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44
<버스 44>
중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팩트)을 영화화한 초 단편(10분) 영화이고, 필자가 그 영화를 직접 본 것이 아니고, 한 2~3년 전쯤 경향신문에 그 영화 내용을 소재로 한 칼럼을 읽은 것입니다.
중국의 산간 촌락을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있었습니다.
그 버스의 운전기사는 미모의 젊은 여성이고 운전기사를 포함 41명을 태우고 운행하다 어느 산간에서 손을 드는 남성승객 1명을 태우고 얼마만큼 가다 다시 손을 드는 남자승객 3명을 태워 버스 안에는 4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만큼 가서 으슥한 골짜기에 접어들자 맨 마지막으로 탔던 남성승객 3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무슨 신호를 주고받더니 버스를 강세로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미모의 버스운전기사를 막무가내로 끌어내려 숲속으로 끌고 들어가 3명이 교대로 성폭행을 자행했습니다.
그때 버스 안의 40명 승객은 내 일이 아니니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었으나, 성폭행 범 3명에 앞서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탔던 남성 1명이 숲속으로 달려가서 운전기사를 구출하려 했으나 역부족으로 오히려 그들 3명에게 폭행을 당하여 중상을 입어 위급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버스안의 승객 40명 중 5~10명 정도만 한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았으면 성폭행도 막고 그들 3명을 끈으로 묶든가 포대자루에 담아서라도 공안당국에 인계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성1명을 제외한 40명의 승객은 내 일이 아니니 강 건너 불 보듯 하며 <먼 산 바라보기>였습니다.
폭행범 3명이 더러운 야욕을 채우고 침을 흘리며 버스에 다시 탔고,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여성운전기사와 절룩거리는 남성 1명이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천만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성 운전기사가 자신을 도우려다 중상을 입어 치료가 시급한 남성을 내리라고 하며 그 남성이 안 내리면 버스를 운행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버스에서 먼 산 바라보기를 하고 있던 40명의 승객이 빨리 가고 싶은 생각으로 하나 같이 중상을 입은 남성승객을 빨리 내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여성 1명이 인생을 포기할 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는 모르쇠 하던 승객 40명이 버스시간 조금 지체되는 것에는 하나 같이 힘과 뜻을 같이 한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중상당한 남성 1명이 내리자 버스는 출발하였고 한참 뒤에 온 다음 버스를 타고 중상당한 남성이 목적지이자 종점인 도시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헌데 종점의 버스회사와 조그만 도시전체가 발칵 뒤집혀 있었습니다.
앞선 버스가 산간 절벽에서 밑으로 굴러 떨어져 운전기사를 포함 승객 44명이 몰살을 당하여 도시 전체와 버스회사가 발칵 뒤집혀 있었습니다.
<영화와 얘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우리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고 내 잇속만 차리려다가는 저런 버스의 승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45명을 태우고 산간벽지로 들어가는 버스는 아닌지?
얘기를 살짝 바꿔서
문재인이라는 운전기사가 한국국민 5천만 중 41.1%의 승객을 태우고 출발을 했습니다.
그 41.1%의 승객들 가족 중 투표권이 없는 어린자녀들을 포함하면 실제로는 50%를 조금 넘는 승객을 태우고 출발을 한 것입니다.
조금 가서 어두운 산길로 접어들자 41.1%의 승객들이 촛불을 켜 들고 앞길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가자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 일장기를 가슴속에 감추고 있는 사람들이 버스의 앞길을 막고 나섰습니다.
아직은 느리기는 하지만 버스가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극기부대, 엄마부대, 일장기를 감추고 있는 친일매국노 떨거지들이 버스를 세우라고 아우성이어서 버스가 제대로 달릴 수가 없습니다.
잘못하면 5천만이 버스44의 승객의 운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국민여러분!
어찌하시렵니까?
아직은 촛불을 고이 모셔 둘 때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