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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시경 - 생각이 많아졌어요...

내시경 조회수 : 4,946
작성일 : 2019-01-29 01:05:23

건강 검진을 하러 갔습니다.

 

위 내시경은 저에게 고난입니다.

몇 번을 했음에도 너무 힘들어 조형술도 해 보았지만, 그 역시 다신 못 할 검사였습니다.

 

수면 내시경으로 하기로 했는데, 수면용 주사를 맞고 '영원히 잔다.'는 기사를 가끔 본 게 많이 깨름칙했어요.

제 체질은 부작용 약물이 많아 걱정이 커서 의사와 상담 후 의사가 비수면으로 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안 되겠냐는 제 말에 의사는 자기가 부담을 덜 수 있는 '반수면(?) 검사'로 하자고 하더라고요.

보고 듣고 다 하지만, 정신이 몽롱해 고통은 없는 게 반수면 검사래요.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검사 준비를 했습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휴대전화 녹음을 하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하더라고요.

팔목에 차고 있는 탈의실 수납장 번호 열쇠도 사진으로 찍어뒀고요.

 

---

 

간호사가 회복실에 들어와 한 시간 가량 잤다고 이제 괜찮으면 귀가하래요.

몸이 노곤하여 좀 더 쉬겠다고 했더니 간호사가 의사 설명 들었느냐고 묻더라고요.

자느라고 못 들었다고 했더니, 의사 퇴근 전에 들으라고 일어나래요.

(내시경 의사는 오전에만 근무해요.)

그런데 다른 간호사가 오더니 아까 설명 듣고 다시 잔 거라고 하는데.

기억에 전혀 없었어요.

그럼 다시 설명해주겠다고 의사한테 안내를 해주더라고요.

 

의사 - 아까 말했듯이 특별한 이상은 없어요. 다만....

 

나 - 아까 설명 못 들었어요.

 

의사 - 아까 설명 다 했는데, 기억에 없네요.

 

나 - ... ...

 

의사 - 지금 설명하는 것도 또 기억 안 날 수 있어요.

 

.............................................

 

정말 기억에 전혀 없었어요.

수면 내시경도 아니고, 보고 듣고 다 할 수 있는 반수면이라는데 기억에 전혀 없어요.

기억이 안 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자체에 없어요.

 

대충 정신을 차려 수납을 하고 집에 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병원에서의 일은 정말 까마득하더라고요.

--------------------------------------

   

내 의식이 내 몸을 컨트롤하지 못할 때가 딱 이런 상황일 거라고 생각하니 겁이 나더라고요.

내가 정신을 놓고, 내 행동을 제어하지 못할 때 나의 본성이 드러나는 것이 겁이 났어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들을 말할 수 있고, 상스러운 말을 할 수도 있고,

폭력을 할 수도 있고,

본능에 충실한(?) 수치스러운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득해지더라고요.

 

약물로 인한, 혹은 병으로 인한 통제 불능의 상황은 인간이 살면서 가장 슬픈 일일 거 같아요.

오히려 본능에 충실해져서 당사자가 행복한 상황일 거라는 글도 읽었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에요.

 

정신은 또렷한데, 몸을 못 움직여 기본적인 위생처리마저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하는 수치감도,

신체 기능은 정상인데(?), 정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도

나에게는 용납이 안 돼요.

 

내가 용납하고 말고는 아니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내 신변 처리는 내 손으로, 

내 정신과 몸이 한 날 한 시에 같이 수명이 다 하길 바랄 뿐이에요.

 

 

고작,

위 내시경 한 번에 이런 씁쓸한 민낯의 나를 보게 됨을 감사해야 할까?

평소에 건강한 생각과 바른 행동으로 나를 무장해 두어야,

행여나, 행여나,

만약의 상황에서의 내 민낯은 나를, 내 주변을 혼돈에 빠뜨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평소 언행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네요.

IP : 175.114.xxx.37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ㄷㅇㄷ
    '19.1.29 1:08 AM (49.170.xxx.40) - 삭제된댓글

    헐 무슨 종양이라도 발견된줄알았는데..내용이..

  • 2. ..
    '19.1.29 1:10 AM (222.237.xxx.88)

    정말 생각이 많아지는 글이네요.

  • 3.
    '19.1.29 1:14 AM (125.252.xxx.13)

    그병원 좋네요
    제가받은 병원은 내시경 끝나자마자 (10분쯤)
    바로 일어나라고 해서
    힘들어서 누워있겠다고 했더니
    지금 일어나야 안힘들다며
    매몰차게 정신차리고 정 힘들면 소파에 앉아있으라고 ㅠ
    그래서 그런지 바로 정신이 버뜩

  • 4. 죽음부분
    '19.1.29 1:25 AM (110.70.xxx.3)

    완전 공감해요...


    근데 위내시경꼭 해야하나요?
    전 한번도 안했는데..

  • 5. ..
    '19.1.29 1:26 AM (73.195.xxx.124) - 삭제된댓글

    마취하면서 휴대전화 녹음하기로 하셨잖아요?

  • 6. ...
    '19.1.29 2:45 AM (72.226.xxx.88) - 삭제된댓글

    휴대전화 녹음한 건 들어보셨나요? 녹음한 것 들어보면 내 상태가 어땠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잖아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심한 짓을 하는 건 그런 사람만 그러는 거 아닐까요. 민망한 상황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요.

  • 7. 내시경 받고
    '19.1.29 2:46 AM (42.147.xxx.246)

    수면 , 비수면, 다 해 본 사람으로
    수면으로 하면
    깨어 났을 때 의사가 아무말 안하고 간호원이 침대가 있는 휴게실로 데리고 가서 한시간 정도 자게 둡니다.

    그리고 나서 설명을 들어요.그 설명 기억에 잘나고 정신 멀쩡하고
    병원에서 집이 가까워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병원에 따라 좀 다른 것 같네요.

  • 8. 마취 안되서 놀람
    '19.1.29 5:29 AM (121.175.xxx.200) - 삭제된댓글

    미다졸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는 분명 몸무게 제대로 적었는데도, 일어난 기억은 있는데 집에 온 기억이 없어요. 옆집 아줌마한테 눈풀린 상태로 인사를 했다는데...기억이 하나도 안나요.
    다른대학병원에서 처음이라 긴장하기도 했지만, 시간까지 기억..3분만에 깨서 다 느끼면서 했어요. 그래서
    미다졸람이 얼마나 용량따라 다른지, 이게 증상이 랜덤인지 깨닫고는 앞으로는 무조건 비수면으로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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