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5.18 희생자들을 욕되게 하는 짓을 그만 하라
2019.12.20.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쫒기고 있는지 오늘 뉴스가 보여주네요. 국민들의 시선을 돌려야만 할 무슨 중대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정세가 자신들에게 불리할 만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것이 5.18과 세월호 희생자 감성팔이 장사였는데, 이젠 식상해져 국민들도 짜증을 내는데도 또 이 카드를 꺼내든 것 같습니다. 확실히 문재인 정권이 위기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수십구 시신이 나왔다고 언론들이 속보로 전하고, 김오수 법무부 장관 대행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5.18 때 계엄군에 의해 암매장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확인해 보겠다며 마치 5.18 관련성이 있는 것처럼 설레발을 치고 있습니다. 포털의 사회면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 1위부터 8위까지가 이 내용을 담은 기사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런 확실하지도 않으며, 상식적으로 5.18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임에도 이런 엉터리 기사를 속보, 1보, 2보, 3보... 하며 마구 쏟아내 국민들을 현혹해도 되는 것입니까?
<[1보] 옛 광주교도소 부지서 수십구 시신 나와…"확인 중">
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
<옛 광주교도소서 유골 40여구 나와…5·18 연관성 주목(종합)>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11289614&...
<어린이 추정 두개골도 발견… 옛 광주교도소서 5·18 행불자 나올까>
5.18 관련 재단과 문재인 정부가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군의 시체를 광주교도소에 암매장했다며 옛 광주교도소를 포크레인으로 파헤치기를 한 지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원래 제보자가 암매장되었다고 주장했던 광주교도소 내를 이 잡듯 파 헤쳤지만 시신이 나오지 않자, 엉뚱하게 ‘솔로몬 파크 조성사업’을 위해 공동묘지를 개장하다 나온 시신을 두고 5.18 당시 암매장되었던 것처럼 이상한 뉴스를 내보내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시신은 5.18과 관련이 없고 1970년대초 사형수들의 시신을 공동묘지에 이장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5.18과 관련 없다는 광주발 기사입니다.
[종합] 옛 광주교도소 시신 발견 “5·18과 관계없어”
https://view.asiae.co.kr/article/2019122015182027400
[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옛 광주교도소에서 시신이 발견됐다는 내용과 관련해 5·18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법무부가 솔로몬 ‘파크 조성사업’과 관련해 사형수 묘지를 비롯한 개장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52개의 봉분이 있는 옛 사형수 묘지에서 시신 수십 구가 발견됐지만 5·18 행방불명자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박채웅 5·18기념재단 고백과증언센터 팀장은 “민주인권 기념파크 조성과 관련,
이곳에 있는 시신들은 5·18과는 관련이 없다는 의견을 오래 전부터 법무부에 전달해 왔다.
또 원래 광주교도소는 현재 위치가 아닌 동구 동명동에 위치해 있었는데
당시 현재(북구 옛 광주교도소) 위치로 옮기는 과정에서 무연고자 공동묘지 시신들을 한 봉분에 이장한 것”이라며 “5·18 행방불명자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옛 광주교도소 옆 공동묘지에서 발견되었다는 40구의 사진을 보세요. 수십 구의 유골이 뒤엉켜 있습니다. 이는 시신을 바로 암매장한 것이 아니라 화장하여 유골을 수습해 모은 것이거나 오래 전에 매장한 시신들을 무덤에서 유골을 수습해 한 곳에 모아 다시 하나의 분묘에 모셔 놓은 것이라 봐야 합니다. 1평도 안 되는 면적에 40여 구의 유골을 모아 모시고 봉분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이게 5.18 때 암매장했던 것이라구요?
저런 형태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절대 5.18과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계엄군이 5.18 그 급박한 상황에서 40구를 화장해 뼈와 유골을 수습할 수도 없고, 광주교도소 내에 화장시설도 없어 저렇게 할 수 절대 없죠. 40여 구를 암매장했다면 저런 식으로 유골이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시신 40여 구를 암매장하려면 1평의 면적에 모두 암매장 할 수 없고, 깊이 수십 cm에 매장할 수도 없습니다.
암매장 후 시신이 부패하여 유골만 남으려면 최소 20년은 훨씬 지나야 합니다. 5.18 때 계엄군이 암매장했다가 20년이 지난 후 김대중 정권이나 그 이후에 아무도 모르게 유골을 수습하여 저렇게 한 곳에 모실 수 있을까요? 2000년 이후에 유골을 수습했다면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비밀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시민군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할 당시 시민군 사망 숫자가 40명에 훨씬 못 미쳤는데 어떻게 40구가 함께 나옵니까? 어린이 2 구의 유골도 함께 나왔다는데 당시 광주교도소 인근에서 사망하고 실종한 어린이가 있었나요?
두개골에 구멍이 난 2구가 나왔다고 5.18과 연관을 짓는데 그 구멍이 총상에 의한 것인지도 확인되지 않았고, 설사 총상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유골이 오래 전에 수습된 것으로 보아 6.25 때의 일일 가능성이 높지 40년 밖에 안 된 5.18 때의 일이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합니다.
5.18 실종자인지 확인하려면 유골과 실종자 가족간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 기사로 인해 5.18 때 계엄군에 의해 암매장된 것으로 인식하게 된 국민들은 그렇게 알고 지내게 됩니다. 6개월이나 1년 뒤에 유전자 검사 결과가 5.18과 무관하다고 나와도 그 결과를 언론들이 지금처럼 속보로 전하거나 대서특필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은 그 결과를 알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국민들은 계속해서 계엄군이 암매장한 것으로 알고 국민들의 뇌리 속엔 계엄군이 잔인했다는 인식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이런 사례는 ‘헬기 기총소사 건’이 잘 보여주고 있죠. 옛 전남도청 광장 바로 인근의 전일빌딩 10층 외벽과 천장에 총흔 자국이 발견되자, 이를 5.18 때 계엄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으로 광주시민들을 향해 기총소사한 증거라고 5.18 단체와 언론들이 떠들었고, 문재인의 국방부는 이게 사실인 것처럼 발표를 했습니다. 언론과 문재인의 국방부가 이렇게 말을 하니까 국민들 대부분은 5.18 때 헬기 기총소사가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종편에 출연한 패널들도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정도이니 얼마나 잘못된 사실이 사실인 것처럼 둔갑하여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5.18 때 헬기 기총소사가 없었다는 것은 증언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 이것 하나로 바로 증명됩니다. 전남도청 광장 인근에 수 만명이 운집해 계엄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면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나 기관단총(M60)의 총성을 들은 사람이 한두 사람 밖에 없었겠습니까? 적어도 수 천명의 증언자가 속출했겠죠. 그런데 증언자는 서너 명 밖에 없으며, 이 증언자들도 직접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한 것이 아니고 수백 미터 떨어진데서 기관총 소리를 들었다거나 전언을 증언한 것뿐입니다. 이 증언들마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구요.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은 분은 5.18 헬기 기총소사 건에 대해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을 아래에 링크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비오 신부의 5.21 헬기 기총 소사 증언은 신빙성이 있나>
http://theacro.com/zbxe/?_filter=search&mid=free&search_target=title_content&...
<5.18 관련 무책임한 증언들>
http://theacro.com/zbxe/?_filter=search&mid=free&search_target=title_content&...
이제 5.18 단체나 유족들이 나서 5.18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자들을 단죄해서 5.18 희생자들의 순수한 뜻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내년이면 5.18도 40년이 됩니다. 희생자들과 유족들은 여전히 한으로 남고 뼈에 사무치는 기억일 테지만,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의 아픔을 함께 치유하기 위해 이젠 역사의 바다로 흘려보내는 것이 어떨까요?
말초적 증오와 분노에서 벗어나 용서를 위한 준비를 하고, 5.18의 역사적 의미를 국민들 모두 새길 수 있도록 차분히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함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나치당의 본거지였던 뮌휀의 쾨히니 광장 자리에는 지금 미술가 ‘카스트너’의 <풀은 역사 위에 어떻게 자라는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1933년 나치가 퇴폐적이라고 낙인 찍은 작가들의 책들을 불살랐던 광장에 ‘카스트너’가 그 자리를 불살라 재로 만든 후 어떻게 풀이 자라는지를 관찰하도록 하는 작품입니다.
과거를 상기하고 잊지 않도록 하되, 미래 세대가 그 의미를 찬찬히, 그리고 되씹게 하는 것으로 세련되기도 하여 한참을 그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그 작품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나는 5.18의 실체를 제대로 알았을 때 반사적으로 일어났던 5.18에 대한 다소 부정적 생각들(본질적인 것이 아닌 부차적인 것이지만 그 반사적 강도가 강해 본질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에서 벗어나 다시 차분히 5.18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상처를 덧나게 하고 분노를 증폭시키기보다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화합을 위한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