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경제개발, 이게 과연 박정희의 공적인가?
박근혜를 정치판에 뛰어들게 한 자산은 오로지 그의 아비 왜군중위 출신 박정희의 알량한 이름 하나뿐이었다.
만주벌판에서 용맹무쌍함을 자랑하며 독립군을 사냥하던 왜군중위 다까끼 마사오의 눈부신 전공, 군대내 남로당 총책, 머리가 헷갈릴 정도의 변절과 배신, 총칼로 정권을 도둑질, 나라의 기둥감들을 파리 죽이듯 했던 숨 막히는 독재, 종신집권, 상습적인 성폭행, 주지육림에 파묻혀 해롱거리다 즉결 처형되어 복상사를 한 것 등등은 몽땅 다 “모르쇠!”하고 오직 내세운 게 그 알량한 서푼어치도 안 되는 경제개발이다.
박정희시대에 얼마간의 경제성장을 이뤄 소위 “보릿고개”라는 것이 옛말이 되게 한 것은 내 가족과 내 자신의 지나온 과거사이자 근대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박정희에게 등판에 채찍을 맞고 군홧발에 걷어차이며 내 자신과 일가가 보릿고개를 탈출한 그 엄연한 사실까지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 부정을 한다고 해서 부정될 일도 아니다.
이게 과연 오로지 박정희 한 사람의 공적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수작이다.
우선 한 집안이고, 나라고 경제를 일으켜 세우려면 우수한 노동력과 자본이 결합되어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7-80대의 독거어르신이나, 사지를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 독신의 장애인은 국가나 자선단체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면 그 지원으로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는 해도 더 이상의 경제를 끌어 올릴 방법이 없다.
국가나 자선단체의 지원이 끊기면, 그 안락한 생존도 거기서 끝난다.
경제적 자립은 꿈도 꿀 수 없다.
이게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노동력이 없어서 이다.
물론 노동력이라는 것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황소 같은 힘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황소 같은 건강한 육체를 타고 났다 해도 지적장애가 있어 낫 놓고 기억(ㄱ)자도 해득을 못 한다면 그 힘은 효율적이고 유용한 노동력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남의 관리 하에 힘든 일을 단순반복으로 하는 일 이외에는 그 힘을 쓸 수가 없다.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자신의 생계조차 해결 못하는 노동력이다.
그래서 우수한 노동력이라 함은 건강한 육체에다가 맑은 영혼에서 울어 나오는 긍정적인 두뇌가 결합된 지적인 노동력을 말하는 것이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근면성까지 갖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노동력인 것이다.
박정희가 경제개발을 시작할 당시 우리는 비록 가난은 했지만 이런 조건이 아주 충분히 넘치도록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천치 바보가 아닌 이상 단 하루면 터득하여 읽고 쓰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신(神)이 인간의 소리를 담아내고자 창조해낸 것과 다름이 없는 “한글”이 있었다.
얼굴이 검거나 하얀 보통정도의 지능지수를 갖춘 외국 사람도 한두 시간만 배우면 그 뜻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읽고 쓸 수가 있는 게 한글이다.
그 외국 사람이 자기네 나라 말을 자기네 문자를 제쳐놓고 한글로 그 나라 말을 표현하는데 거의 지장이 없는 게 바로 한글이다.
이게 바로 한글이다.
삼라만상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의 소리, 자연의 소리, 동식물의 소리까지도 그 음 값에 거의 가깝게 표현을 할 수가 있고, 신이 있어 말을 하고 방귀를 뀐다면 그 소리까지도 담아낼 수 있는 게 바로 한글이다.
과시 “한글”은 “신(神)의 문자”인 것이다.
한글 다음으로 로마자 알파벳이 그런 유사한 기능이 있기는 하나 한글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한글은 낱개의 글자(자음 모음)가 앞뒤로 어떤 글자와 어울려도 똑같은 음으로 발음이 되지만, 영어는 앞뒤로 어울리는 글자에 따라 발음이 제각각 달라진다.
영어는 발음기호라는 보조 수단이 있어야 한 단어 속에서 어울림에 맞는 음을 소리 낼 수가 있고, 그 말을 모국어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발음기호의 도움이 없이는 그 글을 그 말에 맞는 발음으로 읽을 수가 없다.
한글이 완벽한 육체를 갖춘 글자라면, 로마자는 휠체어나 목발을 짚어야 그나마 걸음걸이를 뗄 수 있는 장애문자인 것이다.
박정희가 경제개발을 시작할 당시 우리는 이런 전지전능에 가까운 한글이 있어 문맹이 거의 없었고, 설사 문맹이 있다 해도 마음만 먹으면 며칠이면 까막눈을 틔워 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거기에 더해 상상을 초월하는 교육열이 뒷받침 되어 우수한 노동력이 흘러넘치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굶어 죽고, 생명줄인 논밭을 팔고, 농사일에 상일꾼인 소를 팔아서라도 우선은 자식을 가르쳐놓고 보자는 세계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억척스런 교육열이 한글과 결합하여 세계적으로도 가장 빼어난 노동력을 충분히 길러놨던 것이다.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부르는 것이 괜히 만들어낸 말이 아니다.
거기에 단군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인자는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우수한 두뇌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았다.
또 타고난 근면성이 있었다.
논에 들어가서 흙탕물을 튕기며 소와 농부가 어우러져 논을 갈다가 소가 지치면 그 소의 코뚜레를 농부의 아낙네가 앞에서 잡아끌고 농부는 한 손에 쟁기 잡고 한 손으로 소의 엉덩이를 밀어 논을 다 갈고 나서야 지친소의 등을 두드려 주며 집으로 돌아오는 억척스런 유전적으로 타고난 근면성이 있었다.
이 모든 조건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경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조건이 두두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저 영토도 드넓고 자원이 사방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파묻혀 있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이 글자도 없고, 있다 해도 자기나라 말이나 현대적인 과학기술을 표현할 방법이 없는 갑골문자 수준의 글자이어서 전 국민이 문맹이나 다름없으니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우수한 노동력을 길러낼 방법이 없어 외국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당장 생계가 막연한 게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외국의 도움이 없으면 땅 밑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돈을 깔고 앉아서도 그냥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당장 현금화를 할 수 있는 검은 황금인 “석유”가 샘물 솟듯 솟아나오는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의 경우는 아주 특수한 경우로 그들도 그 석유가 고갈되는 순간 그들이 누리는 경제적 풍요도 거기서 끝난다.
다음으로 경제를 일으킬 밑천인 자본은 있었나?
그것만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자본은 박정희가 제 자갈논을 팔아서 충당한 것인가?
역시 천만의 말씀이다.
그 밑천은 우리의 선대 조상님들께서 물려주신 피눈물 나는 유산이다.
박정희가 경제개발을 일으키게 한 종자돈이 대일 청구권 자금이다.
그 대일 청구권자금은 우리 조상님들이 목숨을 빼앗긴 목숨 값이고, 왜놈들에게 왜 열도나 이름도 모르는 남양군도에 끌려가서 목숨을 잃어가며 일을 한 외상품삯이고, 5천년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강탈해간 장물을 돈으로 환산해서 되돌려 받은 것으로 조선백성2천만의 36년 노예 값을 후불로 환산해서 헐값에 팔아넘긴 매국의 돈이다.
대일청구권은 2차 대전 종전과 동시에 침략국이자 패전국인 일본에 대하여 피해국인 한국이 당연히 청구할 권리가 있었던 돈이며, 정통성이 결여된 박정희 군사정권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개선케 하려는 미국의 압력에 등 떠밀리고 왜와의 뒷거래로 뒷돈을 챙겨 제 주머니에 집어넣어 공화당을 만드는 자금으로 쓰느라고 헐값에 협상을 매듭지은 굴욕의 협정이었다.
대일청구권은 이승만과 민주당정권시절에도 물밑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박정희가 있어 매듭이 지어진 게 아니라, 박정희 때문에 헐값에 타결이 된 것이다.
대만은 3년 반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우리보다 10년 앞서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10억불을 받았으니, 36년 식민지에 10년 뒤늦게 3억불로 타결지은 것이 얼마사 똥값인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줄로 안다.
그것도 한일협정서에는 <청구권>이 아니라 일본에 한국에 인정을 베푸는 <독립축하금>으로 되어 있다. 이거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북한은 미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방해 때문에 아직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대일채권을 행사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일관계에서 파열음을 내는 독도문제, 위안부문제 등을 포함한 모든 외교문제는 박정희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파생상품으로 생겨난 것들이다.
그런 우수한 노동력과 36년간의 노예 값이 어우러져 알량한 박정희 경제개발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게 과연 박정희의 공적인가?
박정희 뿐 아니라 비록 독재는 했고 단 한순간도 쉼 없이 갈퀴질을 하기는 했어도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도 경제는 발전하였고, 빈 깡통인 김영삼이 경제를 죽을 쑤어 놓기는 했지만, 세계조류를 한 세대 앞서보는 김대중의 혜안으로 "IT산업”을 일으켜 부도난 나라를 단시일내에 다시 일으켜 세우고 노무현이 그것을 승계해서 알뜰살뜰하게 나라 살림살이를 꾸려 오늘의 경제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하나는 큰소리치던 이명박이 다시 노무현 김대중 10년을 거슬러 올라가 김영삼 말기의 경제수준으로 되돌려 놓았고 박근혜는 4년 동안 최순실의 눈치만 살피느라 경제를 죽을 쑤어 놓아 오늘날 우리가 살기 힘들다고 외치는 현실이 된 것이다.
이게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머릿속에 들은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머릿속에 대통령 한번 해 보겠다는 탐욕과 오기로만 가득 차 있지, 나라를 어떻게 경영해 보겠다는 철학은 고사하고 쥐 대가리나 암탉 수준의 잔머리도 없는 것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는 정치적으로 우수하고 안 우수하고를 따질 게재가 아닌 아주 조잡한 불량인간인 것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보겠다고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설쳐댈 그 마당에는 항상 “한강의 기적”깃발이 함께 따라다녔다.
그걸 논리적으로 일찌감치 박살을 내어 놓아야 했다.
얼굴을 들고 한강의 기적을 그 입으로 나불대지 못하게 일찌감치 박정희 경제개발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쳐 만천하에 밝혀놨어야 했다.
그것만 집어 누르면 박근혜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박정희의 친일매국행위와, 사흘이 멀다 하고 근혜 자신보다도 어린 여성들을 납치 해다 200여명의 박근혜 작은 어머니를 양산해낸 공적뿐이 없었다.
그렇다면 경제개발에 박정희의 공적은 손톱 끝만큼도 없는 것인가?
있기는 있다.
그 우수한 노동력에 황소보다도 더 근면한 노동자들의 뒤에서 죽는 순간까지 쉬지말고 일만 하라고 만주벌판에서 독립군 잡아다 족치며 익힌 소싯적 버릇으로 등판에 가죽채찍을 휘둘러 대고 군홧발로 엉덩이를 걷어차다, 그래도 성이 안 풀리면 목을 졸라 죽이든가 스스로 죽게 만들었다.
나보고 억지를 쓴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빼도 박도 못할 증인이 숫하게 많다.
그 증인의 대표가 바로 전태일 열사다.
스스로 몸에 석유를 뿌리고 성냥을 그어대지 않으면 안 되게 인간을 기계보다도 더 심하게 부려 먹었다.
그 참상을 견디다 못한 전태일은 모든 노동자들을 위하여 이 나라 노동제단에 자신의 몸을 소신공양했다.
박정희의 독재가 거의 끝나가던 1979. 8. 9일 급기야는 “YH여공 농성사건”이 발생했고, 끝내는 김경숙 열사가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신민당사 옥상에서 아스팔트 위로 뛰어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여파로 김영삼 신민당총재가 무궁화 빼지가 뜯겨 국회에서 축출되었고, 이에 항의하느라고 부산마산에서 봉홧불을 올려 봉화가 서울로 치닫기 직전이었고, 끝내는 김재규장군이 박정희와 차지철의 골통에 콩알을 쑤셔 박아 지긋지긋한 박정희 18년 독재를 청산했던 것이다.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가보시라!
전태일, 김경숙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열사들이 잠들어 계신다.
몇 년 전에 수정보다도 맑은 김근태민청련 의장이 함께 하셨고, 그 뒤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님께서 40년 만에 아들 전태일 곁에 누우셔서 수많은 아들들 품에 안겨 잠들어 계신다.
그리고 최근에는 노회찬 의원과 박종철열사의 부친 박정기 옹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박종철 옆에 묻히셨다.
마석 모란공원!
언젠가는 효창공원, 수유리 4.19묘지, 망월동 5.18묘지와 더불어 우리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매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의 역할 단순히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준 것뿐인가?
그렇지 않다.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겨레는 해방과 동시에 겨레도, 나라도, 말(언어)도, 풍습도, 사분오열 되었고 우리말은 거의 소멸되었을 것이다.
말(언어)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사라지는데 그 말을 붙들어 매고 담아 놓자면 그 말을 담을 그릇이 있어야 하는데 그릇이 없으면 말은 흩어져 없어지기 마련이다.
해방당시 한글이 없었다면 왜에 부역했던 친일파들은 왜 문자인 “가나”로 자기의사를 표현했을 것이고, 일찍이 미국에 기댔던 사람들은 “영어”로 자기 뜻을 나타냈을 것이고, 사대부집안의 자손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한자”로 자기 의사를 전달했을 것이다.
한나라 한겨레 간에 편지나 문서를 주고받는데도 2-3단계의 통역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다보면 쓰는 글자에 따라서 말도 변하고 생활방식이나 사고도 변하여 갔을 것이다.
처음 듣는 사투리도 빨리 알아듣기가 힘든데, 만약 이렇게 되었다면 우리말은 지방마다, 사용하는 글자에 따라, 출신성분에 따라 제각각 변모하여 지금쯤은 국민 간에 의사소통도 되지를 않을 것이다.
자기나라 문자가 없이 서양의 식민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던 인도, 말레시아, 필리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등이 좋은 경우이다.
모국어는 간신히 형태만 남아있고, 식민지배시 종주국이었던 나라의 말이 국어를 대신하고 있는 형편이며, 그렇다고 그들이 쓰는 영어나 불어 스페인어가 정통 영어나 불어 스페인어도 아니어서 종주국이었던 나라의 사람들과도 의사소통이 원할 치를 못하다.
언젠가는 그 나라들의 모국어는 박물관에나 비치되어 있는 잊혀 진 언어가 될 것이다.
한글은 우리의 까막눈을 띄워줬을 뿐 아니라 우리겨레를 우리겨레이게 끔 하나로 묶는 끈이다.
이 끈은 쓸수록 달아 없어지는 끈이 아니라 쓰면 쓸수록 더 탄탄해지는 끈인 것이다.
아- 한글!
어찌 한글의 신묘함과 빼어남을 다 헤아릴 수가 있으리요?!
우리의 경제개발 공로!
50%는 겨레의 까막눈을 틔워주신 세종대왕에게 있고, 25%는 빼어난 유전인자를 물려주신 단군할아버님에게 있고, 25%는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딸은 가르치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있다.
“한강의 기적”이 박정희의 공로라고?
박정희 박근혜 추종자들은 헛소리 하지 말기 바란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경제개발!
한글이 있어 가능했고, 그건 기적도 아니고 당연히 우리가 누려야 할 우리의 몫이다.
다만 왜놈36년과 군사독재 50년을 견뎌내느라고 반세기 늦어졌을 뿐이다.
단군할아버님이시여!
세종대왕님이시여!
이 못난 후손들을 어엿비 녀긔시옵소서!
박정희 박근혜만은 결단코 우리역사가 용서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굽어 통촉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