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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키우는 까닭

그 어떤날 조회수 : 1,939
작성일 : 2019-12-23 22:02:57


 눈이 올듯하면서도 올듯하면서도 끝내 오지않고

스산하게 추웠던 어느 겨울날 오후,

저는 버스를 타고 내려서,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를 지나고

노브랜드를 지나가고, 아무도 앉지않은 벤치만 쓸쓸한 공원을 지나서

작은 조명가게를 지나다가

그 조명가게의 현관문앞에 버려진 비닐봉투안에 들어있는 여러 구근들을

보았어요.


보라색의 구근은 벌써 초록색 잎을 싱싱하게 피워올리고 있었어요.

저건 뭘까,

동그란 전구모양의 구근들의 보랏빛이 참 예뻤어요,

속으로 한번도 보지못했던 히아신스라는 멋진이름을 떠올리고

그 비닐봉투안에서 세개의 구근을 건져 제 에코백속에 넣었습니다.


그길로 스산하고 황량한 겨울날의 횡단보도를 유유히 건너갔는데

계속 제 에코백안에서 시큼하고 독한 양파냄새가 났어요.

제가 기뻐하면서 득템해온것은

썩기시작한 보라색 양파였던 거지요.

저는, 그 구근덩어리들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고, 보도블럭을 지나가는동안,

앞으로 이 구근을 심어서 만나게될 꽃을 떠올렸던 건데


이 모습을 행여라도 보았을까봐,

전 살며시 조명가게를 살짝 뒤돌아봤어요,

조명가게에는 크고작은 많은 조명들이 빛나고 있었어요,

이 흐리고 어둡고 쓸쓸한 겨울, 저녁이 가까워오는 그 오후에.


실내에서 기르던 제비꽃이

꽃을 맺지 아니하거든

냉장고에 하루쯤 넣었다가 내놓으라고 하는

싯구절을 떠올리지만 않았어도

아, 나는 그 양파들을 구근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을텐데.


저는, 민망한 마음을 스스로 감추면서

인적이 드문 텅빈 골목길로 접어들었어요.

그러면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화원에 기웃거리는 날이 많아질것을 스스로 예감하는

늙은 제 모습이 미리 생각나 한편 슬퍼지고 먹먹해지네요.

 
IP : 220.89.xxx.246
1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9.12.23 10:13 PM (221.157.xxx.127)

    에고~~~~웃프네요 ㅋㅋ 저도 나이들었는지 이것저것 사서 심고 키우고 죽이기도하고 잘자란화분도 꽤 되고..

  • 2. 지나가다
    '19.12.23 10:15 PM (125.185.xxx.24)

    실내에서 기르던 제비꽃이
    꽃을 맺지 아니하거든 ....

    무슨시일까 궁금해서 검색해봤어요.
    덕분에 좋은 시도 읽고 ...
    원글님의 따뜻한 글 참 좋네요. :-)

  • 3. 원글
    '19.12.23 10:24 PM (220.89.xxx.246)

    이제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와서 또 한번의 찬란한 벚꽃길이 펼쳐지고, 그 꽃그림자안으로 우리들의 일상이
    끼어들겠지요.
    가만히 보면, 어릴때 우리집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접란이라던지,스킨답서스같은 식물들이
    친구네집에 가도 꼭 있었어요,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그 꽃들이 있던 그 지나간 날들이 이젠 저도 모르게 제 일상속 어느 한켠에
    꼭 그렇게 그때의 꽃들처럼 피어있는 것을 생각하면 아, 그때의 엄마도 이렇게 나처럼 꽃을 피웠었는데,
    외로워서였을까, 라는 생각 잠시 하곤 해요..

  • 4. 로라아슐리
    '19.12.23 10:33 PM (121.164.xxx.33)

    양파도 물에 담가서 꽃처럼 며칠 보아주시면 안될까요?
    썩기 시작해 늦었을까요?

  • 5. 원글
    '19.12.23 10:47 PM (220.89.xxx.246)

    그 보라색양파는, 너무 매운 냄새가 났어요^^
    키우긴 힘들었을거에요,,^^

  • 6. ㅜ ㅜ
    '19.12.23 10:50 PM (175.223.xxx.74)

    양파들이 잠시 기대했을거 같아요 불쌍한것들

  • 7. ..
    '19.12.23 10:51 PM (118.71.xxx.194)

    원글님 글이 넘 예뻐요.
    고운 시 한 편 읽는 것 같았어요.

  • 8. 작가
    '19.12.23 11:23 PM (125.182.xxx.27)

    아니신가요
    글써보세요

  • 9. 원글
    '19.12.23 11:51 PM (220.89.xxx.246)

    그러고보니, 가난하고 쓸쓸하게 혼자지내던 우리 엄마의 단칸방에 막내가 결혼하기전 두고갔던
    좌식 컴퓨터책상위에서 크고있던 양파가 생각나네요.
    동그란 머리와 그 초록색잎이 참 귀여웠는데, 로라아슐리님과, ㅜㅜ님의 댓글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도네요, 왜 그럴까요,ㅠ

  • 10. ㅋㅋㅋ
    '19.12.24 12:17 AM (58.237.xxx.75)

    아름다운 수필같은 글을 읽어 내려 오다가 보라색 양파에서 빵 터졌어요.
    나도 잠시 히야신스를 떠올리면서 핑크? 보라? 하양? 무슨색 꽃을 피울까 상상하면서
    그 짙은 향기가 언뜻 스치는 듯 했거든요.
    화초가 참 많은 위안이 되네요.
    날씨가 추워서 베란다 화초들을 다 거실에 넣어 두고 싱싱한 초록이들을 보며 이야기 나누곤 해요.
    호접란이랑 시클라멘이 엄청 풍성하게 꽃을 피워서
    낮에는 베란다에 내놓았다가 해가 지면 다시 갖고 들어오고 있어요.
    봄에 화원을 기웃거리는 것 보다 겨울에 꽃을 들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우중충한 겨울 날씨에 정말 환한 위로를 받는답니다.

  • 11. 저도
    '19.12.24 10:11 AM (180.68.xxx.100)

    설레면서 읽다가 보라색 양파에서%#@#&
    원글님 실망이 저에게도 전해져 옵니다.
    별거 없는 일상에서 화초들이 저에게 많은 위안을 주는데
    원글님도 이 겨울에 화분을 하나 들이세요.^^
    고구마 싹도 이쁘죠.

  • 12. ㅇㅇ
    '19.12.24 10:54 AM (182.224.xxx.119)

    ㅋㅋㅋㅋㅋ 한참을 할배 웃음소리 내며 웃었어요. ㅋㅋㅋㅋ 양파가 감히 보라색이라니!! 적색양파가 잘못했네요. 님의 민망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읽는 저는 님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님의 감성이 님의 쪽팔림을 이긴 거예요.

  • 13. ㅇㅇ
    '19.12.24 10:58 AM (182.224.xxx.119)

    싯귀는 복효근의 눈이 내리는 까닭이네요. 일삼아 찾아봤어요. "내 안의 꽃들을 불러외우며" 전 특히 이 싯귀가 남네요.

    실내에서 기르던 제비꽃이
    꽃을 맺지 아니하거든
    냉장고에 하루쯤 넣었다가 내놓으라고 합니다
    한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보지 않은 푸나무들은
    제 피워낼 꽃의 형상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차고 시린 눈이 꽃처럼 내리는 것은
    바로 그 까닭입니다
    잠든 푸나무 위에 내려앉아
    꽃의 기억들을 일깨워줍니다
    내 안의 꽃들을 불러외우며
    나 오늘 눈 맞으며 먼 길 에돌아갑니다

  • 14. ㅇㅇ
    '19.12.24 11:00 AM (182.224.xxx.119)

    세상에 지고도 돌아와 오히려 당당하게
    누워 아늑할 수 있는 그늘이
    이렇게 예비되어 있었나니
    또한 그대와 나의 마지막 촉루를 가려줄 빛깔이 있다면
    그리고 다시 이 지상에 돌아올 때 두르고 와야 할 빛깔이 있다면
    저 바로 저 빛깔은 아니겠는가

    같은 시인의 -봄숲-이란 시도 좋네요. 어제 오십대라는 어느 님의 담담한 소회랑 비슷한 느낌 같아요.

  • 15. ㅎ.ㅎ
    '19.12.24 12:27 PM (125.191.xxx.231)

    꽃 좋아하는 아줌마인 저도
    설레며 읽어갔네요~

    마치 내가 에코백에 보라양파 넣고 걷는 착각을 하게 만드시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셨네요.

    우리집 냉장고 보라양파들을
    갑자기 살려주어야 한다는....
    땅속에 풀어놓아주어야 할 것 같아요....ㅡㅡㅋ

    살아있는 것들을 먹겠다고
    차디찬 냉장고에 넣어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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