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아세요?
처음 들었을 때 무슨 고어 영화 제목인 줄 알았어요.
말 그대로 살갗의 배고픔이에요.
식욕, 성욕, 수면욕...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로 접촉의 욕구를 상정하면서
나온 용어가 스킨 헝거에요.
접촉 결핍.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아직 시각 청각 미각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촉각에 의한 자극이라고 하네요. 그것에 의해서
원초적으로 사랑받고 보호받는다는 것을 체득한다고 해요.
안겨 있고 업혀 있고, 쓰다듬 당하고, 얼러지고...
이게 부족한 아이들은 아무리 좋은 걸 먹여도
발육부진에 병치레에 심하면 죽는다고 해요.
그래서 전쟁중에 고아들이 많이 생겨서
제대로 애정어린 손을 타지 못한 아이들이 사망률이 높았대요.
이 접촉 결핍이 서구 사회에서 대두된 이유가
특히 영미권에서 대두된 이유가
그들의 문화적 특성상 사랑하는 이성 간의 접촉을 제외한 성인들 간의 접촉을 기피하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에
유년기를 지나면서 피부 접촉의 기회를 상실한 나머지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그렇대요.
그래서 이 접촉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빨리 이성을 만나야 하고
성급하게 사랑에 빠진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건 접촉의 배고픔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거래요.
그런데 친밀함이나 건전한 애정 표현으로서의 접촉을 연습하지 못하고
이성 간에만 접촉을 시도하다 보니
스킨쉽=이성간의 성적 관계로 좁혀져서
다른 접촉의 기회는 또 점점 차단 당하고
그래서 악순환.
반면 아는 사람들 간에 또는 가족 간에 포옹, 뺨에 입맞추는 인사, 동료간의 포옹이나 접촉이
일상화 된 남유럽이나 남미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접촉 결핍이 덜 하대요.
저도 제가 그렇게 스킨쉽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근데 이 기사를 읽고 나서 흥미가 생기더군요.
가만히 생각을 해 봤어요.
내가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누가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램은
결국 접촉에 대한 욕구가 아니었을까...
이성의 성적 스킨쉽이 아니라
그냥 나를 한 번 토닥여주는 손길, 말없이 등을 쓰다듬어 주는 손길,
따뜻하게 안아주는 손길요.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와 접촉의 기회는 더욱 적어진대요.
그리고 사회 규범과, 혹시나 다른 의도가 있지나 않나 하는 의혹의 눈길 때문에
이젠 접촉이 점점 어려워진대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접촉=스킨쉽=이성간의 행위=성추행이라는 공식이 확고하게 성립한 시대에
누군가에게 내가 순수하게라도 접촉을 시도할 엄두도 안나고
상대방이 접촉을 시도해도 우선 소스라칠테고.
우리 문화권이 만들어낸, 그동안의 수많은 부정적인 체험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가련한 결과겠죠.
그래서 영미권에서 만들어낸 해결책은 접촉 전문 치료사에요.
커들러 cuddler라고 하더라구요.
상담 받는 것처럼 커들 비용을 내면 전문 커들러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꼭 껴안아줘요.
성적 의도 없이.
그러한 접촉이 고픈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런 직업이 생겨났겠나... 싶어요.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들이 넘쳐나서 잠시라도 혼자 있을 공간도 없는 이 세상에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진심으로 안아주고 토닥여줄 사람이 없다는 건
사람들 각자를 더 외롭게 하죠.
그걸 그냥 심리적 외로움이라고만 여겼는데, 그건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속했다는 걸 알게되었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