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지난 4일 법무부가 국회의 공소장 요구를 거부한 일이 있었다. 송철호 울산시장, 백원우 전 대통령민정비서관 등 13명을 묶어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검찰 공소장을 달라고 했는데,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사건 관계인의 인권보호를 들어 줄수 없다고 답변한 것이다. 당일에 똥싸면서 해당 뉴스를 읽었지만 별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코멘트하지 않았다.
1. 법무부가 이례적으로 공소장 비공개 처리를 하자 대부분의 기자들이 화가 났다. 공소장이 나와야 그 내용을 기사로 쓰면서 쉽게쉽게 그날의 밥벌이를 하는데, 추미애가 못하게 하니 어이가 없었던 걸까. 다음날 전 언론에서 '알 권리 제약'을 타이틀로 비판 기사가 나갔다.
2. 대부분의 언론이 기사에서 법무부가 공소장을 공개해야 하는 근거로 국회에서의 증언등에 관한 법률 4조를 들었다. 공무원이나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국회에서 증언의 요구를 받거나 국가기관이 서류제출을 요구받은 경우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만 보면 추미애가 법을 쌩까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법은 국회에서의 안건심의, 국정감사, 국정조사와 관련하여 하는 보고와 서류제출 등에 적용되는 법이다. 회기도 아닌 시기에 국회가 일상적으로 하는 공소장 제출 요구에 법무부가 응해야 할 법적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누구 입에서 나온 걸 쉽게쉽게 받아적었는지 알수 없으나, 하여간 기자들이 이렇게 자신있게 써놓은 탓에 또 SNS가 시끄러워졌다.
3. 그와중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법무부의 비공개 행위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 공소장은 어차피 법원으로 가게 되며, 검사에 의해 공판에서 낭독되는 것이 상례다. 즉. 근시일내에 정해진 법절차에 따라 공개가 된다는 얘기다. 그놈의 요술방망이 알권리... 찬찬히 생각을 해보자. 어차피 공개될 공소장, 국회에 당장 안줬으니 알권리 침해라는 논리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4. 이번 공소장 비공개 조치에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라는 법무부 훈령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이 훈령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재임 당시 만든 것으로, 형사사건 피의자, 참고인 등 사건관계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무죄추정의 원칙 훼손방지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두가지 가치의 조화를 도모하는 것을 취지로 하고 있다. 검찰공무원 및 법무부 소속 공무원은 수사 착수시점부터 공소제기 전까지는 혐의사실 및 수사 내용 일체를 공개해서는 안 되며, 공소제기 이후에도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유의해야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거꾸로 말하면, 법무부가 정식 재판 전에 국회에 공소장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해당 피고인이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실질을 따져봐도 말이 된다. 지금은 2월 초고, 4월 15일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인 공소장이 그대로 보도된다면 물리적인 재판 일정상 피고인이 된 사람은 거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심지어 검찰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펴는 경우에도 선거기간 내에 바로잡기 어렵다.
검찰은 이런 제도적 헛점을 이용해 사실상 선거의 판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다. 검찰이 부적절한 권력을 가질 여지를 제도적으로 최대한 줄이자는 게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검찰 개혁의 취지이기도 하다. 검찰 개혁에 찬성한다는 이들이 이번 조치를 비판하는 게 이해가 가지않는 이유다.
5. 일각에서는 왜 하필 이 법무부 훈령을 이번부터 적용하느냐고 쓴소리를 한다. 그럼 언제부터 적용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이 훈령은 지난해 12월 1일자로 시행됐다. 그럼에도 같은 해 12월 31일자로 기소된 조국과 정경심씨의 공소장은 훈령 적용없이 그대로 공개처리됐다. 일각에서 의심하는 것처럼 청와대를 비호하기 위해 공소장 비공개 처리를 했다면 왜 조국 공소장은 왜 공개했을까? 또, 법무부가 국회에 공식적으로 공소장을 안 준다고 해서 상식적으로 재판 전에 공소장이 공개가 안 될까? 이미 5일 오전에 동아일보가 공소장 내용과 관련해 자세한 기사를 쓴 바 있다.
모든 사람이 뉴스를 입체적으로 읽는 풍경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가끔 보면 일부러 평면적으로 읽는것 같은 사람들이 보인다. 의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