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생도 있을까요?
신세타령이 될 수도 있는데, 길고 고달프고 어려운 이야기 싫어하시는 분들은 pass
한바탕 한국을 흔들고 지나갔지만, 미투 빚투를 보면서, 생각보다 한국이란 세상 참 더럽고 저열하고도 저마다 살아가는 속사정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었구나 하면서도 한 편, 나의 경우를 반추하니 과연 이런 인생이 있을 수 있을까? 싶으리만치 험난했던 지난 일들이스쳐갑니다.
빚투...그것도 빚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를 여러 가지 채권과 채무가 맘을 무겁게 하네요
한 편으로는 채권이고, 그 채권들 때문에 제가 여기저기 빚을 지게 되어 채무를 가졌으니, 나 역시 돌팔매 맞을 수도 있는 채무자이죠.채권이라 해서 별다른 차용증이나 약정서도 아니고, 그저 떼인 돈입니다.
여기서 채무는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에게 그것도 가장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사람인 엄마, 그리고 그나마 형제 중 가장 베푸는 편이고 경제력이 있지만 손 아래인 동생에게 결과적으로 몹쓸 짓 한 셈이네요. 언제고 모든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기다림으로 ‘갚겠다.’는 약속만 한 채로 결국 그 토록 가난한-엄마의 쌈짓돈을 약탈 아닌 약탈만 한 채로 엄마는 돌아가셨고(최근), 가족에게 빚을 갚을 희망은 아직은~ 보이지 않고요.
아주 오래 전, 강산이 두 번여 바뀌는 시간...도 전에~
일주일에 한 번 클래스(자격증은 아닌)를 다니기 위해 지방에서 왕복 10여 시간,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 곧 상경해서 시작한 서울생활...
그 때 서울의 위용, 그 클래스가 이뤄지던 서울의 어느 지역에서 받은 정신적 감흥과 직업에 대한 환상은 곧 고난의 현실로 가는 문과도 같았습니다,
그 클래스를 다닐 수 있는 하루를 재량으로 빼주는 job을 구하기 위해 (그때가 97년 겨울 난리가 난 때)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한 일이 보습학원이었습니다. 중등 수업을 맡고 3개월... 첫 달부터 임금이 나오질 않았는데, 원장이 다음 주, 다음 주 이리 미루는 게 3개월이었는데, 설마? 시한이 다됐을 때 원장은 이미 폐업을 하고 도망갔더군요. 학원 난방을 위한 기름값, 식당 등에 수북히 외상을 지어놓았고 뒤늦게 찾아갔을 때에는 줄행랑...
사회 처음 나와 3개월 월급을 고스란히 떼이는 체험을 하고, 이 경험은 훗날 돌이켜보니 아마 시작에 불과했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가끔 아주 오래 전 드라마 [서울의 달]을 떠올리곤 합니다. 중졸도 아닌 중학 중퇴, 제비였던 홍식이 그리고 홍식이에게 사기를 당했으면서도, 홍식의 친구로 남아 달동네에서 온갖 동네 머슴 혹은 해결사같은 역할을 하던- 배역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최민식 그리고...영숙이로 분했던 채시라....그 드라마를 보지 말걸 그랬습니다.
그건 저의 이야기와 어떤 부분 닮아있으니까요.
설마 제가 홍식이였겠습니까?
그래도 배웠고( 제 수준에서^^), 시골출신은 아닌데(지방사람을 서울에선 무조건 시골이라하더군요) 최민식만큼이나 세상 물정은 모른 채로, 최민식만큼은 바보는 아니었는데 어딜가나 온갖 뒷처리는 다하고 다니고,
영숙이처럼 홀어머니를 모시는 실질적인 가장은 아니지만( 오히려 의식의 복록의 혜택은 받고 자란 ), 영숙이만큼이나
희한하게도 홍식이 같은 사람에게 속고...또 속고... .....
어렵게 어렵게 간신히 기회를 잡은 일은 직장이 아닌 프리랜서로 이어지는 job이었는데 제가 선택한 분야는 일을 시켜주는 기회,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대단히 좁은 문이었을 정도로 (97-8년 이라는 시기적 특성도 한 몫) 돈을 받지 않고 경력을 쌓을 수만 있다면...하고 줄을 서는 이가 고속도로를 가득 메울 정도까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요즘같이 부당함이나 부조리함을 그나마 분출할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아니었고, 갑질이라는 개념조차 형성되지 못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이 속수무책 당하는 문제 많은 집단이네요.
지금 생각하면, 마치 앞에 절벽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어떤 행렬, 흐름에 따라 맹렬하게 뛰어내려 자살하는 레밍떼, 허황된 불빛에 투신하는 불나방떼들. 그 분야가 그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분야는 피리 부는 사나이, 혹은 대가, 그런데 알고보면 거대한 사기 집단속에 사기꾼이 득실득실해대는 곳이었습니다.
누굴 바라봐야 할지, 누굴 믿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 채 겨우겨우 생계 그 하나가 목적이 되어가더군요.
왜~늘 나는 인생이 그리 힘들었을까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생의 비밀이 인생에 있는 걸까요?
가는 곳마다 임금체불의 연속(엄밀히 직장이 아니므로 페이 개념인데 늘 돈 앞에서 쉬이 사람들은 인격과 최소한의 상도의도 저버리더군요)이었습니다.
아니면, 그들에게 한참 후배될 처지의 초짜들이겠지만 그래도 열정과 식견은 높은 이들에게, 열정페이나 자신의 수족처럼 사람을 부리고 지배하려는 층층시하의 위계 속에서 선배들의 행각 때문에 더 앞날이 캄캄했을지 모르겠군요,
기회를 준다는 선배들의 행각 때문에 더 상처를 많이 받는데, 그 당시 한참 후배들의 페이인 50-60만원 선의, 극빈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후배들에게도 그마저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갈취를 해가더군요.
일을 하게 해 준 데 대한 세금(? 명목이랄까, 뭐 우습기도 하네요) 거의 60%를 상납식으로 먼저 제하고 쥐어 준 얄팍한
봉투...(난 왜 그 봉투를 돌려주지 못했을까요?참 저도 이해가 되질 않아요. 그때의 내가)
혹은 개처럼 부리고 이리 저리 흠집을 내거나 누구 책임이 아닌 사고의 책임을 그 한참 후배에게 돌려 모욕줘서 해고시키고, 임금 안주고...
(그런 이들이 시간이 흘러 어찌 , 정상의 자리에 오르거나 어디 어디 자리 자리는 잡아 대중매체 등에 버젓이 등장하는 거 보면 속으로 폭소나 나올 법하지만 참 씁쓸했어요.)
-가장 나쁜 기질은 선배에게서 배웁니다. 정말 악은 학습되더군요.
기이한 풍토입니다. [서울의 달]과 그 달동네의 인간 군상들이 더 자주 떠오릅니다.
그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절엔 백윤식이 분한 미술 선생님의 케릭터 정도만 얼핏 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드라마가
참 90년대 초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어질, 인생의 꿈이란 걸 알게 해줬던 서울이라는 곳에서 결국 도시빈민으로 남은 이들의 비애와 페이소스를 그려냈구나 하고 절절하게 느낍니다.
그래도 어딘가에 나를 끌어 주고, 사회의 아버지, 사회의 엄마같은 이들과 배우고 끌어가며 내가 그 대를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패기, 믿음과 인간에 대한 그리움은 갈취나 노동착취, 열정페이 속에 그렇게 곧 배신과 불신으로 되돌려받았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현실, 그것도 나의 현실이라고요?
그 길에서 ...저마다 생존방식이 있어 많은 이가 어떤 식으로든 '어떤 관계'로, 남자들은 '거래'라는 이름으로 어느 사회에서나 성이나 돈이 암묵적으로 거래된다는 걸 체득했어요. 미투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몇몇 불온한 미투들을 보자니, 어떤 부분 여자라는 종의 특성에 탄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저만 운이 없고 인덕이 없어서 일 수도 있고요. 가난이 아픈 건 극복할 자신이 있었는데, 가난한 ...정말 마음이 가난하고 가난한 처지가 나쁜 습성으로 자리해 독하고 동정심을 유발해서 이용하는 부류도 이제는 알게 됐습니다,
또한 약자라고 절대 착한 거 아니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착하거나 양보하는 미덕이 있거나 하면, 또 겸양과 겸손이 있다면 오히려 역으로 더 이용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눈물 젖은 50-60만원대를 겪고도 조금이라도 성장하게 되니 이제는 나는 베풀어야 하는 위치가 되어버리지만, 한 편으로는 나는 여전히 위에선 착취인~ 그 속앓는 사정을 말할 수 없어 저는 겉만 번듯하지만 내실은 없어 늘 남루하고 고달파졌습니다. 일이나 관계에서 나는 그런 선배들처럼 살 수 없어서였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기세가 좋을 때는 또 일사천리로 되어가는 일이 사람에게, 관계에 타격을 받을 때 나라는 사람은 동일인인데도 극단적으로 곤두박칠치더군요.
그러니까 장미란처럼 역기도 들던 사람이 갑자기 삽 하나도 들지 못하고, 무능력자가 되어버리고...
내가 속한 집단에선 어떤 순간 기대주가 되었다가 폭탄돌리기 같은 일만 내게 오고, 폭탄 해제반은또 나의 몫...일은 해도 해도 책임만 많고, 빚이란 걸 지지 않으려 해도 빚은 어느 새 생기고, 악순환이 되어갔습니다.
[가난에는 이자가 따른다] 아마 도시빈민자들의 요약이겠네요~
하도 힘들어 운명론에도 기울고 또 숙명론까지로 , 그리고 때로는 사주 운명, 혹은 영혼을 읽는 이들에게도 의존하기도 했는데...모르겠습니다. 살아도 살아도 저만 사는게 그리 힘들었을까요?
이해할 수 없는 운명, 신의 섭리라는 게 있는 걸까요?
그렇다해서, 인생이 다 암흑의 터널만은 아니었습니다.
주변의 거의 대부분에게서 경련 수준의 인간 혐오에 시달리다가도 가족이 그래도 절 지켜주거나,
인생을 나누고, 가족같은 애정을 준 소수의 친구들은 꼭 시기마다 있어왔으니까요.
지금은 내가 떠나오거나 그들이 떠나거나 하긴 했지만... ...
보통...의 사람이면 극단적인 결심을 할 법할 법한 몇번의 위기를 겪은 이후( 절대 과장은 아니라 자신해요^^)
인생의 어떤 경계를 넘어,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베일에 가려진 인간의 운명이나 섭리를 한 번은 체험한 이후
(불교 수행자로 나의 고통을 신적 존재가 다독여주는 느낌) 어줍잖게 몇 번 여기에 댓글로 조언도 해주고 했는데, 정작 저 자신은 마음의 울화나 분노가 가끔 마음 깊은 곳에서 제어할 수 없이 솟구치기도 해요...
그래서 그냥 한 번 써봤어요.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저건 또 하나의 판타지라고 냉소를 하긴 했지만, 또 한 편 살짝 희망도 고개를 들더군요.
나도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갈 수 있을까?하고...요
아무래도 [서울과 달]과 [나의 아저씨] ...둘 다 드라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