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대한민국 언론은 지금 화가 많이 나 있다.
마치 지난 날 대검찰청이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항의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마구 흔들어대던 모양새와 비슷하게, 지금은 기자들이 질본과 중수본을 흔들어대고 있다.
"나를 감히 무시해? 이 xx들 가만 두지 않겠다."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다.
처음엔 '언론들이 원래 그렇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갈수록 그게 아니다. 언론이 하나의 권력기관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면 상대를 어떻게 짓밟는지 보여주려는, 매우 강한 의도가 읽혀진다.
경향신문은 "시민들 불안한데...질본.지자체, 확진자 동선 공개 엇박자. 신종 코로나 확산" 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냈다.
내용을 보면 17번째 확진자의 동선을 기자들이 묻자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아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는데 구리시 홈페이지에는 "이동 경로 안내"를 알리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중앙과 지자체의 손발이 안 맞으니 시민들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지자체들도 방역 대책 본부의 통제를 따라야 한다는 데 동의...'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해 꼭 "서로가 손발이 안 맞는다" 라고 뽑아야만 했을까?.
"지자체들이 중앙에 협조해야 " 정도의 헤드라인이 더 적합한 것 아니었을까? 게다가, 시민들이 과연 그것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가?
사실은 지금 시민들의 불안이 있다면 그 정체는, 이쪽 저쪽의 조그만 틈새들을 이어 붙여서 마치 중앙에서 전혀 원칙 없는 행정을 하고 있는 것처럼 몰아 붙이는 언론의 보도를 접했을 때 비로소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매일경제를 보면 코레일 "감염 의심자, KTX 탑승하는데 그냥 놔두란 말인가" 라는 기사가 송고되었다. 질본이 코레일측의 감염자, 접촉자 정보 공유 요청을 거부했다고 한 것에 대해 "논란이 거세다" 라고 보도한 것이다.
매경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밀접 접촉자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는 질본이 타 기관과 공조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라고도 썻다.
이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나는 이제 의심하게 된다. "누가 논란을 거세게 했는지, 누가 지적을 했는지" 출처를 밝히지 않는 뉴스가 너무 차고 넘쳐난다.
선진국들의 주요 언론과 비교하면 이런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보도에선 항상 출처를 명시하고, 그 말을 한 사람의 이름을 넣어 주고 인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이러한 논란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 말한다." "복수의 소식통에 의하면..." 이런 식의 보도는 솔직히 기자의 생각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발로 뛰어서 취재하지 않았고 단지 질본의 브리핑과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투덜거린 것이란 걸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면 메이저 언론의 보도 태도는, 지금처럼 중대한 상황에서 SNS 찌라시 통신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이 보도 헤드라인은 악의적이다. 질본이 지자체에 공유한 정보를 코레일에게는 알려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방역 당국에 그 정도의 권한조차 인정해 주기 싫단 말인가?
회복 판정을 받은 1번 환자를 인터뷰하겠다고 나섰다가 질본에서 막아서자 불만을 토로한 언론도 참 황당하다. 부질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질병의 또다른 이름은 혐오이다. 특히 외국인 혐오. 독일에서 중국인 여성이 식료품을 사려다가 온갖 욕설을 들었다는 사건도 상기해야 한다. 어쩌면 질병 그 자체보다, 질병과 관련된 인종적 혐오가 퍼져 나가는 것이 훨씬 심각할 수도 있다.
who에서 이 병 이름에 "우한 폐렴"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금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니 메르스때 중국에 방문했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갔던 한국인이 회복 후 중국 언론이 인터뷰한다 했으면 어쩔 것인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황당한 일이다. 그거 인터뷰하겠다고 하다가 질본에서 막아서자 저렇게 화를 내는 우리 언론....
질본의 판단을 존중할 것은 존중해야지, "아주 큰코 다치게 해주겠어" 라는 식의 의도로 흔드는 것은 매우 질이 안 좋은 행위들이다.
나는 생각한다. 기자들의 위상이 '기레기'로 전락하고 언론이 살기 힘들어진 이유는 어쩌면 이런 품위를 잃은 보도 관행 때문이 아닐까.
각 주요 언론사들에 제안하고 싶다.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사태는 예컨대 뉴욕 타임즈처럼, "실시간 업데이트" 를 만들어 놓고 지속적으로 변화 상황들, 숫자들을 상황 공유하는 식으로 만들어 주는 게 어떨까 싶다.
지금 보도는 체계적이지 못하고 매우 중구난방인 게 사실이다.
그리고 '질본과 방역 당국 욕하고 흔들기' 는 이제 고만 했으면 좋겠다. 지금 국민들이 불안하다면 그 이유는 '방역 당국의 무능력'때문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현장 인력들에 대한 '한국 언론들의 분탕질'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