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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를 말한다-결혼스토리

ㅇㅇ 조회수 : 2,560
작성일 : 2018-05-17 18:39:09
2012년에 미소천사 카페글 일부 펌해요
3.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을 만나다!



3번째 감방을 다녀온 직후인 1992년 8월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공장 노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선배들과 함께 준비했다. 그런데 그 선배들이 조직사건으로 대부분 구속되거나 수배를 받아 조직이 와해되어 버렸다. 공중에 뜬 신세가 되었다. 몇 달을 방황하다 블루칼라(공장 노동자)의 삶을 포기했다. 처음부터 그만큼 결심이 굳건하지 못했던 탓이리라. 굳은 결심에 금이 가자 금새 둑이 무너졌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자신감은 간 곳 없고,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소시민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견디기 힘든 방황의 시기였다.



긴 방황 끝에 1994년 가을,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선배로부터 국회의원 정책비서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마침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 결정하기 전에 우선 국감을 도와주기로 했다. 운동권 출신의 야당 의원으로 상임위는 환경부와 노동부를 대상으로 하는 환경노동위원회였다. 국감 기간 전국을 돌며 각 지역의 환경청과 노동청을 대상으로 환경과 노동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하수종말 처리시설의 미비로 인해 썩어가는 하천의 실태를 고발했다. 대기업 공장의 불법적인 산업폐수 무단 방류를 단속은커녕 도리어 감싸고 도는 공무원들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국회의원, 정치인이라면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던 내게 국정감사 활동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가슴 한켠에서 잠자고 있던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행정부를 감시하면서 법과 제도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길이 국회에 있었다. 다시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2-3년 지나면서 불타던 열정은 서서히 식기 시작했다. 100석도 안 되는 작은 야당으로 거대한 정부 여당에 맞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한계가 너무도 분명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대학 4학년때 처음 만났던 후배다. 한 해 후배였지만 나이는 동갑내기였다. 학창시절 동아리에서 선후배를 모두 잘 챙겨 ‘대모’로 불리던 친구였다. 2번째 구속의 이유가 된 ‘북한바로알기 자료집’을 경찰의 눈을 피해 그녀의 자취방에서 만들었다. 따뜻하고 세심한 마음 씀씀이로 함께 일한 우리들을 감동시킬 줄 아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서로에게 호감은 있었지만 알고보니 동성동본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 그래서 더 편한 선후배로 지냈다.



졸업 후 한동안 못 만났다. 국회에서 일을 시작한 뒤 몇 년만에 우연히 다시 만났다. 국회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 누나가 둘이 잘 어울린다며 적극적으로 중매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동성동본 문제는 해외에 가서 결혼하고 오면 된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들이댔다. 그 선배 덕분에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때마침 정부에서 이듬해 동성동본 혼인을 한시적으로 허용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했다. 호남출신인 아내를 지역감정에 물들어있던 완고한 집안 어른들이 반대할 건 불을 보듯 뻔했다. 다른 일로 상경한 부모님께 아내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사람부터 만나게 해 드렸다. 무척 호감을 갖는 눈치였다. 그날 밤 모든 걸 솔직히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하필이면...”이라며 한숨을 쉬시던 두 분이 금새 동의해 주셨다. “우리가 뻔히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네가 이런 선택을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 자식을 믿어주시는 두 분이 너무나 고마웠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신혼이었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정 하나로 사는 남편을 이해해주는 아내를 만난 건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다.

IP : 210.221.xxx.196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8.5.17 6:43 PM (59.6.xxx.219) - 삭제된댓글

    멋있다.ㅡ.ㅡ

  • 2. ㅋㅋㅋ
    '18.5.17 7:08 PM (122.38.xxx.224)

    읽다보니...좀 더 적극적인 윤동주 같은 느낌..

  • 3. ...
    '18.5.17 7:20 PM (218.236.xxx.18) - 삭제된댓글

    다른 이야기도 읽고 싶네요^^

  • 4. ...
    '18.5.17 7:29 PM (1.231.xxx.48)

    순수했던 시대의 순수했던 사랑 이야기네요.
    서로 호감이 있어도 동성동본이라 결혼까지 못 갈 걸 알기에
    아예 연애조차 시작하지 않았던 순수함...

  • 5. ...
    '18.5.17 8:26 PM (39.7.xxx.183)

    아내분 한다리 건너 아는 사람인데 미모는 김정숙여사님만
    못할지 몰라도 사람 그릇이 크고 천성이 밝습니다.
    아무하고나 잘 스며들듯 어울리고 내가 누구 부인이다
    이런거 없이 스스로가 멋진 사람이에요.

  • 6. ㅇㅇ
    '18.5.17 9:27 PM (210.221.xxx.196)

    39.7//딱봐도 밝아 보였는데 역시나네요. 아들둘도 바르고 밝아보이구요. 둘째아드님이 아빠를 많이 닮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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