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참 절실히도 '혼자만의 방'을 원했어요.
여러모로 귀가 얇아(?)소리에 퍽이나 민감해서 엄마아빠가 다투는 소리, 외할머니의 TV소리, 언니의 통화 소리, 동생의 게임 소리에서 벗어나 혼자 공부하고 책을 읽고 일기나 편지를 쓰고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을 듣고 싶다는 사춘기의 소망이 참 강렬했던 것 같아요.
때로는 잠깐 그렇게 된 적도 있었는데 그 순간들의 행복이 몰래 먹는 사탕처럼 참 달콤했던 것도 같으네요...
세월이 이렇게 흘러 독립 아닌 독립의 형태로 혼자 지내게 된 지 7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집에서 하게 되는 작업들이 많아져 계속 도서관이나 외부로 떠돌아 작업할 수만은 없게 되고 사실 집이 아닌 밖에 있으면 불편하고 불안해 능률이 오르지 않고 하다보니 고요한 시간은 한 밤. 그렇게 밤도깨비로만 일을 해야 해 곰곰 궁리가 많아졌어요...같은 일을 하는 선배언니랑 일할 때는 같이 한 공간에 있었지만 그 언니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작업 및 작업공간을 분리해야 했고 그리고 저도 가족들과 이사를 계획하게 되면서 드디어 혹은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기거하는 집을 마련해야 할 여러가지 필요와 이유가 생긴 거죠....
( 가족들과는 방 3개 분의 집 살 돈 밖에 없는데 우린 다 성인이니 당연히 각자의 방이 필요하고 그런데 내 방은 없는 것 같은 상황이 되더라고요. 꼭 내 방만 그렇게.^^)
가족을 위해서 대개는 다 풀지만 그래도 은근히 꿍쳐놓은 제 돈이 있어서..가족들과 의논해 결국 혼자 집을 구했고 그렇게 작고 낡은 집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네요. 혼자만의 집으로 이사할 때는 그래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신나면서도 서럽고 왈칵 겁나면서도 뭔가 희망이 생기는.
물론 걸어가도 좋을 거리에 가족들이 살아서 주 볼일은 가사도우미 이지만 산책 삼아도 가고 저녁먹고 오기도 하고..그러다 일 많으면 택배만 보내고 삐지면 안 보고 아프면 못 가고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우리 가족은 우리답게 지낸답니다..
요 근래..인생의 슬럼프가 오고 마음이 복잡하고 몸도 피곤하고 혼자만 있다가
우리 집에 오랜만처럼 가서 가족들과 보내고 이틀을 자고 지금 돌아왔는데 들어오는 골목길이 여느 때처럼 외롭지는 않으네요. 마치 명절처럼요.
그냥 내가 당연히 와야할 곳에, 올 곳에 온 것 처럼 익숙하고 편안했어요.
사실 아침(사실 꼭 아침은 아니지만^^)에 일어나면 여기가 어디지..왜 난 여기에 있지...이 집에서의 나는 가끔 그랬거든요. 왜 내가 여기 혼자 이렇게 있어야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을 이상한 마음이 들었고 그런 마음이 드는 아침엔 하루를 포기하게 되었어요.
돌아와 지금은 혼자 누워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그 때 혼자만의 방을 절실히도 원하던 그 사춘기 아이 때 같은 기분이 들어요.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내년엔 계약만료니 그렇게 할까...이리저리 좀 생각이 많았는데
당분간은 이 기간을, 내 인생 중 이 시간을 연장해도 좋을 것 같다고 혼자 고개 끄덕거리고 있네요.
그러다보니 이런 생각.
어쩌면 나는...하나도.. 내 아이 때의 소원을 나에게 이뤄준 것이 없는 것 같아.. 어릴 적 나라는 그 아이에게 참 미안했는데
이 소망 한 가지는 그래도 들어준 것도 같네요.
혼자만의 방. 아무 소리도 없이, 혹은 혼자의 소리가 흐르는 그런 작은 방 같은 집. 공간. 시간. 을 꼭 갖을거야 했던..
때로는 이토록 불안한 삶이지만 그래도 그 때의 약속은 나에게 내가 지켜준 것 같아.. 혼자 웃어보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