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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역사학자 전우용님 페북들

... 조회수 : 609
작성일 : 2019-08-24 13:27:51
1.
서울대 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장관 후보 규탄시위를 한다는데, 집회에 모인 학생들 중에 '자기소개서'를 저 혼자 쓴 학생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네요. 자기소개서에 채워 넣은 스펙은 별개로 치고.

2.
조국 장관후보 딸의 고려대 합격이 부당했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합리적 방법은, 그의 합격 루트만을 세밀히 조사하는 게 아니라 그 해 고려대 입학생들의 합격 루트 전반을 조사하는 겁니다. 신호등이 빨간색이었는지 파란색이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무단횡단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3.
‘명문대 합격에 필요한 3요소는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얘기가 떠돈 지 꽤 됐습니다. ‘청담동 엄마는 명품구두 신지만 대치동 엄마는 운동화 신는다’는 얘기가 떠돈 지도 꽤 됐습니다. 청담동 엄마가 명품구두 신는 건 아이를 외국에 보냈기 때문이고, 대치동 엄마가 운동화 신는 건 자식 스펙 대신 쌓아줘야 하기 때문이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 교육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적은 없고, 현행 입시제도 때문에 더 심해졌다고 단정하기도 어렵지만, 이런 ‘사회적 자산’의 상속과 증여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건 분명해 보입니다.

지난 평창올림픽 때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문제와 관련해 “국가대표는 국가에서 혜택받은 사람들이니 남북 평화를 위해 출전 기회를 좀 양보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썼다가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된 건 순전히 자기 노력의 결과인데, 국가의 필요에 따라 출전 기회를 박탈하는 건 월권이자 폭력”이라는 주장이었죠. 국가대표 선수가 되느냐 못 되느냐에는 사실 간발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만, 일단 국가대표가 되면 코치진, 훈련여건, 장비 등에서 그러지 못한 선수들보다 월등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됩니다. 이로 인해 양자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지죠. 이런 ’격차 확대‘가 국가의 혜택 때문 아니냐고 얘기했지만, 그들에겐 통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젊은이 중에는 자기를 뒷받침한 ‘자원’ 전체가 ‘자기만의 것’이며, 그 자원을 동원해 얻은 기회와 권리 역시 ‘자기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가 얻은 기회와 권리에 포함된 ‘공적 특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거죠. 순전히 자기 노력만으로 얻은 것이 아님에도 ‘내가 노력해서 얻은 특권이니 절대로 침해 받을 수 없다’는 태도를 흔히 봅니다.

이른바 586 세대가 지금은 ‘기득권 꼰대’라고 비난받지만, 그들의 젊은 시절 마음가짐은 대체로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조국 장관후보가 입장문에 쓴 “사회로부터 과분한 혜택과 사랑을 받아왔다”는 문장은, 30여 년 전 많은 대학생이 공유했던 ‘사회에 대한 마음가짐’이었습니다. 당시의 대학생들은 “대학생 친구 한 사람만 있었어도....”라는 전태일의 말에 큰 마음의 빚을 느꼈습니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에 빚을 졌다고들 생각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젊은이가 많았던 데다가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입시 전형 다양화 초기의 혼란과 야바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다들 기억하면서도 조국 장관후보에 대한 비난이 거센 것은, 그가 이런 ‘마음’을 스스로 배반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마모시키며 산 586세대들 모두 비난받아 쌉니다.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에게서 이런 ‘부채의식’과 ‘의무감’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젊은이가 줄어든 데다가 ‘자기에게 투입된 자원’과 자기가 확보한 ‘권리’ 모두에 공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요즘 대학 내에서 빈부에 따른 학생들 사이의 차별은 저 같은 586세대가 상상도 하지 못한 정도입니다. 특히 명문대 학생들의 경우 자기가 ‘기득권 대열’에 합류 – 사실은 이미 기득권 가족의 일원인 경우가 많지만 –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데에는 자부심을 갖지만, 그것이 ‘사회적 책무’와 관련된다는 의식은 희박합니다. 물론 이것이 이들 탓은 아닙니다. 빈부의 문제를 개인의 자질과 노력 문제로 치환해 버린 신자유주의 ‘시대정신’ 탓입니다.

조국씨는 “사회로부터 과분한 혜택과 사랑을 받아왔다”고 적었지만, 그의 자녀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어제 몇몇 대학 시위 참가인원이 많았느니 적었느니 말들이 많은데, 대학생들이 원자 단위로 흩어진 지금 상황에서는 무척 많았다고 봐야 합니다. 아마 지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때 각 대학교 깃발 아래 모였던 학생 수보다도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저 학생들의 분노 아래 깔린 정의감의 정체가 뭔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지방 학생은 서울 학생더러 기득권 집단이라 하고, 강북 학생은 강남 학생더러 기득권 집단이라 하며, 학원 다닌 학생은 쪽집게 과외 받은 학생더러 기득권 집단이라 하고, 고액 입시 컨설팅 못 받은 학생은 받은 학생더러 기득권 집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각자가 확보한 ‘기득권’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명문대 학생 중 기득권 가족 자녀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학교 밖의 대답과 학교 안의 대답은 판이할 겁니다. 미래가 밝게 보이지만은 않는 이유입니다.

https://www.facebook.com/100001868961823/posts/2960134250725511/
IP : 218.236.xxx.162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수시철폐
    '19.8.24 1:30 PM (210.221.xxx.24) - 삭제된댓글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2195

    수시철폐만이 답이다.
    니들이 판깔고 니들이 뒷구멍으로 이득챙긴게 제일 문제다.

  • 2. ...
    '19.8.24 1:37 PM (218.236.xxx.162)

    수시 판을 깐 자들이 누구일까요? 우리나라 아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밀어넣고 학부모들 정신못차리게 한 자들은 누구인가요?

  • 3. 전태일 열사
    '19.8.24 1:57 PM (125.139.xxx.167)

    내가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어도......ㅠㅠ
    무한경쟁에 내 몰리는 아이들도 불쌍하고.

  • 4. ㅁㅁ
    '19.8.24 5:12 PM (39.7.xxx.72)

    전우용님 페북글 기다리며 읽습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건드려
    사고의 확장을 주시는 글들입니다

  • 5. ...
    '19.8.24 5:45 PM (218.236.xxx.162)

    다 못 퍼오는 글들도 많습니다...
    트윗으로 짧은 글만 보다가 요즘 페북 글들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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