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고 사무실 돌아와 보니 이상한 문자가 와 있네요.
모르는 전번인데 오랫동안 궁금했었다는 스팸 같은 내용 끝에 이름을 보니 옛 남친....
안 좋은 쪽으로 지지고 볶았고, 잠수 이별 이후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헤어졌던 아주 불쾌한 기억만 있습니다.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연락이 안되니, 저만 전전긍긍. 영화표까지 다 사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펑크를 내놓고도 오히려 자기가 화를 내던 더런 놈이었어요.
직장에 취직하고 나서는 이 핑계 저 핑계 다 대고 연락이 안 되었고요, 지친 저는 아예 연락도 안 했습니다. 그게 20-30년 전 이별 방식이었네요.
대놓고 독신주의자라더니 몇년 후 속도위반으로 결혼했다는 소문만 바람결에 들었어요.
일은 잘했던 모양인지 모 대기업 이사까지 승승장구했단 것은 뉴스에서 봤습니다.
하도 이 남자에게 데여서 연애는 다시 안 하리라 생각했던 저도 비교도 안 되게 좋은 남자 만나 적어도 찌질함 때문에 싸우는 일 없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은하계 너머 기억이라 생각했던 이 왕재수덩어리가 뜬금없이 왜 연락했나, 혹시 늙마에 보험이라도 하나,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나 하는 생각 땜에 점심이 소화불량되는 기분이군요.
그러고 보니 다음달에 총동문회가 있다는 것을 깜박했습니다. 저야 어차피 다른 지방에 살고, 일이 바빠서 못 가는데 이 인간이 혹시 내가 나타날까봐 조금 찔끔했나 봅니다. 워낙 치사한 방법으로 헤어졌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건 1도 없었는데 지도 그걸 아니까 저러는 건지. 그러든지 말든지 연락은 안 할 거구요, 누가 안부 전한다 해도 쿨하게 넘기렵니다.
오늘 집에 가면 딸에게 다시 한번 형편없는 남자 감별법을 알려줘야겠습니다. 몇십년이 지나 후회하지 않으려면 쓰레기라는 것을 감지했을 때 미리 털어버려야 한다고요. 상대방이 아무리 좋은 학벌에, 있는 집안에, 번듯한 외모에, 화려한 언변에, 좋은 사교술을 갖추었더라도 연애과정 중 몇번의 신호가 그 인간의 본질을 말해준다고 말이죠.
지금 혹시 이런 관계 속에 갇힌 분이라면 후회 말고 던져버리세요. 좀 있다 사이다나 사러 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