식도 아무것도 없이 원장님께서 시신을 수습해서 화장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며칠후면 만나기로 했는데 도무지 그 말이 믿기지 않아 당시엔 눈물도 잘 안나오더군요.



몇달 뒤 보육원을 가보니 원생들이 모여서 다같이 공부하는 공부방이 있는데

가구가 싹 다 바뀌어 있더군요.

그리고 벽에 플라스틱 안내문이 붙어있었어요.

이 책걸상은 서병화가 본원에 기증한 것입니다. 라는 문구의.



원장님꼐 여쭤봤더니 병화의 방 보증금과 보상금을 합쳐서 이걸 마련하셨다고.



병화의 죽음이 자살이다 타살이다 말이 많았는데 원장님도 말씀을 안해주셔서 그냥 소문만 무성했어요. 보상금은 뭐냐고 했더니 딱히 대답을 안하시더군요.



29년인지 27년인지 30년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전생애가 그리고 그녀가 모은 전재산이 책걸상으로 치환되어서 후배원생들이 사용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후 몇년 지나지 않아 그 보육원은 없어졌으니 그녀의 인생이나 마찬가지인 그 가구들은 어느 곳에서 불쏘시개로 없어졌겠죠.

그리고 가끔씩 아주 가끔씩 병화를 기억하는 우리의 입에서나 그이름이 불리워진다는게 너무나 쓸쓸한 거 같아 단 오늘 하루 만이라도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도 그녀의 이름을 읽으며 그녀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젠가는 그녀를 추억내지 추모하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마침 점심때 저에게 병화의 사망소식을 알려주었던 친구가 전화를 해서 병화얘기를 하다가 생각나

이글을 씁니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서병화라는 마음도 얼굴도 어여쁜 여인이 이세상을 살다갔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P : 180.229.xxx.38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어후
    '20.2.15 5:58 PM (124.58.xxx.190) - 삭제된댓글

    저도 느끼해서 못봐주겠더만요.

  • 2. ...
    '20.2.15 6:04 PM (223.38.xxx.227)

    친구분께서 좋은 곳 가셨기를 바래요

  • 3. ...
    '20.2.15 6:13 PM (175.223.xxx.232)

    혼저서 버티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소설을 한권 읽은것 같고...여기에 다 쓰지 않은 스토리들이
    머리속에 그려집니다
    제가 그녀가 된듯이 가슴이 아려옵니다

  • 4. ^^
    '20.2.15 6:25 PM (39.118.xxx.235)

    그분도 이렇게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는 삶을 살아냈으니
    위로도 얻으셨을거라 생각해요

    친구가 오랜기간 나를 추억해주어 고맙다고 하실거여요

  • 5.
    '20.2.15 6:36 PM (125.177.xxx.106)

    그렇게 갑자기 갔을까. 내색도 없이... 안타깝네요. 명복을 빕니다.

  • 6. ㆍㆍㆍ
    '20.2.15 6:42 PM (223.62.xxx.139)

    아아 서병화란 분 삶이 너무 안타까워서 가슴이 다 아려오네요. 그래도 이렇게 기억해주는 좋은 친구분이 계셔서 다행이네요.

  • 7. 친구
    '20.2.15 10:31 PM (223.227.xxx.3)

    살면서 진실된 친구 하나 만들기 정말 어려운데 짦은 생을 살다 가신 '병화'씨는 제가 부러울 정도로 진심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울러 원글님도 좋은 분이시구요.

  • 8. 이제라도
    '20.2.15 10:55 PM (175.125.xxx.154)

    병화님의 명복을 빕니다.
    좋고 행복한 기억만 갖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계실거에요!

  • 9. 고인의
    '20.2.16 12:13 AM (175.127.xxx.50)

    평안을 기원합니다.. 병화라는 어여쁜 여인을 추모해요...

  • 10. ㅠㅠ
    '20.2.16 1:29 AM (1.236.xxx.145) - 삭제된댓글

    어린 소녀들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가난때문에... 부모가 없어서..
    춥고 서러웠을 소녀들을 기억하며
    서병화님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 11. 서병화님
    '20.2.16 5:43 AM (106.102.xxx.177)

    늘 편안하실 거라 믿습니다
    어여쁜 서병화님을 추모합니다

  • 12. 병화씨
    '20.2.16 1:46 PM (121.200.xxx.126)

    명복을 빕니다
    가슴이 가슴이 너무 아파요

  • 13. 서병화님
    '20.2.17 5:32 PM (203.142.xxx.241)

    가만히 이름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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