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달리기 동화

조회수 : 510
작성일 : 2019-09-19 16:41:45

좌파, 우파 두 명의 육상선수가 있어.


우파 선수는 협찬 받은 최고급 운동화와 운동복으로 무장, 

돈이 많으니 올림픽금메달리스트 출신의 해외 코치도 영입하고 각 분야 전문가로부터 각종 서포트도 받지.

참, 왜 돈이 많냐면 옛날 일제시대에 한몫 단단히 챙긴 증조부 덕에 자자손손 부를 쥐었거든. 

아무튼 돈 없으면 운동도 힘든 현실이야.

그리고 언론은, 우파선수가 합숙하면서 고급 양주 술판 벌인 거, 훈련 빠지고 놀러간 거, 다른 선수 폭행, 음주운전 등등 온갖 추잡시러운 거 안 파헤쳐. 여기저기 목격자 제보가 있어도 그냥 쌩까.

아마 신문사 사장이 시켜서겠지. 그런 거 쓰지 말라고. 신문기자들 너무 불쌍하다니까.

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근데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게 또 너무 실력 이하면 체대를 못 들어가잖아. 어지간히는 해야 가지. 

그런데 갑자기 그 실력이 의심스러웠던 우파선수에게 딱 맞는 맞춤형 체대입학전형이, 그 우파선수 고3에 뿅 생겨서 정말 천운으로 체대를 갔어.

그 뒤로 바로 그 전형은 폐지됐으니 세상에 얼마나 천운이야? 1년 빨랐거나 1년 늦었어도 못 갈 뻔했으니 정말 아슬아슬했어. 

조상이 도운 거지.


그런 반면, 좌파 선수는 스폰서가 없어 훈련장소도 변변찮고 훈련환경도 열악했지. 

그러던 어느 날 합숙하다 치킨을 시켰는데, 콜라 대신 맥주를 시킨 거야. 그게 사단이 났어.

언론이 벌떼 같이 들러붙어서 경기 앞둔 선수가 술을 마시네 어쩌네 질타를 해댔지.

치킨은 누구 돈으로 사먹었느냐며 돈의 출처를 캐묻더니, 그 날은 쿠폰 10장을 모아서 주문한 걸로 밝혀지자, 

혹 쿠폰갯수가 모자란 상태에서 어떤 외압을 행사해 서비스를 받은 건 아닌지 파헤쳤어.  

그 치킨집이 오픈한 지 두 달이 채 안된 가게였는데 그 새 쿠폰 10개를 모으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쿠폰을 스캔, 복사해서 가짜 쿠폰을 만든 거라고 마구 물어뜯었어. 

얼결에 사건에 휘말린 치킨집 사장은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오래 전 일이라 받은 쿠폰은 이미 버려서 없다고 했더니, 

어떤이들은 쓰레기 처리장에 가서 뒤져서 쿠폰을 찾아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삭발을 하고 현수막을 걸고 시위를 했어. 

게다가 왜 치킨무는 두 개 달라고 했냐며 좌파선수는 돼지같은 욕심쟁이라며 손가락질했지.

치킨집 아저씨가 일이 바빠 손에 잡히는 대로 배달봉투에 넣은 건지... 달란 말도 안 했는데 소금을 두 봉지나 챙겨주는 바람에 그것까지 해명해야했고. 

어떤 사람들은 두 달 간 치킨 열마리를 먹는 좌파선수의 경제력에 박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고, 

그가 받은 소금 두 봉지의 특혜에, 자신의 어린 자식에게 물려줄 세상의 부조리함을 탓하면서,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음을 삼켰어.

참, 선수는 한 명인데 나무 젓가락이 두 개인 것도 해명해야했어. 

코치와 나눠먹으려고 했다고 답했지만, 1인1치킨이 아닌 게 도대체가 말이 되느냐며 몰아세웠지.

일회용 나무 젓가락을 개념 없이 펑펑 써제낀다며, 나중에는 브라질의 산림훼손에 일조, 급기야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까지 찍히게 돼서 

선수 사퇴 압력이 사방에서 쏟아졌지. 바다 건너 이웃나라에서까지 선수 생활 그만하래.

결국 사건에 연루된 치킨집은 언론과 동네 불량배들에게 시달리다가 생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어 결국 폐업을 했고, 

그 자리엔 대기업 치킨 프랜차이즈 인테리어 공사가 지금 한창이라고 누가 그러더라.

좌파선수의 의혹은 결코 여기에 그치지 않았어.

좌파선수의 이력에 지난해 양촌리회장배 가을걷이운동회에서 달리기 1등 한 게 기재돼있는데, 

그게 의심스럽다며 양촌리를 뒤엎고 쑤셔서 급기야 김회장네가 탈탈 털리고 난리가 났네.

하필 김회장네 큰아들 직업이 군청 계장! 공무원인 것도 문제였지.

2년 전에 좌파 선수의 이종사촌 시조카가 홈플러스에서 장보다가 김회장네 큰아들에게 계산대에서 줄을 양보한 적이 있는데 그게 cctv에 남아서 또 사단이 된 거야. 

오래 전 일인데 신기하게 검찰이 찾아냈대.

아, 아니래. 그 'cctv'가 입수된 게 아니라 'cctv를 본 사람'을 찾아냈대.

아, 아니래. 그 cctv를 봤다는 얘기를 '술자리 누군가로부터 들었다는 사람'을 찾아냈대. 그 날 꽐라댈때까지 마셔 집에 간 기억은 없지만 그 얘기는 분명 들었대. 

녹취도 했대. 녹취파일이... 있댔나? 없댔나? 입수...했댔나? 아니랬나?

아, 아니래. 그것도 아니래.

뭐 아무튼 뭔가를 찾아냈대. 진짜래. 예전에 찾아냈던 것 처럼. 

검찰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들은 곧잘 쏙쏙 잘 찾아내곤 하는 최고의 능력자들이니까. 

훗날 보면 그게 그게 아녔던 것 투성이지만, 아무튼 그게 그거라고 늘 발표해. 그들의 모토는 '지록위마'일 거야 아마(자매품 침소봉대와 초지일관)

좌우지간 부지런한 언론들은 앞다퉈 받아적고,  또 거기에 동조된 많은 사람들은 알게뭐람, 하며 신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걸 함께해. 

진정한 운명공동체지.


난 몹시 안타까워.

왜 하필 그 날따라 두덕리 살던 좌파선수 이종사촌의 시조카는 두덕리의 롯데슈퍼를 놔두고 양촌리 홈플러스를 갔을까.

왜 하필 김계장은 그 이종사촌 시조카 뒤에 서야만 했을까.

왜 하필 김계장은 껌을 한 통만 사서 줄을 양보 받았을까.

왜 하필 김계장은 그많은 롯데 껌 다 놔두고 구석탱이의 오리온 껌을 집었을까.

왜 하필 김계장은 공부를 곧잘해 공무원이 되었을까.

왜 하필 김계장은 김회장의 아들로 태어났을까. 얼굴 생김이 아버지와 너무 다르고 나이 차이도 여섯 살 정도 밖에 안 나보이던데 과연 친아들은 맞을까?

그 모든 게 다 우연이었을까? 매우 아쉬움이 남어.


아무튼 시합을 앞두고.

우파쪽 트랙은 충격을 흡수하는 최첨단 신소재로 쫙 깔려있고, 

스파크가 달린, 과학기술의 집합체인 궁극의 운동화, 공기역학을 고려해 타이트하지만 땀배출은 용이한 최고품질의 운동복 등 온갖 스폰 받은 걸로 중무장해, 야빠리 혼또니 삐까삐까함을 이빠이 발산했지. 증조부의 아우라가 얼핏 느껴질 정도였어.

좌파쪽 트랙은 자갈이 많은 흙바닥에 웅덩이도 있고 앞에 뭐 나무도 쓰러져있고 칡도 엉켜있고 깨진 유리 조각도 널려있고, 코모도왕도마뱀도 풀어져있고 엉망진창.

좌파 선수의 신발은 단촐한 아티스운동화. 외롭지 않게, 지구를 구하는 용사가 그려져있네 그나마.


그래서 좌파선수 응원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선수가 달릴 길을 터주는 거야. 

주최측에 항의해봤자 자칫 업무방해나 명예훼손 아니면 포괄적방해죄로 고발되기 일쑤니,  스스로들 나서기 시작한 거지. 

자갈도 골라내고 빗자루로 쓸고 웅덩이도 메우고, 칡도 뽑아내고...

거기에 우파선수 응원하는 사람들이 난리가 난 거지. 트랙을 가만 내버려두라며 트랙불변의법칙을 설파하기 시작했어. 

여기에서 의아한 건, 이웃 나라의 육상선수 응원단도 우리나라 좌파선수가 달릴 트랙을 바꾸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tv에 나와 떠들어댄다는 거야. 

그 나라는 육상응원단 멤버의 개그맨들과 방송인이 아주 많고, 언제 어디서든 '대한민국'의 육상경기를 얘기할 표현의 자유가 넘치거든. 

그런데 왜 그렇게 남의 나라 달리기시합에 관심을 보이는걸까? 자국의 육상경기를 얘기하는 건 거의 보지 못했는데 말야.

아무튼 우파 응원단들은 트랙을 정리하는 좌파 응원단들을 향해 오물을 투척하고 돌멩이를 던지고, 트랙을 망가뜨리는 저치들을, 백주대낮에 업무방해 등의 불법을 횡행하는 미친 또라이들을 다 잡아가라고 우왕좌왕 야단법석이야.

물론 좌파선수응원단도 가만있진 않았지. 자기들 앞에 떨어진 온갖 쓰레기를 다시 우파 응원석으로 똑같이 던졌으니. 

어디 받은 것만 던졌겠어? 처음부터 트랙에 떨어져있던 나뭇가지랑 칡덩쿨, 유리조각도 같이 던졌겠지. 

어느 힘 좋은 이는 코모도왕도마뱀 꼬리 잡고 붕붕 돌리다 던졌을 거고. 하하.


그래서 어떻게 됐게?


우파관중석은 

아수라장풍비박산아비규환혼비백산인사불성 자업자득자승자박인과응보사필귀정 etc.


좌파선수와 응원단들은 그 뒤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IP : 85.203.xxx.119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9.9.19 4:51 PM (1.239.xxx.108)

    단편소설 한편 잘 읽은 느낌입니다
    해피엔딩이네요

  • 2. ㅎㅎ
    '19.9.19 9:16 PM (223.32.xxx.203) - 삭제된댓글

    재밌네요.
    성석제 랑 이문구 같네요.

  • 3. ㅎㅎ
    '19.9.19 9:22 PM (223.32.xxx.203) - 삭제된댓글

    재밌어요.
    성석제도 이문구도 생각나네요.오랜만에.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988107 패스)문조아웃) 윤석렬 아니었음. 2 아뵤 2019/10/06 547
988106 문조아웃) 윤석렬 아니었음.. 6 ㅡㅡㅡ 2019/10/06 821
988105 이노래들 입에 착착 붙어요ㅋㅋ 10 ... 2019/10/06 1,640
988104 세월호 문화제 후기 4 ... 2019/10/06 1,059
988103 100일동안 100가지물건... 영화보신 분 3 ㅡㅡㅡ 2019/10/06 1,164
988102 패쓰) 그 분 지지자들은 어디까지 지지할까 6 우끼네 2019/10/06 532
988101 그 분 지지자들은 어디까지 지지할까 8 궁금 2019/10/06 814
988100 옛날 당산철교 공사할 때 2호선 타신 분들 15 옛날 2019/10/06 1,616
988099 펌)조중동과 정치검찰에 당해보면 압니다 5 검찰개혁 2019/10/06 1,032
988098 뉴스는 마봉춘, 일요일 저녁 마무리는 고복순의 저널리즘J : .. 1 벨라챠오 2019/10/06 1,046
988097 패스) 1명의 피의자 때문에 어쩌구 .... 2019/10/06 504
988096 패스)전 고1 11 인어황후 2019/10/06 757
988095 패쓰) 1명의 피의자 때문에.. 7 이런 2019/10/06 554
988094 패쓰]아래 동요메들리 패스하세요 2 동요 2019/10/06 575
988093 오늘 나혼산 한혜진 나왔어요 5 소망 2019/10/06 2,648
988092 전 고1엄마인데요 28 라니맘 2019/10/06 4,328
988091 언니가 담도암4기 췌장암2기라는데요. 31 .. 2019/10/06 27,749
988090 cctv가 인권침해일까요..? 3 .. 2019/10/06 1,035
988089 충남에 돼지열병 의심 9 미치겠다 2019/10/06 1,212
988088 패스)조국사퇴 3 ㅇㅇ 2019/10/06 551
988087 조국사퇴 찬성일세~ 35 .. 2019/10/06 1,371
988086 사시패스해본 사람은 아는 조국교수의 의엄이란글 4 없는게시글?.. 2019/10/06 1,583
988085 에브리봇 청소기 단점이 있나요? 13 지름신 2019/10/06 4,667
988084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약도 받았는데 실비청구 2 궁금 2019/10/06 1,310
988083 주부가 암환자이면 살림은 누가 하나요 17 워리 2019/10/06 1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