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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어린시절 우리집 4

청소 조회수 : 3,820
작성일 : 2019-11-26 13:42:17
막내남동생도 대학을 가고 여동생도 뒤늦게 대학생때
집안형편상 우리는 모두 하루종일 알바로 각자의 학비와 용돈을 벌어야 했고 큰오빠는 군대에 갔어요
매일 주방에서 떠나지 못했던 엄마는 도시락을 8개씩도 쌌었는데
그맘때 자식들 누구도 집에선 밥을 먹지 않았죠
건설직에 몸담았던 아빠는 그시절 이른 imf를 맞았고 평생 주방일과 집안일밖에 몰랐던 엄마는 무기력하게 하루종일 안방에서 나오지 않으셨어요
어두운밤 늦게 집에가면 늘 불꺼진 거실 안방 그리고 내방..
동생들 얼굴도 주말에나 가끔 스치듯 보고 우리는 점점 그좋고 젊은 청춘을 무거운 어깨를 누르며 살기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나봐요
두번째 우리집은 늘 그렇게 어두웠죠
작고 초라하고 낡았던 첫번째 우리집은 추웠지만 밝고 따스했는데..
공간이 주는 행복감보다 마음이 주는 행복감이 더 큰건가봅니다

결국 집에는 빨간딱지가 붙고 사채업자들이 와 아빠랑 싸우고
우리는 아무도 말을 안했어요
곧 여기 우리가 처음가져본 제대로 형태를 갖춘 우리집서 나가야 하는날이 오겠구나 막연했는데 그시간은 무척 빠르게 왔답니다

가장 먼저 내가 취업을 했고 뒤이여 여동생이 취직을 해 급여가 몽땅 남동생 학비와 집안 생활비로 들어갔으나 턱없이 모자랐죠

그것보다 다시금 그옛날 불편하고 감추고 싶던 내공간도 없던 그런 우리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저는 그게 참 무서웠어요
우리는 누구도 그상상했던 일이 일어날것을 알고 있었지만 입밖으로 소리내 말하지 않았어요 모두가 두려웠던거죠
특히 엄마는 그게 참 슬펐나봐요
처음 가져본 싱크대 그릇장식장 식탁 아빠와 두분만 사용하시던 넓은 안방 그걸 놓기 싫었지만 그럴수 없는 좌절감 절망
끝이 안보이는 나락들..
지금생각해 보면 4형제가 학교졸업을 앞두거나 취직을 해 장성했던 그때가 더 희망적이지 않았나? 예전 어린자녀 4명과 비좁은 집에서 고생하던 때보다 훨씬 희망적이란 생각이 지금은 드는데

우리형제나 부모님은 그때 평생처음 누려본 짧은 6년의 마당있는 양옥집의 달콤한 열매가 너무 달아 그전의 어려움으로 다시 들어가는게 너무 두려웠나봐요

쫒기듯 경매로 집이 넘어가고 세간살이 몇개 겨우 건져 빚청산하고 그래도 감사하게 손에 몇백이 남아
서울밖 인천의 끝자락 15평 빌라로 이사를 했어요
공동화장실도 콧등시린 방도 찬물만 나오는 판자촌이 아닌게 어디냐고 퇴근해 들어온 여동생과 나는 엄마를 위로 했는데 늘 엄마는 답답하다며 빌라옥상에서 시간을 자주 보내셨어요

방두칸에 바로 붙은 좁디좁은 주방겸 거실
세탁실이 작은방 베란다에 있어 엄마는 자고 있는 우리를 건너 베란다서 빨래를 꺼내 옥상에 널었는데 그때마다 그게 왜그리 힘들어 보였는지 몰라요
5층 가장 싼 꼭대기에 빌라도 산모둥이에 있던 그동네서 가장 싼 집이라 최소 8층 높이는 되던 집
다닥다닥 옆동과 붙어 안방과 옆집 안방이 훤히 보이고 온갖 주변의 소음이 들리던집
창문으로 햊빛은 커녕 사방이 꽉 막혀있고 욕실 변기는 틀어져 있어 무릎을 펼수조차 없었죠
남동생과 오빠가 군대에 가 있고 여동생과 나는 직장을 서울로 다니느라 새벽 6시면 집에서 나와야 해 새벽 5시면 일어나야 했고
집에 들어가는 지하철은 지옥철에 출퇴근시간은 4시간이상..
사람이 이렇게도 힘들수가 있구나 마을버스 지하철 환승 2번 다시 버스 타고 출근
집으로 오는길은 다시 8층높이의 높다란 계단이 나를 기다리고 컴컴한 그긴 계단을 걸어올라 집에 들어오면
엄마는 늘 말없이 밥을 주셨죠 늘 그렇게 엄마는 밥을 잘해주셨어요
새벽에도 도시락 하루도 안거르고 싸주셨고 퇴근하고 출근하는 우리에게 밥을 참 잘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울수도 짜증낼수도 화를 낼수도 없었나봐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아빠는 평생 꿈이였던 븕은 벽돌 마당넓은 양옥집 한채를 날리고 어두운 방에서 주눅들어 tv만 보셨구요
여동생과 내가 쓰던 작은방에 우리 물건은 없었어요
집이 좁아 그방은 창고처럼 썼거든요
그옛날 창고처럼 쓰던 다락방도 없고 나랑 동생이 돈모아 샀던 침대도 화장대도 책상도 없었죠
우리는 화장품도 가방에 넣어 벽에 걸고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던 우리의 물건들도 버리고 추려 작은상자안에 겨우 보관해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 두려웠던건 아마 부모님 저 여동생 모두..오빠 남동생이 전역해 집에 오는거였죠
잘곳이 없었거든요
늘 몸이 힘들어 말라비틀어지는 땉들 보다 군대서 고생하고 휴가나와도 잘곳도 머물곳도 없어 친구집이나 친척집서 자고 가는 아들들이 가여워 엄마는 한숨과 눈물을 보이셨어요
저는 또 그게 그리 원망스럽고 가슴의 한으로 남아있네요
철없었죠 ~
햇살도 안들어 늘 낮에도 불을 껴놓고 살고 이웃소리가 다들려 사생활 보호가 전혀 안되는 우리집에서 제가 유난히 싫었던건
일이 없어 축쳐진 상태로 무기력하게 안방서 담배피던 아빠모습
흰벽지가 담배연기로 누렇게 변하고 그 담배 찌든 냄새
우리가 들어오면 급하게 끄셨지만 문열고 들어오면 늘 그냄새가 확 났어요
그래서 지금도 어쩌다 담배냄새를 맡게 되면 그집 그 벽지와 어두운 방 아빠 모습이 생각나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던데..
왜 슬픈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하게 새록새록 그향기마저
느껴지는걸까요






IP : 112.154.xxx.39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오늘
    '19.11.26 1:50 PM (211.177.xxx.118)

    힘들었던 시절을 눈에 보는 것 처럼 표현하셨어요.
    재밌고 슬픕니다. 저도 어렸을 때 고생하던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그런가운데서도 사랑을 듬뿍주신
    엄마 고맙습니다. 글쓴분의 어머니는 끼니로 사랑을 나타내셨군요. 저희 엄마도 도시락과 끼니에 없는 가운데서도 엄청 신경써서 맛있게 해주셨답니다.

  • 2. ....
    '19.11.26 1:52 PM (61.32.xxx.77)

    저 살았던 곳이랑 비슷하네요.........

  • 3. 글을 잘쓰네요
    '19.11.26 1:57 PM (112.184.xxx.71)

    한편의 동화같이..

  • 4. . .
    '19.11.26 2:12 PM (180.65.xxx.243)

    어느 소설의 한 부분을 읽은 느낌이 나네요
    건강하세요

  • 5. ...
    '19.11.26 2:13 PM (116.127.xxx.74)

    고생하셨던 우리엄마 생각나네요. 이제 살만한데,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어요.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만 하시다가.
    님 형제들은 지금은 어떠신가요? 다들 자리잡고 편히 잘 사셨으면 좋겠네요.

  • 6. 수정
    '19.11.26 2:36 PM (223.39.xxx.171)

    치열하지만
    잔잔한 소설을 읽는 느낌이네요

  • 7. 아...
    '19.11.26 3:27 PM (211.39.xxx.147)

    마음 아픈 시절이었군요.

    그렇게 오래 지하철, 버스를 갈아타면서도 출근 꼬박꼬박 했던 님.

    글 잘 읽고 있어요.

  • 8.
    '19.11.26 3:42 PM (121.165.xxx.12)

    죄송한데 저는 부러운 어린시절이네요 도시락 싸주는 엄마가 있고 집에돌아가면 또 엄마가 있고ㅠ전 초3부터 고3까지 부모별거로 아빠랑 살았어요 소풍때도 떡을 사다주셔서 숨어서 먹고 매일 술로 사는 아버지에 하루하루 희망이 없었죠 가끔 만나는 엄마는 절 데려가살수없는 형펀이였고 고3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엄마랑 살았는데 편암과 동시에 원망이 공존했죠ㅠㅠ

  • 9. 구독자
    '19.11.26 3:52 PM (69.209.xxx.74)

    잘 읽고 있습니다. 몇 부작인지 궁금하네요. 계속 써 주실꺼죠?

  • 10. 나이가
    '19.11.26 4:00 PM (175.194.xxx.191) - 삭제된댓글

    지금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슬픈기억도 아름다운추억으로 변할거에요.

    살아보니 그렇드라구요.

  • 11. 좋은글
    '19.11.26 4:09 PM (211.220.xxx.118) - 삭제된댓글

    제삶의 그옛날 기억도
    또렷하게 혹은 어렴풋이 떠올려지고.

    오늘 82게시판 잘 들어왔다
    페이지 넘겨버렸음 어쩔뻔 했어 싶네요

  • 12.
    '19.11.26 8:40 PM (223.62.xxx.81)

    어린시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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