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완서 작가님 단편이었죠.
여공인 여주인공이 역시 남공인 남자와 만나 결혼을 했는데
알고보니 남자는 운동권 출신의 부잣집 아들로 위장취업을 한 것이었나...
스토리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
졸지에 부자집 사모님이 되어 딸집에 놀러온 엄마와 수다를 떠는데
엄마가 이런 말을 했어요.
"여자가 일이 있으면, 세상에 무서운게 없어."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암튼 이 문장이
제 마음에 콕 박혔죠.
당시 저는 시골의 작은 사무실에서 온종일 전화를 받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90년대 중반이었는데 한달 월급이 30만원 남짓.
퇴근 후에는 밭일도 돕고 그랬는데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다가 얼마전에 읽었던 이 문장이 떠오르면서,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구나,
아주 강력한 의지가 솟구치더군요.
암튼 그래서 저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고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평생 할 만한 일을 찾았습니다.
딱히 잘 풀린건 아니지만 40대 중반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는 건
값진 일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또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제가 다니던 시골 교회에 도시의 어떤 사람이 와서 강연을 했어요.
강연 내용은 전혀 기억이 안 나고 그 분이
2002년 월드컵이 결정된 뒤에, 이런 생각을 했대요.
당시만 해도 역시 90년대 중반이었는데 그 분이
2002년에 나는 어디서 월드컵을 보고 있을까, 그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대로 살면 안되겠다 싶어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했다고..
그때 저는 시골 교회의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서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2002년에는 이 시골마을의 작은 사무실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월드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이 두개의 에피소드가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2002년에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들어가서 월드컵 관련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경기장 잔디를 밟으면서 고향의 작은 예배당에 앉아 있던 저를 떠올렸어요.
어느새 2018년이잖아요.
요즘은 2030, 딱 12년 뒤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래야 그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게 될 테니까.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운 점들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저를 잡고 이끌어 준건
역시 일이었어요.
박완서 선생님을 생전에 뵙지는 못했지만
그 분이 던져주신 한 줄이 제 인생의 지침이 되어주셨다고 고백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