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부터 <관함식>을 이렇게 할 것을 해군에 제안한다.
<관함식>
필자가 세계역사나 전사에 밝지 못해 <관함식>을 인터넷사전에서 찾아 봤더니 특별한 의식의 방법이나 이를 거행하는 년도의 터울은 특정되지 않은 것 같았다.
동양의 왜와 마찬가지로 중세 유럽의 해적국가나 다름없었던 영국인가 어디서 14세기쯤에 국가원수가 해군을 사열하는 행사를 처음으로 한 것을 본떠 오늘날에는 세계 각 나라가 그 나라 국가원수가 그 나라의 해군을 사열하는 행사로 10년 정도의 터울을 같고 벌이는 행사 같았다.
쉽게 얘기해서 “까불면 죽여!”하는 그 나라 해군의 위용을 과시하는 행사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과거에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이번 관함식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관함식을 방해하고 폄하하기 위해 발악을 한 것이 바로 왜의 욱일기 사건이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박근혜가 청와대에 있을 때 관함식이 있었다면 왜-함정에 일장기는 물론 욱일기와 뒈진 히로히또의 사진이 들어 간 깃발을 수도 없이 휘날리며 왜 함정이 참석한다 했어도 “5천만이 열열이 환영한다.”고 하면서 이를 받아 들였을 것이다.
다음 관함식에서도 그 안에 지진으로 왜-열도가 태평양 밑으로 가라앉기 전에는 욱일기 문제로 또 한차례 한국-왜-미국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지 말고 욱일기를 달 던, 욱일승전기를 달 던, 히로히또의 영정사진을 달고 나오던 시비 걸 것 없이 가급적이면 많은 왜함정과 왜해군이 오라고 하라!
그리고 관함식 행사는 반드시 전라도 강진(해남?)과 진도가 마주한 명랑해협에서 실시하라!
<명랑해전>
일명 울돌목 해전
모두 다 아시는 내용이니 길고 자세한 설명은 곁들이지 않겠다.
육지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여 압록강 가 의주까지 쫓겨 갔다 해상에서는 이순신장군이 왜의 퇴로를 차단하고 왜군의 씨를 말리고, 전국에서 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의병들이 구국전선에 나서서 간신히 한양으로 되돌아온 지질이도 못난 왕 선조가 천하의 간신배 원균과 명나라의 2중 간자 그리고 왜의 간자의 속삭임에 속아 이순신을 옥에 가두었다 원균으로서는 도저히 안 되겠으니 염치도 없게 다시 이순신을 흰 옷 입혀 전라도로 내려 보내니, 이순신은 원균이 다 말아먹고 남은 겨우 12척으로 왜선 300여척을 물살이 우는 소리를 내며 흐르는 울돌목으로 밀물과 썰물이 교대하는 정확한 시간대에 맞춰 왜선 300여척을 몰아넣으니 왜는 우리 해군이 아닌 우리의 거센 물살이 300여척을 한 입에 삼켜버린 것이다.
이순신장군과 우리 해군이 한 일이라고는 왜선을 향하여 북과 꽹과리를 치고, 양편 육지에서는 수많은 조선백성이 모여들어 울돌목 바다 밑으로 가라앉힌 철사-ㅅ줄을 당긴 것이 고작이었다.
썰물이 다 빠져나고 바닷물이 잠시 잠잠해지자 울돌목 바다에는 죽어 널브러진 왜구의 송장으로 바닷물이 안 보일 정도였다.
세계해전사의 신화이자 전범이다.
명랑해전이 있고 나서부터는 울돌목의 거센 물소리에 왜구들의 울부짖음이 더 해져 물소리가 더 세어졌고, 남서해안 바닷물고기가 풍성한 먹잇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장군은 그 뒤에 있었던 노량해전에서 순국을 하시었으나, 사실상의 전쟁(임진정유재란)은 명랑해전에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각설하고
다음부터 관함식은 울돌목 해협에서 명랑해전을 재현(퍼포먼스)하는 것으로 고정을 시키시라!
그리고 방식은 명랑해전을 샅샅이 파헤쳐 고증을 해서 명랑해전을 고대로 재현하는 것으로 하라!
우선 큰 해군함정 1척을 거북선모양으로 치장을 한 다음 거북선에 국가원수가 이순신장군의 복장을 하고서 해군의 사열을 받으면 된다.
바다에서는 태극기를 단 12척이, 서남해안 300여척의 어선들을 끌어 모아 일장기를 달아 왜함으로 분장을 시켜 물살에 떠내려가다 배를 가라앉힐 수는 없으니 일장기를 차례대로 뽑아 바닷물에 던지면 될 것이다.
아마 그 다음의 관함식부터는 욱일기가 아니라 히로히또 할애비의 깃발을 달고 참석해 달라고 해도 손-사레를 홰-홰칠 것이다.
위 글의 뜻을 이해하지 못 하시는 분들은 이순신장군과 관련된 역사서를 한 번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