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넘게 뉴스 보면서 잠도 못 자고 분노하고 걱정하고 댓글 달고 실검하고
그 와중에 애들 중간고사에 가족행사에 이래저래 바빠서 컨디션이 그닥이었어요.
집에서 쉴까 생각했는데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 생각도 나고
규모 10만 정도의 집회다 그러면 뉴스에서 한꼭지도 제대로 안 나올 것 같아서 머릿수 하나 더 보태러 나갔습니다.
서초역에 도착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서초역에 이렇게 사람 많은 거 첨 봤어요
7번 출구로 나가니 82깃발 바로 보였고요 거기 계신 82님들과 인사 나눴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쪽에 성모병원, 고속터미널 쪽을 보는데 우와!!! 저절로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거예요.
그 길이 오르막이라 멀리서 보면 경기장 스탠드? 또는 바다의 수평선 같은 느낌이거든요.
근데 그 끝까지 사람이 가득찬 거예요.
거기 노란색 물결이 꽉 찬 걸 본 것만으로도 온 보람이 있었고 속이 뚫리는 것 같았어요.
일단 10만은 분명히 넘었다는 거 알 수 있었고요.
6시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움직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광화문에 100만 이상 모였을 때 앞으로 전진이 안 되던 그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카톡도 안 되고 인터넷도 안 되고 친구와는 전화로 겨우겨우 정말 기적적으로 만났어요.
스크린과 무대가 있는 집회 쪽으로 가고 싶은데 중앙지검 방향으로는 단 한발짝도 걸을 수가 없고
앞에 있던 사람들이 앉기 시작하니 전진은 커녕 되려 뒤로 뒤로 뒤로 밀려서 친구와 저는 서초역 사거리에 앉았습니다.
10만 예상했던 집회에 100만이 왔으니 리더도 센터도 없어서
촛불문화제가 어찌 되어가는지도 안 보이고 구호를 이끌 주최측이라는 게 전혀 없었죠.
그런데도 누구랄 것 없이 어디선가 구호를 외치면 주변 사람들이 따라하고 그게 계속 반복이 됐습니다.
정치검찰 물러가라
조국수호 검찰개혁
공수처를 설치하라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다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사람들이 그동안 억눌러온 분노가 엄청났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어요.
심지어는 중간에 다른 쪽으로 이동하려고 서초역 지하도를 오르내릴 때도 사람들이 검찰개혁 구호 외쳤고
지하철 표 끊는 자판기 있는 데서도 가끔 누가 검찰개혁 구호를 외치면 같이 따라했습니다.
무대도 스크린도 사회자도 없으니 구심점이 없어서 사람들이 가버리면 어떡하나 했는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이 모두 계속 구호 외치셨고
가시는 분들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어디선가에서 계속 끝도 없이 오셨어요.
연령층은 0세에서 60대 이상까지 다양했는데요, 아이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도 보였고
뜻밖에 60대 이상 넘어보이는 어르신들이 상당히 많이 오셨습니다.
오늘 다들 애쓰셨지만 그 중에서도 대검찰청 옆인가요? 태극기 맞불집회 옆에 계시던 분들
그 앞에 있던 분들이 젤 힘드셨을 거예요. 태극기 집회의 스피커 소리가 너무 컸거든요.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구호라는 게 조국 구속, 문재인 탄핵은 양반이고 그냥 욕을 막 하더라구요.
무시하는 게 최선인 걸 알지만 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무시하기도 힘들었어요.
일단 우리 구호가 다 묻히니까요.
그 저열한 개소리들을 다 들어가며 문재인 탄핵을 '문재인 최고!' "문재인 사랑해!"로 받으시던 분들,
'토착왜구 일본 가라'고 그 와중에 구호 만들어서 쉴새없이 외치던 분들 정말 애쓰셨고 고마웠습니다.
촛불집회는 10시 다 돼서 끝났고 서초역으로 지하철 타러 걸어갔습니다.
가면서 사람들과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이 불렀고요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면서 다들 수고하셨다고 박수 치고 내려왔어요.
뉴스에 뭐라고 나올지 검찰이 다음 주에 무슨 짓을 더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러 분들과 하고 싶은 말 실컷 외치고 와서 답답하던 속도 풀렸어요.
그리고 그동안 랜선을 통해 댓글로, 공감 하트로, 좋아요로, 리트윗으로 연결돼있던 분들을
한 자리에서 보고 한 목소리로 외친 게 무엇보다 신나고 기뻤습니다.
다음 주에는 대형 스크린을 몇 군데는 더 설치하고 구호도 더 다양하고 볼거리가 더 많으면 좋겠어요.
이게 아마 강남에서 하는 최초의 대규모 시위일 것 같은데 한번 성공시켜 봅시다.
검찰개혁 성공하는 그 날까지 서초동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