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하룻밤 사이에 가을은 겨드랑이와 종아리까지 성큼 다가와 있었습니다.

꺾은붓 조회수 : 1,692
작성일 : 2018-08-17 08:29:20

하룻밤 사이에 가을은 겨드랑이와 종아리까지 성큼 다가와 있었습니다.

 

아- 지긋지긋한 더위!

엊저녁 까지만 해도 자연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은 한증막더위는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매일 아침 4시 반 쯤 더위에 잠이 깨어 일어나 안양천 둔치에 마련된 운동시설에 가서 운동이 아닌 팔다리를 맥없이 흐느적거리는 유희를 하고 천변 야트막한 잠수인도교 중간에서 어린애만한 잉어들이 떼 지어 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해가 솟아오를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게 매일아침 일과입니다.

오갈 때 손수건을 반드시 손에 쥐고 얼굴과 목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비지땀을 닦느라 양 손이 쉴 새가 없습니다.

더울 땐 바람을 기다리기 마련이지만 오히려 바람이 더위를 더 독하게 부채질 했습니다.

매일 바람은 불었지만 끈적끈적한 밀가루 풀에 뜨거운 물을 타서 분무기로 뿌려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더위를 더 못된 더위로 만들곤 했습니다.

 

헌데 오늘아침!

바람도 많이 불었고 바람속의 습기가 온데 간 데가 없이 바싹 말라 있어서 더 없이 상큼했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몸뚱이를 어루만지고 지나갈 때 마다 겨드랑이가 시원하고 종아리가 조금은 서늘하기 까지 했습니다.

매일아침 어두운 시간임에도 매미들의 합창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매미라는 매미는 몽땅 모여들어 소프라노, 테너, 알토, 바리톤, 베이스 등 온갖 매미가 각자의 고운 목소리를 자랑하며 목청껏 뽑아대니 이건 자연이 공짜로 인간에게 선사하는 교향악단의 연주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교향악은 자취를 감추고 어쩌다 뒤늦게 우화한 매미의 쓸쓸하고 애절한 독창이 가끔 있을 뿐이었습니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어느 틈에 겨드랑이와 종아리까지 타고 올라온 것을 오늘아침에서야 알았습니다.

올 여름이 이렇게 혹독하게 더웠으니, 올 겨울은 고춧가루와도 같은 지독한 추위가 사람을 얼마나 들볶으려나?

반바지에 반소매였지만 벌써 겨드랑이가 시원하고 종아리가 서늘했는데, 조금 있으면 두 다리사이에 계란 노른자 두 개를 담고 축 늘어져 있던 가죽주머니는 바싹 마른 호두알이 될 것이고, 배따지는 가죽냉장고가 되고 뜨거운 물이 줄줄 흐르던 등때기는 물이 얼어붙어 미끄럼판이 될 것이다.

아- 겨울을 어찌 또 견딘단 말이냐?

 

혹자는 이런 사상초유의 더위를 자연의 보복이라고 까지 합니다.

하지만 자연은 사람같이 옹졸하지 않고 대범하셔서 보복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십니다.

자연은 오직 베풀기 만하십니다.

헌데 인간의 탐욕이 땅이 베푸는 오곡백과로는 만족 칠 못해하고 석탄 캐고, 기름 뽑아내고, 가스 뽑아내고, 온갖 쇳덩어리를 캐 내느라 자연의 대표인 지구라는 땅 덩어리를 벌집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자연은 보복하지 않고 베풀기 만하십니다.

 

그런데 자연도 인간으로부터 끊임없이 몹쓸 짓을 당하시니 몸이 허약해지셔서 열병이 나신 것입니다.

자연이 꿍꿍 앓으시며 가쁜 숨을 내 품는 열기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견디기가 힘든 것입니다.

겨울 추위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허약해진 자연도 감기와 고뿔에 걸리시고, 그러다 보니 자연이 내뿜는 기침과 가래가 겨울추위를 더욱 춥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인간의 탐욕이 언제까지 계속 되려는지?

인간이 탐욕을 자제하지 않고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앞으로는 봄과 가을은 없는 여름과 겨울이 반복되는 시생대 → 원생대 → 고생대 → 중생대 → 신생대→ 그 다음은 <말생대>인 지구 종말로 다가갈 것입니다.

 

말생대가 다가오기 전에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할 터인데!

IP : 115.41.xxx.35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지나다가
    '18.8.17 8:46 AM (210.210.xxx.184)

    글빨이 너무 좋으셔서 여러번 정독..
    에어컨 끼고 살다시피 했는데 어제 21시 넘어서
    좀 춥게 느껴 지드라구요. 에어컨 끄고 좀 있다가
    선풍기 끼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정말 가을은 우리앞에 성큼..
    이렇게 달디 단 잠이 참으로 오랜마었어요.
    누구엔겐가 두손모아 간절히, 간절히,
    감사드리고 싶은 그런 아침입니다.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 2. 지나다가
    '18.8.17 8:46 AM (210.210.xxx.184)

    선풍기 끼고를 끄고로 정정..

  • 3. 꺾은붓
    '18.8.17 9:15 AM (115.41.xxx.35)

    지나가다 님!
    정감 어린 댓글 깊이 감사드립니다.

  • 4. 앙~
    '18.8.17 10:25 AM (223.38.xxx.206)

    귀신같이 얼굴이 당기네용

  • 5. 그냥
    '18.8.17 10:42 AM (112.164.xxx.41) - 삭제된댓글

    하루이틀이라고 뉴스에 나오네요
    태풍이 오고 있답니다,
    제주도에
    엊저녁에 비가 엄청시리 왔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883004 (급질) 이제서야 겨우 정신 차린 고2 여학생이에요 2 예비고3맘 2018/12/12 1,817
883003 지금 Mnet에 마마 재팬 하는데 방탄도 나왔어요.. 5 행복한용 2018/12/12 1,935
883002 크리스마스에 메뉴 뭐하세요 2 쿡82 2018/12/12 1,937
883001 가열식 가습기는 수돗물 받아서 써도 되나요? 5 ,, 2018/12/12 4,242
883000 인천공항 1터미널 밤 샐 수 있어요? 1 새벽 2018/12/12 2,063
882999 드럼세탁기에 운동화 탈수해보셨어요? 3 궁금 2018/12/12 9,457
882998 한문장만 해석 해 주실분 계실까요? 9 ㅇㅇ 2018/12/12 835
882997 와...김치만두 너무 맛있어요 ㅠㅠ 9 만두귀신 2018/12/12 5,678
882996 카이스트, 서울공대 졸업후 진로가 어떻게 되나요? 14 ㅇㅇ 2018/12/12 7,455
882995 이촌역 인근 식당 좀 알려주세요 3 추천부탁 2018/12/12 1,098
882994 운전자 없는 택시, 세계 첫 상용서비스..택시도 자율주행 시대 점점 2018/12/12 633
882993 길냥이 핫팩 갈아주러 나갑니다. 14 .. 2018/12/12 2,188
882992 이부진씨 생각보다 수더분하네요 44 2018/12/12 30,332
882991 뭐라고 번역하면 좋을까요??영어 ...도움좀 9 ㅁㅁ 2018/12/12 844
882990 동대문구 운전학원 연수 추천좀 해주세요 장농면허 2018/12/12 689
882989 마카오 호텔 히터 잘 보셔요 2 마카오 2018/12/12 2,803
882988 아직 동참 안하신 분들의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59 움직여요 2018/12/12 3,097
882987 나랑 선약이 있는데, 지인과 약속을 단호히 거절 못하는 남친 9 ㅏㅏㅏ 2018/12/12 3,587
882986 김경수 이재명 뭐가 다른가요? 54 궁금 2018/12/12 1,814
882985 하...동네 정육점 진짜 싫네요ㅠㅠ 11 .. 2018/12/12 8,150
882984 돈버는 일 중에 가장 재밌었던 일은 뭐였나요? 7 2018/12/12 3,396
882983 이사가는데 순금돼지 주면어떨까요 3 잇ᆢ 2018/12/12 2,142
882982 배추전 잘 먹었습니다 :) 3 .. 2018/12/12 2,326
882981 그럼 이럴경우 공동명의는요? 5 ... 2018/12/12 974
882980 이명박이 주진우에게 소장 보냈나봐요.. 47 ㅇㅇ 2018/12/12 3,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