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렁이의 오우가
오우가(五友歌)
조선이 해동육룡이 나라샤 개국을 거쳐 세종대왕과 같은 한 인간으로서도, 일국의 왕으로서도 인류역사상 비교상대조차 없는 출중한 임금이 나셔서 소경이나 다름없는 백성들의 눈을 띄워 주시고 나라의 기반을 반석같이 다져 물려주셨건만 중기에 접어들자 태만해져 연산군을 시작으로 무지렁이 같은 왕들이 연이어 왕위를 물려받아 나라를 절단 냄에 급기야는 이민족 최대의 비극인 임진왜란과 우리 1만년 역사의 최대수치인 병자호란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나라모양이 그 꼴이니 뜻있는 선비들은 초야에 묻혀 학문에 몰두하고, 더러는 어떻게든 나라를 바로잡아보려고 썩 내키지 않는 벼슬길에 나섰으나 못난 왕들은 그들의 바른말과 옳은 정책이 싫어 목숨을 빼앗거나 툭하면 귀양살이를 보내니 문재(文才)가 있는 이들은 귀양살이 중에도 우리민족의 보배와도 같은 불후의 명작들을 남기셨다.
그 대표적인 분이 송강정철(1536~1593), 노계박인로(1561~1642), 고산윤선도(1587~1671)이시다.
오우가는 어부사시사와 더불어 고산의 대표적 작품이다.
오늘날로 보면 송강의 글은 수필이나 산문에 가깝고, 고산의 글은 시(詩)로 분류될 듯하다.
고산의 어부사시사를 읽노라면 그건 어촌의 풍경을 붓으로 먹물을 찍어 쓴 글이 아닌, 물감을 찍어 흑백의 풍경화를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을 읽노라면 4계절 어촌에서 어민들이 부지런히 사는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하다.
고산은 여러 번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송강정철과 달리 정치적으로 불의와 타협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스스로 관직을 고사한 경우가 많으며, 그 애환과 시름을 고매한 인품에서 우러나오는 문재(文才)로 글을 썼으니 남녀노소 유/무식을 가리지 않고 세종대왕께서 만들어 주신 단 하루면 읽고 쓸 수가 있는 24자만 깨우친 사람은 누구나 즐겨 읽을 수가 있고 글맛이 달고 감칠맛 난다.
오우가<五友歌>
내 벗이 몇이나 하니 물과 돌과 소나무와 대나무<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로다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구름 빛이 희다 하나 검기를 자로 하고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좋고도 그치지 않을 손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며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을 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 피우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 모르는다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 글로 하여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그러고 사시(四時)에 푸르니 너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밤중에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한밤중에 밝은 것이 너만 한 것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자 그러면 이 무지렁이의 다섯 친구는 뭔가?
어찌 감히 고산의 경지를 짐작이나 하랴 만 사람이 살아가자면 고산의 오우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으니 나도 좋던 싫던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고산은 그 심안으로 오우에게서 삼라만상의 조화와 자연의 섭리를 엿보셨지만, 이 무지렁이는 죽지 않고 목숨을 이어가고, 순간의 쾌락과 쓰잘데 없는 잡념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오우와 친구가 되었다.
<물(水)>
고산은 물에서 구름 빛을 보고 바람소리를 들었지만, 이 못난 무지렁이는 그냥 목이 말라 물을 마신다.
그 물도 고산이 마시셨던 자연 그대로의 맑은 물이 아닌 희뿌연 쌀뜨물에 누룩 풀어 푹- 썩힌 탁배기를 즐겨 먹는다.
한 사발 쭉- 걸치고 나면 모든 잡념과 시름을 잠시나마 잊고 지난날들의 모든 기억과 추억을 싹 잃은 치매의 경지를 헤매니 어찌 친구가 아니랴!
<돌(石)>
그 딱딱한 돌 속에서 꽃과 풀을 찾아낸 고산의 혜안을 헤아릴 길이 없다.
이 무지렁이는 검은 돌과 흰 돌이 담긴 깡통을 앞에 놓고 만만한 상대와 더불어 바둑 두는 게 유일한 취미다.
점심 먹고 나서 뚜덕뚜덕 몇 판 이기고 지고 두다보면 짧은 겨울 해는 벌써 서쪽 편 아파트너머로 넘어가고 땅에는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요새는 바둑판이 아닌 컴퓨터 바둑을 두니 돌을 판에 “쾅!”내리찍는 재미가 없고, 이기고 나서 상대를 놀려주고 지고 나서 씩씩 거리는 재미가 없다.
입동을 지나며 해가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듯 인생의 입동을 지났으니 바둑실력이 언덕에서 구르는 돌과 같다.
하기는 천하의 이창호도 이세돌도 뒷전으로 밀려났는데 이 무지렁이이랴!
<솔(松)>
고산의 친구이셨던 조선 솔은 뵈온지가 오래다.
아파트단지의 정원에도, 가끔 오르는 동네의 야산에도 온통 쪽바리송(왜송-리키다?) 투성이다.
이러다가 남산위에 철갑을 두른 것 같은 우리 고유의 낙락장송은 씨가 마르는 것은 아닌지?
늘 푸른 우리 솔과 친구를 하고 싶지만 친구를 할 방법이 없다.
이제 우리가 우리 솔을 대대적으로 보호할 때가 된 것 같다.
언제 정부에 한 번 건의(제안)를 할 예정이다.
<대(竹)>
사시사철 푸르고 곧은 모양으로 고산의 친구가 되었다.
하긴 고산도 긴긴 벼슬살이를 하면서 항상 올곧았으니 어찌 대를 친구삼지 않았겠나.
이 못난 무지렁이는 곧기는 고사하고 십 원짜리 동전만도 못한 알량한 계급장에 눌려 항상 이리 휘고 저리 휜 것 같다.
그 대나무 젓가락이 탁배기 들이부어 텁텁한 입속으로 김치조각을 날라주어 입 속을 개운하게 해 주니 어찌 친구가 아니랴.
뒤 늦었지만 친구인 대를 본 받아 얼마 남지 않은 인생 곧게 살아보려 하지만 잘 되려는지?
<달(月)>
매일 새벽 안양천 둔치에 나가 운동이랍시고 팔다리를 흐느적거릴 때면 한 달에 절반정도는 달님이 물끄러미 내려다보시며 “이놈아 더 힘차게 해!”하시며 정수리에 군밤을 내리박으시니 친구가 아닌 선생님이시다.
하긴 고산의 친구 분이 어찌 감히 이 무지렁이의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인간의 무한한 탐욕과 무절제한 소비가 고산이 보셨던 달이 아닌 중병에 걸린 달이 되었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가로등이 줄져 깔려 있으니 달이 어디에 떠있는지 찾기가 힘들고,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빌딩과 아파트가 달을 가리고 있으니 도시에 살면서 달을 친구 아니 선생님 삼을 기회도 거의 박탈당했다.
중국에서 돈 한 푼 안 받고 무상으로 상납을 한 미세먼지는 달과 지구의 사이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달은 희뿌옇게 보여도 이태백이 탁배기를 통째 들이 마시는 모습도, 토끼가 방아를 찧는 모습도, 암스트롱과 올드린이라는 두 양키의 발자국도 통 볼 수가 없다.
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 세상에서 달을 친구 삼는 것은 아예 포기하고, 얼마 남지 않은 저 세상에 가서나 달을 친구 삼아야 할 거나!
새해 첫날 아침부터 탁배기 한 뚝배기 단 숨에 들이 키고 횡설수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