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김지영으로 빙의해버린 정유미.
시모, 피붙이, 타인들이 무심코 내뱉는 사나운 말에 할퀴어지고 피흘리는 순한 영혼,
속으로만 삼키는 여리디 여린 영혼을 잘도 그려낸다.
정유미와 공유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이토록 설득력 있었을까.
더불어 가족의 풍부한 캐릭터와 섬세한 디테일덕에 82년생 김지영은
아주 희귀하게도 원작보다 나은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경력 단절, 사회 단절의 공포를 느끼며 자존감은 위축될대로 위축되고
노는 것 쉬는 것으로 치부되는 육아와 살림
그리고 시부모 스트레스를 끙끙 참으며 감내하는 젊은 엄마들,
아내가 안쓰럽지만 고부 사이에 갈팡질팡하는 남편들,
오빠들 공부시키려고 공장에서 일한 어머니 세대,
남존여비로 군림하다가 급변하는 시대에 부적응하고 화내는 아버지 세대,
그리고 몰카 돌려보기와 맘충드립이 일상인 쓰레기들...
서로가 무례하게 상처 주며 속으로만 곪아간다.
이 영화가 생생하게 소환해버린 나의 종살이 같았던 시집살이와
아토피 아이 육아의 슬픈 기억으로 내 안경은 이내 눈물미스트로 뿌얘졌고
상영관은 훌쩍임으로 가득찼다. 심지어 옆자리 남자분도..
그렇다고 주구장창 우울한 내용뿐인 것은 아니다.
김지영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씩씩한 엔딩에서 보드라운 위로를 받았다.
“저를 아세요? 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려고 애쓰세요?”라는 담담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고마운 영화다.
사족.
당면한 인구절벽을 우려하고 진정으로 이 나라 미래를 생각한다면,
출산정책을 위해서라도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단체관람해야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