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참 좋은 사람이죠. 객관적으로 남들도 다 인정하는 선한 사람이예요,
화도 잘 안내고 항상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요.
거기다가 술 담배도 안하고 본인 몸관리도 알아서 잘합니다.
와이프와 아이들에게도 겉으로는온화하게 좋게 얘기해요.
그런데 부부가 이십년을 같이 살면서 뜻이 항상 같을 수는 없기에
의견 충돌이 생길때 제가 조금만 목소리가 커지면 남편은 바로 자리를 회피해버려요.
그래서 어떤 얘기거리가 있는데 논쟁이 되겠다 싶으면 다른 얘기로 갑자기 화제를 돌려버려요
신혼초에는 제가 울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니까 듣기가 싫었는지 짜증을 내더라구요.
여하튼 제가 울거나 애들이 우는건 딱 질색합니다.
가족의 마음이 힘들고 슬픈건 이해도 공감도 못해요.
결혼 초기부터 이런 일을 겪다보니 저도 남편앞에서는 힘든것을 내색하지
않게 됐어요.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면 해결해준답시고 애들한테 잔소리를하기도 해요.
잔소리도 타이밍이 있는 건데 뜬금없이 가서 자기 할 말만 해요.
그러니 점점 조금이라도 심각한 일은 말을 안하게 되고 우리가 주고 받는 얘기들은
일상 잡다한 얘기들뿐이예요. 솔직히 그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 저는 공허할 때가 있어요. 왜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너무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그것도 끝에는 허무하다는 걸 경험했거든요.
사실 남편과 속마음 털어놓기를 안해도 됩니다.
문제는 남편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남편은 각자 바쁜 와중에도 일상을
공유하기를 원해요. 자기 얘기는 제가 들어줘야 해요. 별 중요하지도 재밌지도 않은 이야기예요.
저도 듣기만 하면 입닫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이얘기 저얘기 해요.
그럼 제 얘긴 듣는둥 마는둥 하고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려요,
쓰다보니 극한 직업이네요ㅜ
며칠전에 제가 무슨 일때문에 살짝 언성이 높아졌는데
정말 몇개월을 참다가 얘기한거였어요.
근데 왜 화를 내냐며 삐져서 지금껏 말을 안하네요.
왜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해요.
화를 냈다는 것에만 촛점이 가있어요.
차라리 허심탄회하게 얘기라도 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 부부는 남들이 봤을때 잉꼬 부부예요.
그런데 건강한 부부가 아닌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