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올듯하면서도 올듯하면서도 끝내 오지않고
스산하게 추웠던 어느 겨울날 오후,
저는 버스를 타고 내려서,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를 지나고
노브랜드를 지나가고, 아무도 앉지않은 벤치만 쓸쓸한 공원을 지나서
작은 조명가게를 지나다가
그 조명가게의 현관문앞에 버려진 비닐봉투안에 들어있는 여러 구근들을
보았어요.
보라색의 구근은 벌써 초록색 잎을 싱싱하게 피워올리고 있었어요.
저건 뭘까,
동그란 전구모양의 구근들의 보랏빛이 참 예뻤어요,
속으로 한번도 보지못했던 히아신스라는 멋진이름을 떠올리고
그 비닐봉투안에서 세개의 구근을 건져 제 에코백속에 넣었습니다.
그길로 스산하고 황량한 겨울날의 횡단보도를 유유히 건너갔는데
계속 제 에코백안에서 시큼하고 독한 양파냄새가 났어요.
제가 기뻐하면서 득템해온것은
썩기시작한 보라색 양파였던 거지요.
저는, 그 구근덩어리들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고, 보도블럭을 지나가는동안,
앞으로 이 구근을 심어서 만나게될 꽃을 떠올렸던 건데
이 모습을 행여라도 보았을까봐,
전 살며시 조명가게를 살짝 뒤돌아봤어요,
조명가게에는 크고작은 많은 조명들이 빛나고 있었어요,
이 흐리고 어둡고 쓸쓸한 겨울, 저녁이 가까워오는 그 오후에.
실내에서 기르던 제비꽃이
꽃을 맺지 아니하거든
냉장고에 하루쯤 넣었다가 내놓으라고 하는
싯구절을 떠올리지만 않았어도
아, 나는 그 양파들을 구근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을텐데.
저는, 민망한 마음을 스스로 감추면서
인적이 드문 텅빈 골목길로 접어들었어요.
그러면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화원에 기웃거리는 날이 많아질것을 스스로 예감하는
늙은 제 모습이 미리 생각나 한편 슬퍼지고 먹먹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