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겨울아침과, 저녁이 유리창밖너머로 물드는 이 계절에,
우리집 베란다도 너무 쓸쓸하고 삭막하네요.
10여년전, 낮은 들창으로 스며드는 햇빛과 바람도 귀하던 반지하에
살때에는, 지상의 안락한집을 꿈꾸며,
낡고 오래된 책꽂이위에 작은 아이비화분도 올려놓고 그 세월을
보냈어요,
지금생각하면, 제 기억속의 환등기속에 등장하는 그 시절은
슬픔과 기쁨이 뚜렷이 구분되지않았던 흑백텔리비젼화면같은
나날들이었어요,
빛한점도 인색한 작은 방안에서도 그와중에
제가 읽어주는 중고그림책을 들으며 잘 자란 아이는
지금도 시를 읽으며 말없이 잘크고 있어요.
계단을 내려와, 굳게닫힌 문을 열고 조우하게 된
반지하는 언제나 물컹하고 짙은 어둠으로 덩어리져서
한동안은 그 썰렁한 모습과 담담하게 마주서야만
비로소 컵이라던지, 텔리비젼같은 익숙한 풍경들을
보여주었어요,
그 익숙한 우리집의 일상이 제눈에 담기기까지
늘 처음인듯, 서먹서먹하게 열린문앞에서 마주하는
그 생경한 경험들,
그집을 떠나 지상으로 올라가기전까지 참 익숙해지지않는 일이었지요.
모든것이 제 눈에 흑백으로 점철되고
수묵화처럼 무겁던 그 풍경속에서 제가
꿈꿨던 것은 초록색식물들이 자라고, 붉고 노란 사랑초꽃들과
제라늄들이 피어난 베란다를 늘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런 일은 쉽지않았어요.
애기별꽃도 꽃을 피우지못했고,
스킨답서스도 넝쿨지지 못했던 것은
반지하라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상으로 올라가고, 햇볕이 비치는 베란다에서도
늘 화분들이 피어나지못해서 제대로 된 화분들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고심끝에, 잡초도 키워봤어요,
지천에 피어있는 민들레, 계란꽃, 채송화등등.
그중에는 또 일찍 시들어 버리는 꽃도 있긴했지만 대개는
너무도 잘 자라주었어요,
지금은, 그때보단 실력이 좀 늘어서 여덟개의 화분들이
베란다한켠에 일렬로 잘 있어요,
보라색 달개비도 쭈볏쭈볏 잘 크고 있고, 털달개비도
앙증맞은 자태를 뽐내며 건강하게 잘 크고 있고,
수형잡히지않은 허브장미도 제법 볼만합니다.
달개비들이 은근히 종류도 많다보니,
청달개비라는 것도 어느날은 알게되어서
길가를 지나다가, 한개를 꺽어와 작은 병에 물꽂이를 해두었더니
하루가다르게 크는거에요.
일주일안에 벌써뿌리가 자라고, 이젠 그 싱싱한 줄기사이로
남색 꽃이 피었네요. 청달개비가 아니라 닭의 장풀이었네요.
그러고보니, 사랑초를 닮은 괭이밥도 참 예쁘더라구요.
나태주시인의 그 싯구절이 아니더라도,
모든 꽃들은, 다 예쁘더라구요.
참 오랜세월을 가난한 반지하에서 지내왔던 그시절의 저로썬.
너도 그렇다...
라는 말, 참 가슴에 스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