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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박노자의 글

두고봅시다 조회수 : 882
작성일 : 2018-06-11 11:31:46
 정치인의 사생활은 그렇게 흥미로운가?
2018. 6. 9. 21:56

딱 2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국내의 한 사립대에서 근무했을 때에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저와 좀 친했던 영문과 대학원생들은 그때 대단히 바쁘게 됐습니다. 클린턴과 르윈스키 사이의 구강성교 등을 매우 입체적으로 (?) 이야기한 미국 국회의 수사보고서를 국역하느라고 말입니다. 약 며칠간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친밀한 관계»의 이런저런 디테일들은, 워싱턴과 머나먼 대한민국의 한 캠퍼스에서 모든 화제의 중심이 됐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실은 그냥 일종의 광극 (狂劇)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클린턴을 애당초 싫어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말이죠. 미국에서 복지제도를 대대적으로 축소시키고 신자유주의의 기본틀을 공고화시킨 장본인인지라 싫어할 수밖에 없었죠. 르윈스키 스캔들 직후에 세르비아 폭격 등 국제적인 깡패짓을 또 벌여서 당연 더더욱더 싫어하게 됐고요. 당연히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악/남)용한 애정행각인 만큼, 그런 행각을 벌인 정치인의 자격을 의심할만하기도 했습니다. 한데 클린턴의 구강성교 이모저모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클린턴에 대한 모든 판단을 오로지 그 «사건»에 의거해 내렸던 사람들을….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정치인 내지 사상가의 사생활은 중요합니다. 그 사생활 속에서 가부장제나 억압적인 가족제도에 대한 그 정치인이나 사상가의 실천적인 입장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사생아를 끝내 ‘아들’로 인정하지 않아 고아원에 보낸 마르크스의 행적을 보면, 그가 어디까지나 그 시대의 «주류» 사회의 위선적이며 잔혹한 ‘윤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반대로 크룹스카야와의 동지적인 ‘개방형 결혼’ 속에서도 – 혁명자들 사회에서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었던 -  아르만드와의 사랑을 나누었던 레닌은 가부장제를 떠난 어떤 새로운 ‘관계’의 형태를 탐구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가 정말로 자신의 옛 애인에 대한 «입막음»과 «협박»을 시도했다면, 유권자들이 이를 보고 해당 정치인의 여성관이나 인생관의 어떤 단면들을 확인해 그 결론을 자신들의 투표에 반영시킬 수야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한데 «누가 누구와 어떤 관계를 가졌느냐» 그 자체가 타인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면 이건 미국식의 정치판이지 바람직한 현상은 잘대 아닙니다. 

미국의 «정치인 사생활 검증»은 거의 병리적 관음증의 수준입니다. 반대로 유럽에서는 정치인은 강령과 정책으로 판단되지 개인 사생활은 보통 논외로 치부됩니다. 고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에게 두 명의 애인으로부터 두 명의 혼외 자녀가 있었다지만, 이는 프랑스에서 «스캔들»은커녕 그다지 ‘뉴스’도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미테랑은 비록 급진적인 공유화 노선을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끝내 신자유주의로 나아가지 않았던 보기 드문 1980-90년대 지도자로 기억되죠. 실은 한국에서도 – 비록 개인적 차원에서의 «도덕 재판»을 대단히 잘 하는 사회긴 하지만 – 정치인의 개인 사생활을 문제 삼는 ‘전통’은 거의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숨겨진 딸이 있다’는 의혹이 몇년 전에 몇 번 보도됐지만, 김대중 측이 명확히 부인하지 않았다 해도 이 문제는 그에 대한 사후 평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듯합니다. 사생활이 어땠든 간에 김대중 시대의 명암, 즉 제도적 민주화의 진척과 신자유주의의 도입, 신용불량자와 비정규직 양산 등은 그냥 그대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거죠. 

SNS시대에 다들 «투명인간»이 돼가는 추세가 있고 사생활 보호 그 자체가 대단히 어려워지기에  아마도 앞으로 정치인의 사생활은한국에서도 선거시의 하나의 변수로 작용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차라리 이런저런 «관계» 문제보다는 정치인들의 가사, 육아노동 문제라도 유심히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자기 집 청소를 스스로 하고, 주말에라도 아이 육아에 시간을 제대로 할애하는 남성 정치인들이 과연 어느 정도 있는가 싶습니다. 만약 평상시의 «실천적 페미니즘»이 정치인의 필수덕목이 된다면 그래도 양성평등, 여성 친화적인 정책이라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좌우간 남의 «침대»가 아닌, 정치인 일상의 진보성이 검증의 중심이 됐으면 합니다.
 

[출처] 정치인의 사생활은 그렇게 흥미로운가?|작성자 박노자

IP : 211.193.xxx.189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미투
    '18.6.11 11:35 AM (125.184.xxx.69)

    위계나 권력으로 누르려고 했으면 전혀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죠.
    정치인의 거짓말은 결코 용납한지 못한다는거, 알고 계시죠?

  • 2. 이분은
    '18.6.11 12:26 PM (112.153.xxx.47) - 삭제된댓글

    한국사회내에서 치열하게 생활하시고
    이런 말을 하셨으면
    멀리서는 나도 저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음

  • 3. ..
    '18.6.11 12:32 PM (116.45.xxx.121) - 삭제된댓글

    여자문제와 정치적 도덕성은 별개라고 보고 싶으신가본데,
    읍읍은 비도덕성으로 점철되어있는 와중에 여자문제까지 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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