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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나의 아저씨 짜투리인물분석 - 할머니편

쑥과마눌 조회수 : 3,984
작성일 : 2018-05-23 23:08:47

누가 보아도

할머니는 이지안에게 짐으로 보인다.


거동 못해,

말도 못해,

벌이 없어,

혼자 살기에도 버거운 이지안에게

얹혀 있는 커다란 짐


나의 아저씨 초반에

이지안이 달이 보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을 흘려 듣지 않고

쇼핑카트를 슬쩍 집으로 가져가

한줌밖에 안되는 할머니를 

한줌밖에 안되는 이지안이 끙끙거리며 태운다.

그리고, 그 할머니를 싣고

서울에도 저렇게 큰 달이 뜨나 싶게 

엄청시렵게 큰 달이 보이는 언덕에서 같이 보는 장면이 있다

영화 ET라고..

연식 오래된 사람들은 유년시절에 보았을..

그 영화에 나온 달장면이래로

내 가슴에 남아 있을 명장면이다.


그 할매를 다시 끌고 달동네 집으로 올라가려던 걸

이선균이 대신 업어주고

그런 이선균을 보고, 이지안이 선의를 느끼면서도 이런 말을 하지

부자들은 착하기 쉽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화상들은 그 쉬운 걸 안하는 걸로 선택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그렇게 커다란 달을 쳐다본 언덕배기에서

나는 과연 그 달을 보고 싶어 하던 사람이 할머니뿐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후에 너덜너덜한 몸과 마음으로

집에 들어 온 이지안이

할머니가 누워 있는 이불을 끌어 

달이 잘 보이는 창가에다 데려다 주고,

따스한 물을 끓여 안겨 주고..

맛난 걸 보면 가격표때문에 망설이다 사다준다.


누군가를 케어하는 마음

나보다 약한 가족에게 뭔가를 주는 그 마음 어디엔가

내가 받고 싶었던 어떤 마음과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 결핍되고 필요한 무언가를 

내 손으로 누군가에게 주는 것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채워간다


할머니가 있기에

텅빈 방안이 가득차고

차가운 방바닥이 신경쓰이고

뜨거운 물을 끓인다.


할머니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현자마냥

좋은 말..현명한 말..인생의 혜안에 가득 찬 말을 안해도

그저 바들바들 떨며

우리 강아지 불쌍해서 어떻하냐고.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하고 한탄만 하고 앉았어도.

할머니는 그 존재 자체로

집에 돌아 오는 이지안을 쳐다보는 눈빛만으로도

집 잃은 강아지마냥 거리를 헤맬 이지안을 불러들이고

할머니에게 베풀어지는 선의의 세례를 더불어 받으며

사람을 죽였었다는 낙인에 불도장을 더 할 수 있는 이지안의 타락을 막는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누구에게는 할머니로..

누구에게는 엄마로..

대부분에게는 어린 자식으로..

사람들 다 하나씩 이런 존재를 키우며 산다


그런 거다.

나를 파멸에서 건저 내는 힘도

나를 타락에서 막아 내는 힘도

역설적이게도 

나를 죽도록 고생시키는 

연약하여 내가 지켜줄 수밖에 없는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내게 기댈 수 밖에

그 누군가로 나오는 거다.


IP : 72.219.xxx.187
2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원글님
    '18.5.23 11:13 PM (112.152.xxx.220)

    짱~ 입니다!!!

  • 2.
    '18.5.23 11:15 PM (222.101.xxx.249)

    맞아요. 지안이한테 할머니는 그런 존재였겠죠.
    이 글을 읽으니 또 울컥합니다.
    원글님 진짜 짱 ;ㅁ;

  • 3. 저도요
    '18.5.23 11:18 PM (59.5.xxx.196)

    할머니가요
    지안이를 정말 예쁘게 안쓰럽게 봐주잖아요
    나한테 그런 마음 갖고 있는 사람한텐
    계산이 작동하지 않죠
    혈육이고요
    어릴 땐 사랑으로 키워줬겠고요...
    이해하지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4. 와우~
    '18.5.23 11:19 PM (59.11.xxx.17)

    그러네요~~ 읽으니 당연한걸 미처 보면서는 생각못했어요
    대단하셔요. 감사해요~~~

  • 5. 고고
    '18.5.23 11:26 PM (58.231.xxx.148)

    맞아요!

    울엄니가 제게 그려요.

  • 6.
    '18.5.23 11:54 PM (180.70.xxx.142) - 삭제된댓글

    공감 또 공감~

  • 7. 쑥과마눌
    '18.5.23 11:56 PM (72.219.xxx.187)

    ㄴ 쓰길 잘 했네요.
    패쓰할려다가, 그 놈의 달구경때문에 쓰게 된 글이거든요.
    확인은 안 해보았지만, 거기가 대학로 뒤에 낙산공원같았거든요.
    저희 친정집 근처.
    다음에 친정가면, 밤 늦게 그 공원에 가서, 그 달을 보리라..생각하며 쓴 글

    다들 감사~~

  • 8. ♡.♡
    '18.5.24 12:05 AM (112.185.xxx.238)

    좋은 평 잘 읽었어요~
    시간나시면 다른 인물평 부탁드려도 될까요?
    너무 재미나요~^^

  • 9. 제리맘
    '18.5.24 12:10 AM (1.225.xxx.86)

    원글님 짱~~~ 222
    드라마 안 본 사람인데도 눈물이 나네요
    작가하셔요~~~

  • 10. 우와~~~
    '18.5.24 12:22 AM (125.183.xxx.15)

    필력 대단하시네요.
    그 동그란 달에 그런 많은 사연이 있었군요.
    박동훈 이지안 잘 지내고 있겠죠?

    저도 또 다른 인물평 기다릴게요~~~

  • 11. 쑥과마눌
    '18.5.24 12:25 AM (72.219.xxx.187)

    ㄴ 이미 다른 인물들은 다 건드렸어요.
    안 건드린 인물들이 몇 안 남을 정도로..

    쑥과마눌..마늘 말고, 마눌..입니다
    그리 검색하시길..

  • 12. ...
    '18.5.24 12:27 AM (59.15.xxx.189)

    멋진글이네요!!!!
    쑥과 마눌님 필력 대단하세요.
    근래 읽었던 어떤 글보다 좋으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13. ㅠㅠ
    '18.5.24 12:45 AM (211.44.xxx.57)

    자식때문에 산다는 말의 진짜 의미

  • 14. ...
    '18.5.24 4:16 AM (92.108.xxx.194) - 삭제된댓글

    원글님 아빠얘기 전엔 눈물이 날 뻔 했는데..
    사족이 조금 아쉽네요.

  • 15. 쑥과마눌
    '18.5.24 4:36 AM (72.219.xxx.187)

    ㄴ 윗님, 감사해요
    쓰면서 속으로 같은 생각을 했어지요.
    단백하게 빼는 걸로~

  • 16. 맞아요.
    '18.5.24 6:14 AM (110.13.xxx.164)

    맞아요. 아이낳은건 고통이지만 그 고통으로 인해 존재감을 느끼고 때로는 살아야 할 이유도 되고...
    재미없는 천국대신 시련 유한함이 셋트인 현생을 살아내는 이유.

  • 17. 근데
    '18.5.24 7:04 AM (1.234.xxx.114)

    지안이 할머니는 외할머니예오 ?친할머니예요?

  • 18. ...
    '18.5.24 7:48 AM (119.197.xxx.28)

    할머니가 짐이긴 하지만 지안이 살아가는 이유였죠.. 지안이 어릴적 지안이가 할머니의 살아가는 이유였던것처럼...
    할머니없었음, 지안이 더 망가지던가 자살했을듯...

  • 19. 동감해요
    '18.5.24 8:11 AM (199.66.xxx.95)

    저도 내가 구원해줬다고 생각한 존재들이
    사실은 나를 구원해준거라고 자주 생각합니다

  • 20. .....
    '18.5.24 8:14 AM (180.65.xxx.57)

    공감....
    지안아....

  • 21. ....
    '18.5.24 9:34 AM (125.176.xxx.3)

    맞아요 저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어요 ㅜㅜ

  • 22. ㅇㅇ
    '20.6.21 7:35 PM (128.134.xxx.29)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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