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오늘 있었던 최고의 순간

늙은 새댁 조회수 : 3,015
작성일 : 2018-11-03 20:45:38

나이 꽤 들어서 결혼했고 그리고 나서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엄마가 되는 일은 영 마음이 열리지 않아 항상 새댁처럼 살고 있어요.

덕분에 어머님도 여전히 저를 '애기'라고 부르시죠.

낼 모레 쉰이라 아마 저는 평생 애기일 것 같아요.


남편이나 저나 일이 많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버는 돈은 머 그닥.

시간은 더욱 더 그닥. 그러다 보니 맘의 여유도 없어서 서울에 사시는 양가 부모님 모두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뵙는 수준으로 자식 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2에 자랑했다가 진짜 훌륭한 어머님 맞다고 박수 받으신 저희 어머님은

세상에 다시 없는 며느리인 것처럼 분에 넘치는 사랑과 배려를 제게 베풀어주십니다.

오늘은 명절에 다녀오고 김치 가지러 오라는 말씀에 겨우 시간 내서 시댁에 갔습니다.

시댁 근처 명승지에 가서 잠시 함께 산책이라도 하는 것으로 조금 더 마음을 낸 저희 부부에게

좋은 구경 시켜줘서 고맙다 하시고 식사 대접해드리니 '애기 너는 먹어보지 않고 시켜도

어쩌면 이렇게 맛있는 것만 시켜주느냐' 제 평생 가장 과분한 칭찬을 안겨주시더라구요.


오늘 있었던 가장 좋은 순간은 잠시 다리 쉬느라 앉아있다가 뒷문으로 슬쩍 나가

자판기 커피와 군밤을 사갖고 들어가서 나누어먹던 시간이었어요. 남편은 뭐 용모도 곰돌이

생각도 곰돌이라 아까부터 커피 한 잔 먹고 싶다는 말에 '그러게... 여기도 자판기 있음 좋은데'

하고 끝이었는데 혹시나 싶어서 뒷문으로 내다보니 자판기가 보여서 살짝 나갔거든요.

나가다가 엄청 맛있는 냄새에 돌아보니 군밤이! 5000원짜리 군밤에 오백원짜리 자판기 커피

두 잔 뽑아서 들고 가서 어른들 먼저 드리고 모자라는 백원 아버님한테 받아나와서 같은 값인데

블랙커피 아까워서 제 건 다방커피로 뽑아서 밤과 커피, 가방 속 생수로 나머지 갈증을 달래던

순간이 오늘 저한테는 제일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 친정부모님이라면 머하러 이런 데 돈을 쓰느냐 하면서 드시는 내내 저를 나무라셨을 거에요.

그런데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하다는 제 말씀에 '누가 나를 이렇게 챙겨주겠냐'시면서 그저

고맙고 고맙다하시니 저도 참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비둘기집같이 조용하던 저희 집에 요새 우환이 좀 많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먹으니 좋은 점은

이런 불행이 일평생 처음이라니 그동안 내가 운이 좋았구나, 복 받은 거였구나 싶기도 하고

이 정도는 내가 이겨낼 깜이 된다 싶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고 싶은 순간도 있어서 오늘 제게 있었던 좋은 시간을 말 없고

속 깊은 친구같은 82에 털어놓고 갑니다. 다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IP : 222.109.xxx.61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8.11.3 8:50 PM (95.160.xxx.215)

    마음이 따뜻해지네요..힘든 일 잘 해결되시길
    바래요..

  • 2. 가족 화목이
    '18.11.3 8:55 PM (211.195.xxx.27)

    최고의 행복입니다

  • 3. 글을
    '18.11.3 9:07 PM (211.248.xxx.92)

    정말 잘 쓰세요.
    잔잔한 수필 읽었네요.

  • 4. 행복해지는 법을
    '18.11.3 9:09 PM (211.247.xxx.95)

    잘 아시는 분이네요.
    사는 동안 어려운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현명하게 잘 이겨 내실 거에요.

  • 5. floral
    '18.11.3 9:12 PM (122.37.xxx.75) - 삭제된댓글

    시어른이 좋은분이시네요.
    작은 배려에도 과하고 넘치는 리액션을..
    부러워요.ㅈ.
    저는 경상도가 시댁이라ㅡㅡ
    표현에 인색하세요. 사이도 그닥~ㅠㅠ

    그런데 님 글 보니
    맘 씀씀이가 예쁜 원글님이 ,어찌보면 어머님보다
    더 좋은성품의 며느리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제 자신도 돌아보고,반성이란것도 하게되네요.

    시어른들의 반응에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왜그리 인색하고,맘뽀를 넓게쓰지 못했는지..
    물론 그분들이 뜻하지않게 제게 준 상처도 있었지만요.

    마음이 훈훈해 지는글 감사합니다

    집안에 닥친 우환또한 아무일도 없었던듯
    잔잔하게 지나가길 바랄게요

  • 6. 넘~~넘~~
    '18.11.3 9:14 PM (45.56.xxx.207)

    부러워요. 저도 요즘 힘든일 있어요. 저도 좋은기운 빌어 잘 이겨나가고 싶네요~~따뜻한 글이었습니다. ~~^^

  • 7. aaa
    '18.11.3 9:19 PM (121.140.xxx.161)

    좋은 분들이 만나 좋은 인연을 맺으셨네요.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환은...이 또한 지나가리라~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길 바랍니다.

  • 8. 오~
    '18.11.3 9:23 PM (125.177.xxx.105)

    서로를 배려해주는 마음이 참 아름답네요
    저도 예쁜말 기분 좋은말 하며 살도록 노력해야겠어요

  • 9. ...
    '18.11.3 10:10 PM (221.151.xxx.109)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느끼네요
    그런 부모님 아래 자란 신랑이라...^^

  • 10. 글이곱다
    '18.11.3 11:31 PM (119.149.xxx.15) - 삭제된댓글

    글이 곱네요^^ 기분 좋아지는 고운 글에서 제 마음도
    더불어 고와지네요

  • 11. 꽃보다생등심
    '18.11.4 8:41 PM (223.62.xxx.215)

    원글님 따뜻한 마음씨가 가득하셔서 앞으로 좋은일 많이 생기실거예요. 글 읽다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네요. 감사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870878 롱패딩이 비싼게 비싼 이유가 있더라구요 11 ㅇㅇ 2018/11/05 11,796
870877 큰 옷 V S 작 은 옷 6 선택은 2018/11/05 1,935
870876 질투 무시 의심 이런 나쁜 감정은 세트메뉴처럼 묶여다니는것 같네.. 2 0-0 2018/11/05 1,525
870875 껌 자주 씹으면 턱관절이 변하나요 2 아카시아 2018/11/05 1,757
870874 남자들 50이후엔 스스로 ㅂㄱ가 잘 안되나요? 18 19 2018/11/05 9,942
870873 논산 근처 맛집 2 군대 2018/11/05 1,479
870872 인천남동체육관 근처 쉴곳 4 진이엄마 2018/11/05 942
870871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3 ..... 2018/11/05 3,699
870870 제빵기 온도가 오븐처럼 높게 조절이 되는거죠 2 쿠킹 2018/11/05 911
870869 난방탠트 세탁 어떻게 하나요? 4 겨울 2018/11/05 1,103
870868 인천 공항에서 뭐하죠? 4 겨울 2018/11/05 2,113
870867 경기도 언론에 쓴 비용이 24억 이랍니다 18 세금 2018/11/05 1,693
870866 "실거래가 절반도 안 되는 공시가격, 주택 투기 부추겨.. 3 보유세 강화.. 2018/11/05 1,225
870865 뉴스룸에 갑질하는 것들 난리네 2018/11/05 856
870864 박원순 서울시장 왜 이러시는지 ??? 8 ... 2018/11/05 2,945
870863 동성애자 스킨쉽 장면 실제 봤는데 71 건강하자 2018/11/05 32,136
870862 강원도 살기좋은 곳, 자랑 좀 해주세요 7 ㅇㅇ 2018/11/05 3,507
870861 5살 기관 꼭 다녀야할까요? 9 .. 2018/11/05 1,771
870860 오십중반 넘으신분들,,어떻게 생활하시나요? 22 sek 2018/11/05 16,514
870859 자주 심장이 두근거린다면. 어떻게 안정시키나요? 8 화병으로 2018/11/05 2,467
870858 캐나다 겨울여행 어떤가요? 4 트윙클 2018/11/05 2,004
870857 맛있는 황태채 추천해주세요 4 사과꽃 2018/11/05 1,472
870856 지금 우울하신 분 이 노래 들어보세요 14 그린빈 2018/11/05 3,818
870855 아버지 치매? 아니면 정서불안일까요? 6 에효 2018/11/05 2,008
870854 저희집 물건 하나씩 달라는 시어머님 심리는 뭘까요? 20 다케시즘 2018/11/05 7,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