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비교하여 미국이 아주 이기적인 문화인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놀랄만큼 이타적인 문화이기도 합니다.
이기적인 문화는 개인생활을 존중하고 개인의 사회적 성취를 우선시하는 가치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이타적인 문화는 기부와 자원봉사주의가 근원입니다.
미국인들은 아주 어렸을때부터 기부와 자원봉사활동을 보고 자랍니다.
저는 미국의 힘이 이 이타적인 문화에 있다고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죄없는 죄수 풀어주기’ 운동은 자원봉사하는 법조인들, 법대교수님들, 직장인들, 주부들, 그리고
대학생들의 힘으로 괄목한 성과를 이룬 시민단체입니다.
그 중에는 법대생들도 있고, 다른 전공을 하는 학생들도 있고,
모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바쁘고 피곤한데도,
기꺼이 일주일에 몇시간씩 투자해서 생판 모르는 수감자들의 빛바랜 재판기록을 샅샅이 검토합니다.
그 와중에 법대생들은 고시를 패스하고, 법조인이 되거나 법대 교수가 되어
계속 이 단체를 후원하고 돕습니다. 기특하고 대견한 사람들입니다.
미국에서는 ‘잘못된 법정 판결’로 무죄인 사람이 중형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사례가 예상보다 너무 많습니다.
역사도 유구합니다.
1924년 한 판사가 ‘믿을수 없는 악몽’이라는 책으로
잘못된 법정 판결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할수 있는지 처음으로 문서화했으니
거의 100년 가까이 지속된 사회적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수사과정에서 형편없이 범죄현장 조사를 했다든지, 수사관들이 비뚫어진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다든지,
재판과정에서 법조인들의 비윤리적 선택을 한다든지, 배심원들이 사용하는 대다수 원칙이 왜곡되면,
잘못된 법정 판결은 언제나 누구한테나 내려질수 있는 어마무시한 악몽입니다.
한 남자가 맥도날드 가게에서 경비원을 살해했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었습니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자신은 살해 사건이 난 장소에 아예 있지도 않았고
그 시각에는 집에서 자고 있었다고 강력하게 기소된 살인사건을 부인합니다.
법정에서 그의 어머니와 남동생이 그 시간에 집에서 자고 있었다고 일관되게 증언하지만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 받습니다.
두 명의 중년 변호사가 있습니다. 이 둘은 그 남자가 처음부터 결백함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변호하고 있던 다른 살인범이 맥도날드에서 경비원을 총으로 쏴서 살해했다고 자백했기 때문입니다.
이 변호사들은 오직 두 가지 선택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들의 의뢰인, 맥도날드 살인사건의 진범을 고발하면 됩니다.
여기에는 치명적인 댓가가 있습니다.
미국법에는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의 “비밀보장원리”에 의해 의뢰인 스스로가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경우,
의뢰인이 공유한 비밀을 변호사가 폭로하면 비밀보장원리 위반으로 변호사 자격을 잃게 됩니다.
지난 세월 비싼 법대 등록금내고 공부해서, 어려운 고시 공부해서 합격하고,
변호사 개업해서, 가족 부양해야 하고, 사무실 직원들과 그 식구들도 먹여 살려야 하고,
무엇보다도 중년의 나이에 한평생 해왔던 멀쩡한 법조계일을 던져버리고 다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 모든것이 듣도보도 못한 한 남자를 위해 겪어야 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번거롭기 짝이 없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다른 하나의 선택은 침묵입니다. 아무말 없이 가만히 있으면 번거로울 일도 손해 볼 일도 없습니다.
여기에도 치명적인 댓가가 있습니다.
억울하게 무기징역을 받은 그 남자는 평생 감옥에서 살다 죽게 될것입니다,
자기가 짓지도 않은 죄값 치르느라.
여러분이 이 두 명의 변호사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어떤 선택을 하셨든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변호사들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덕분에 그 억울한 남자는 28세에 감옥에 들어가 54세에 무죄를 선고받고 집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 사이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남동생은 자살을 했고, 남은 건 소송비로 쓴 가족이 남겨 놓은 빚밖에 없었습니다.
왜 26년이냐구요?
그 변호사들의 의뢰인은 다른 살인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무기징역형을 살고 있었는데,
그 죄없는 남자가 감옥살이를 26년째 하던 해에 감옥에서 자연사를 했습니다.
의뢰인이 사망하면 비밀보장원리를 지킬 상대가 사라지기에 그 어떤 비밀도 폭로할수 있답니다,
아무 책임질일 없이. 의뢰인 사망신고가 끝나자 마자
방화봉투에 넣어 방화금고에 26년간 고이고이 간직해 두었던 자백증거들을 법정에 제출합니다.
그 억울한 남자는 연방법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합니다.
그 소송중에 밝혀진 또 다른 사실은 그 남자가 억울하게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직후,
맥도날드 가게 주변에서 탄피가 발견되어 경찰에 보고 되었는데,
그 탄피가 변호인 둘의 의뢰인이 사용한 탄알과 일치한다는 것을 경찰은 그때 알아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경찰들 역시 침묵했습니다.
만약 발견된 탄피를 증거 자료로 제시하면
부실수사로 인한 징계나 승진누락같은 불이익을 피하기 어려울것 같아서..
내가 짓지도 않은 죄로 26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면 어떤 느낌일까요…
돈으로 보상될까요? 만약 된다면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까요…
그 남자는 민사소송에서 110억을 받습니다. 빚갚고 변호사 수임료 주고나니 수중에 55억정도가 남았습니다.
현재 그 남자는 그 돈으로 멋진 인생을 사는게 아니라, 심각한 우울증 치료를 받는데 쓰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낸 혈세로 치뤄진 110억이 그렇게 쓰이고 있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침묵을 지킨 두 변호사들과 경찰들... 그들의 침묵은 법률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직업적 윤리 문제에서는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나는 그 두 변호사와 경찰이 얼마나 옳지 않은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따져보기 전에,
그저 살면서 그들이 처했던 딜레마에 빠지는 일이 없기만을 기도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저는 법조인(특히 이혼변호사)와 의뢰인은 연애해서는 안되고, 교육자와 학생은 연애해서는 안되고,
정신과 의사같은 심리상담치료를 제공하는 사람은 환자와 연애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이런 특수 관계에서의 연애 혹은 결혼은 직업 윤리 위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해관계충돌”이라고 표현되는 아주 기본적 직업 윤리 의식이 보다 철저하게 훈련되어,
선생님인 아빠가 같은 학교 다니는 자식에게 몰래 시험문제를 빼다주고,
교수가 학생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할 연구비를 가로채고,
기자가 접대를 받고 특정 세력을 비호하는 기사를 쓰는,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래전 미국시민으로 귀화할때 법정에서 시민귀화선서식을 주관했던 미국 판사님의 환영사는 아직도 기억납니다.
“여러분, 오늘 미국시민이 되신것을 축하하고 또 환영합니다.
이 나라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월등한 나라여서, 그런 좋은 나라의 시민이 되었다고
축하하고 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나라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체계가 그나마 공정하게 세워져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고, 더 발전시켜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미국시민으로서 문제 해결과 발전을 위해 한 몫을 담당해 주시기 바랍니다.”
‘죄없는 죄수 풀어주기’ 운동은 25주년을 맞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법률체계의 대대적인 보수와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과제가 달성될수 있도록 한 몫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직업윤리의식을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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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