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국 이전이 조선시대 500년이라 그런지,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조선의 유교식에
젖어 있는 게 많은데요, 외교도 그런 것 같아요.
이번 일본 사태도 물론 일본이 목적을 가지고-한국에 친일 정권 세워서 고분고분 자신들
뜻대로 움직이게 하겠다. 그리고 한국이 일본보다 더 잘 나가는 꼴은 못 본다.
이 참에 한국의 기를 꺾고 경제도 찌그러뜨리겠다는 여러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 것인데요, - 우리 정부가 이것을 예상하고 미리 대비를 했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방의 본심을 꿰뚫어 본 후에 대비하고 전략전술을 세워서 움직여야 하는데
미리 대비가 된 것 같지도 않고 전략전술도 치밀하지가 않은 듯하여 아직도 망한 나라
조선 방식의 명분 중시하는 외교를 하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되네요.
지지 않겠다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뜻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상대 일본은 유교적 사고방식 안합니다. 손자병법-싸움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
강자에겐 굴종하고 약자는 밟는다-라는 사고방식으로 움직이는 칼의 나라죠.
사실 우리 역사상 조선시대는 특이한 케이스고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모두 철저한
국익을 위해 실리를 얻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고구려는 국경이 중국 대륙과 접하고 있어서
중국 대륙 세력의 움직임에 항상 촉각을 세웠죠. 중국 대륙은 북방 유목 민족과 한족과의
전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고구려는 말을 잘 다루는 북방 유목 민족과 손잡고
통일된 중국의 수나라를 견제했고 당과 전쟁할 때도 당나라의 북쪽 돌궐이나 서쪽 토번(티벳)
과 공작해서 당나라 땅을 치게 함으로써 고구려 땅에서 당나라 군대가 물러나게 하는 전략을
썼죠.
그리고 중국 대륙과 전쟁할 때는, 후방인 백제나 신라가 고구려를 치지 못하게 먼저 손을 써 놓고
전쟁에 돌입했었습니다.
항상 상대국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테나를 세우고 주시했던 고구려이기에 700~800년을 갔던
거고요, 신라도 방법이 야비했든 어쨌든 혼자선 고구려, 백제에 안 되니까 거대한 당 제국 군대
를 끌어들여 백제를 치고 다음에 고구려를 쳐서 결국 생존에 성공한 것이고요.
고구려 멸망 후에 당나라가 한반도를 집어삼키려 했는데 운이 좋게도 서쪽의 토번이 당나라의
실크로드를 칩니다. 그래서 신라가 당나라가 토번 때문에 정신없는 상황을 이용해 나당전쟁을 벌여서
대동강 이남 땅을 회복한 거고요.
고구려는 이 때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갈라져서 장남이 당의 첩자처럼 되어서 멸망한 것이지,
내분이 없었다면 이 때도 이겨냈을 것입니다.
고려도 항상 철저한 국익 위주의 실리 외교였죠. 거란이 쇠해 간다 싶으니까 거란이 도와 달라 해도
새로 일어나는 강성한 금나라(여진)과 굳이 전쟁 벌이지 않고 송나라와도 그 때 그 때 실익에 따라
국교를 했다가 끊었다가 합니다.
원제국과 벌인 전쟁은 그 당시 유럽까지 정복한 강력한 국가였기에 불가피하게 이길 수는 없었고
그 와중에서도 실익을 챙겨서 유일하게 왕조와 국가를 유지하죠.
조선처럼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파악하지 못하고 앉아서 당한 임진왜란 같은 전쟁, 그리고
현명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병자호란 같은 전쟁은 고구려나 고려에는 없었습니다.
조선의 정치가들이 명분 위주로 현실 파악 못하고 멍청해서 일어난 전쟁이죠.
조선이 다른 장점도 있긴 하지만 외교나 무역에서는 고구려, 신라, 고려보다 퇴보해서 결국
그 일제강점기도 맞게 된 것이고요.
망한 나라의 사고방식을 따를 필요는 없잖아요. 외교도 철저한 국익 위주로 상대방을 꿰뚫어보고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대비가 충분하지 못해서 우리나라 민간 기업과 경제에 피해를 줬고요.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일본과 작업을 해서 외교적으로 해결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고
일본과 외교적으로 해결 노력해 보고 안 통했다면 준비와 대비를 했었어야 합니다.
어쨌든 이미 사태는 벌어졌으니 가장 현명하고 전략적인 카드를 썼으면 합니다.
올림픽 방사능 문제도 좋고 일본의 모든 농수산물과 식품 100% 수입금지도 좋습니다.
국민 건강 차원에서라도 진작에 100% 수입금지 했었어야 하고요.
이 참에 경제도 일본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무역 적자를 개선하고 일본 반도체 부품을 도산시키는
방향으로 가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