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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의사가 겪은 폭염환자들

남궁인 조회수 : 3,768
작성일 : 2018-08-12 18:54:59
https://m.facebook.com/ihn.namkoong/posts/1794522777267798

사람을 학살하는 더위는 이제 한풀 가라앉았습니다. 지금부터는 그냥 매우 몹시 많이 더운 날씨가 이어진다고 해야겠군요. 특이 병력 없고 더위를 잘 견디는 저도 밤마다 잠을 설치며 힘들었습니다. 주변 응급실 의사들은 올해 압도적으로 열사병 환자가 많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많은 열사병 환자는 의사 생활 이후 처음입니다. 살인적인 폭염을 뚫고 응급실에 출근하자 그 폭염에 쓰러진 환자들이 열기를 머금고 줄줄이 실려왔고, "바깥에서 정말 학살이 벌어지고 있구나"라는 분한 마음에 이전 글을 썼습니다. 극심한 더위가 조금 지나갔으니 이제 약간 차분히 정리해보겠습니다. 다음은 근래 내원한 열사병 환자들입니다. 당연히 특정 환자를 칭할 수 없게 변형하고 일반화한 사례입니다.

(1) 폐지를 줍던 80대 여성입니다. 리어카 앞에서 기절해 있다가 발견되어 실려왔습니다. 다행히 의식이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폐지는 조금 선선해지면 주우시라는 말을 듣고 퇴원하셨습니다.
(2) 시장에 누워있던 60대 남성입니다. 대로에 누워있길래 사람들이 대낮부터 술에 취해 누웠구나 하고 지나쳤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육체노동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시장에서 쓰러졌다고 합니다. 의식 불명으로 실려와 세 시간 만에 자극에 반응할 정도로 회복되었고, 여섯 시간 만에 자기 의지대로 말을 할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여섯 시간 만에 그의 말을 들어보니 중국말이었습니다.
(3) 지적장애가 있던 50대 여성입니다. 아침 산책을 나간다고 외출했다가 20분 만에 돌아왔는데 의식 상태가 혼미해져서 신고되었습니다. 다행히 회복되었습니다.
(4) 말기 암 투병 중인 80대 여성이었습니다. 에어컨은 없었고 보양식으로 꿀물만 먹었다고 합니다. 집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었고 더불어 병의 경과도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나고야 말았습니다.
(5) 반지하방에서 발견된 90대 노인이었습니다. 발견 당시 체온 42도였고, 이미 사망 상태였습니다.
(6) 폐지를 줍던 다른 80대 여성입니다. 폐지를 차곡차곡 개 놓고 기절해 있는 것이 발견되어 실려왔습니다. 다행히 의식이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폐지는 조금 선선해지면 주우시라는 말을 듣고 퇴원하셨습니다.
(7) 노숙자로 추정되는 분입니다. 나이는 60대로 추정됩니다. 땡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늦게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경기하고 있었습니다. 내원해서도 한 시간은 경기가 멈추지 않았고 의식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보호자도 없고 연고지도 없고 가진 돈도 없어 다른 병원으로 전원 처리되었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확실히 사망이 예견됩니다. 혹은 지금 죽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8) 교회를 간다며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80대 여성입니다. 가족이 교회 가는 길을 부랴부랴 뒤져 길가에 쓰러진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처음 의식은 혼미했으나, 다행히 회복되었습니다.
(9) 옥상 텃밭에서 고추를 따러 올라갔다가 기절한 80대 할머니입니다. 옥상에서 내려오지 않아 가족들이 올라가 찾았습니다. 의식은 혼미하였으나, 다행히 회복되었습니다.
(10) 육체노동이 업인 30대 중국인입니다. 에어컨 없는 반지하방에서 동료들과 단체생활합니다. 새벽에 냉장고 앞에서 물을 마시려고 했던 흔적이 있으나 기절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끔찍한 방에서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었고, 장장 12시간에 걸쳐 회복되었습니다. 의식 회복된 후에는 자신의 물품을 달리며 소리를 지르다가 다리를 절며 퇴원했습니다.
(11) 지적장애가 있던 50대 남성입니다. 외출 후 실종되었다가 후미진 등산로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며칠 동안 경과가 악화 일변도였고, 결국 사망했습니다.
(12) 폐지를 줍던 또 다른 80대 여성입니다. 처음에는 (1) 번 환자가 다시 온 줄 알았으나 매우 비슷한 모습의 다른 환자였습니다. 너무 비슷한 환자가 많이 오자 저는 검색해서 폐지 가격이 Kg당 50원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한 200Kg의 폐지를 모으면 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한 사회학자가 우리나라에 폐지 줍는 노인이 175만 명이라고 주장한 것도 보았습니다. 오늘 병원비는 폐지 몇 톤을 모은 돈일까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살인광선 아래에서 다른 여가 활동이 아니라 경제적 지탱을 위해 하루 200킬로의 폐지를 주워야 하는 사람들과, 그 대가가 고작 만 원인 것과, 그럼에도 여기 실려올 정도로 일해야 했던 사람들을 직시해 보았습니다. 선선해지면 폐지를 주우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13) 길에서 쓰러져 발견된 80대 후반 노인입니다. 혈압, 당뇨, 치매, 파킨슨 등이 있었습니다. 횡문근용해증과 다발성장기부전으로 진행했습니다. 호전될 가망이 없어 사망이 확정적인 상태로 퇴원했습니다.
(14) 길에서 쓰러져 발견된 70대 할머니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늦게 발견되었습니다. 천식이 있었다고 하고, 폐렴이 동반되어 있었습니다. 선후관계는 모르나 폭염이 합병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15) 선풍기만 있는 습기 찬 집에서 기절해서 발견된 80대 남성입니다. 의식은 명료한 편이었고, 치료 후 회복되었습니다. 비슷한 케이스가 너무 많아 하나만 언급합니다.
(16) 선풍기도 고장난 습기 찬 집에서 기절해서 발견된 80대 여성입니다. 의식은 명료한 편이었고, 치료 후 회복되었습니다. 선풍기도 고장난 경우는 드물어 일부러 언급합니다.
기타 비슷비슷한 케이스는 언급하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계속 내원하고 있습니다.

일사병과 열사병을 나누는 기준은 의식수준 입니다. 위의 케이스에선 의식이 혼미해도 묻는 말에 반응할 수 있는 정도가 많았습니다. 이 경우 명확히 열사병은 아닙니다. 만약 내원 당시 의식이 전혀 없는 열사병이라면 그야말로 사망률은 50%에 육박합니다. 이미 뇌에 열손상을 입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특정 온도에서 장기가 가장 적절하게 기능할 수 있기에 사람은 정온동물입니다. 여기서 체온이 오르면 뇌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제 기능을 잃으며 열손상을 입고, 체온을 조절해야 하는 것도 뇌이기 때문에 전신의 체온은 물리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다시 추가적인 뇌 손상으로 이어집니다. 뇌는 게다가 우리 몸에 가장 중요한 기관이기도 합니다. 결국 각종 합병증과 회복되지 않는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폭염은 예측하지 못한 바가 컸습니다. 우리나라 기상 관측사상 가장 더운 날들이 지속되었을 정도니까요. 모든 사람이 바깥에 조금이라도 나가보았다면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느껴보지 못한 쨍하고 답답한 기분을 느꼈을 것입니다. 갑작스러웠기에 역시 충분한 대처는 이루어지기 어려웠습니다. 의사들도 예측하지 못하고 몰려오는 환자군을 맞이해야 했고요. 그러나 꼼꼼히 환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열사병은 전형적으로 사회경제적 위기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직면한 질병 입니다. 거의 이들만이 고통받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적장애, 폐지, 80~90대, 선풍기,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반지하 등의 단어를 읽고 있자면, 매년 가장 먼저 고통받을 이들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도 자명합니다. 이들은 볕이 내리쬐고 의식이 가물거리는 위기에서도 한 마디 못하고 매년 스러질 것입니다.

이번에 발표된 온열질환 통계는 아마 정확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이 사람들을 보고 어떠한 통계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명 매년 우리나라의 폭염은 이와 비슷하게 계속되거나 심지어 더해질 것입니다. 이 사람들도, 이 환자군도 똑같이 매년 응급실을 찾을 것입니다. 전신이 달궈져 길에 쓰러져 있다가 실려온 사람들. 흡사 몸에서 연기가 날 것 같은 사람들. 저는 이 사람들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할까요. 부디 더 이상 사람을 해하는 폭염이 내리쬐지 않기를, 또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고통에서 먼 사람들이 대신 내 주기를 바라봅니다.
IP : 119.201.xxx.210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남궁인
    '18.8.12 6:57 PM (119.201.xxx.210)

    8월 7일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씨가 자신의 sns에 쓴 글

  • 2. 정말
    '18.8.12 7:50 PM (175.223.xxx.64)

    너무 슬픈 일이네요. 가슴이 아픕니다...정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야겠어요. 좋은 세상이 되기를...

  • 3. ㅇㅇ
    '18.8.12 8:05 PM (210.100.xxx.221)

    보다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 4. 다 불쌍한데
    '18.8.12 9:44 PM (175.213.xxx.182)

    저는 택배 기사가 피부에 와닿게 불쌍한데요.
    이틀전엔 오늘 올 예정이던 택배가 한밤중에 집앞에 턱 ! 아마도 너무 더워서 이 기사는 해 떨어진후에 일하기로 했나 봅니다. 차라리 그게 낫겠어요. 낮에 쉴수 있다면.

  • 5. ㅇㅇ
    '18.8.12 11:56 PM (125.180.xxx.21)

    잘 읽었습니다. 200키로... 너무 속상하네요. 에휴

  • 6. 착잡해요
    '18.8.13 12:06 AM (210.57.xxx.39)

    폭염과 빈곤...

  • 7. 마음이
    '18.8.13 8:41 AM (112.166.xxx.17)

    무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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