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김경수를 말한다-결혼스토리

ㅇㅇ 조회수 : 2,578
작성일 : 2018-05-17 18:39:09
2012년에 미소천사 카페글 일부 펌해요
3.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을 만나다!



3번째 감방을 다녀온 직후인 1992년 8월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공장 노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선배들과 함께 준비했다. 그런데 그 선배들이 조직사건으로 대부분 구속되거나 수배를 받아 조직이 와해되어 버렸다. 공중에 뜬 신세가 되었다. 몇 달을 방황하다 블루칼라(공장 노동자)의 삶을 포기했다. 처음부터 그만큼 결심이 굳건하지 못했던 탓이리라. 굳은 결심에 금이 가자 금새 둑이 무너졌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자신감은 간 곳 없고,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소시민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견디기 힘든 방황의 시기였다.



긴 방황 끝에 1994년 가을,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선배로부터 국회의원 정책비서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마침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 결정하기 전에 우선 국감을 도와주기로 했다. 운동권 출신의 야당 의원으로 상임위는 환경부와 노동부를 대상으로 하는 환경노동위원회였다. 국감 기간 전국을 돌며 각 지역의 환경청과 노동청을 대상으로 환경과 노동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하수종말 처리시설의 미비로 인해 썩어가는 하천의 실태를 고발했다. 대기업 공장의 불법적인 산업폐수 무단 방류를 단속은커녕 도리어 감싸고 도는 공무원들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국회의원, 정치인이라면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던 내게 국정감사 활동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가슴 한켠에서 잠자고 있던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행정부를 감시하면서 법과 제도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길이 국회에 있었다. 다시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2-3년 지나면서 불타던 열정은 서서히 식기 시작했다. 100석도 안 되는 작은 야당으로 거대한 정부 여당에 맞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한계가 너무도 분명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대학 4학년때 처음 만났던 후배다. 한 해 후배였지만 나이는 동갑내기였다. 학창시절 동아리에서 선후배를 모두 잘 챙겨 ‘대모’로 불리던 친구였다. 2번째 구속의 이유가 된 ‘북한바로알기 자료집’을 경찰의 눈을 피해 그녀의 자취방에서 만들었다. 따뜻하고 세심한 마음 씀씀이로 함께 일한 우리들을 감동시킬 줄 아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서로에게 호감은 있었지만 알고보니 동성동본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 그래서 더 편한 선후배로 지냈다.



졸업 후 한동안 못 만났다. 국회에서 일을 시작한 뒤 몇 년만에 우연히 다시 만났다. 국회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 누나가 둘이 잘 어울린다며 적극적으로 중매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동성동본 문제는 해외에 가서 결혼하고 오면 된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들이댔다. 그 선배 덕분에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때마침 정부에서 이듬해 동성동본 혼인을 한시적으로 허용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했다. 호남출신인 아내를 지역감정에 물들어있던 완고한 집안 어른들이 반대할 건 불을 보듯 뻔했다. 다른 일로 상경한 부모님께 아내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사람부터 만나게 해 드렸다. 무척 호감을 갖는 눈치였다. 그날 밤 모든 걸 솔직히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하필이면...”이라며 한숨을 쉬시던 두 분이 금새 동의해 주셨다. “우리가 뻔히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네가 이런 선택을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 자식을 믿어주시는 두 분이 너무나 고마웠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신혼이었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정 하나로 사는 남편을 이해해주는 아내를 만난 건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다.

IP : 210.221.xxx.196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8.5.17 6:43 PM (59.6.xxx.219) - 삭제된댓글

    멋있다.ㅡ.ㅡ

  • 2. ㅋㅋㅋ
    '18.5.17 7:08 PM (122.38.xxx.224)

    읽다보니...좀 더 적극적인 윤동주 같은 느낌..

  • 3. ...
    '18.5.17 7:20 PM (218.236.xxx.18) - 삭제된댓글

    다른 이야기도 읽고 싶네요^^

  • 4. ...
    '18.5.17 7:29 PM (1.231.xxx.48)

    순수했던 시대의 순수했던 사랑 이야기네요.
    서로 호감이 있어도 동성동본이라 결혼까지 못 갈 걸 알기에
    아예 연애조차 시작하지 않았던 순수함...

  • 5. ...
    '18.5.17 8:26 PM (39.7.xxx.183)

    아내분 한다리 건너 아는 사람인데 미모는 김정숙여사님만
    못할지 몰라도 사람 그릇이 크고 천성이 밝습니다.
    아무하고나 잘 스며들듯 어울리고 내가 누구 부인이다
    이런거 없이 스스로가 멋진 사람이에요.

  • 6. ㅇㅇ
    '18.5.17 9:27 PM (210.221.xxx.196)

    39.7//딱봐도 밝아 보였는데 역시나네요. 아들둘도 바르고 밝아보이구요. 둘째아드님이 아빠를 많이 닮은듯..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856144 최근 만나면 피곤한 지인이 두명있는데.. 28 ... 2018/09/19 7,113
856143 5세 남아 공룡레고 추천부탁드려요. 2 레고 2018/09/19 840
856142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배경의 모티브, 프랑스 알자스 4 와아 2018/09/19 1,345
856141 추석에 지리산 종주 예정인데요, 일정 문의드립니다^^ 2 알려주세요~.. 2018/09/19 578
856140 미친 한겨레 트윗 내용좀 보세요 29 한결레 2018/09/19 2,638
856139 죽은 친구가 꿈에 뭘 주는데 1 반가웠어 2018/09/19 1,557
856138 교육부, 사립유치원회계 국가관리 포기 4 사립 2018/09/19 713
856137 정보 유출된 택지 8곳 예정대로 개발 4 ... 2018/09/19 1,137
856136 염증이 잘생기는데 뭘 먹을까요 24 사과 2018/09/19 5,595
856135 이해찬이 문프위해 어제 안 나간거래요? 30 .... 2018/09/19 2,908
856134 TV조선 진짜 쓰레기네요 6 나마야 2018/09/19 1,567
856133 1인용 소파 추천부탁드립니다. 2 1인가구 2018/09/19 1,364
856132 삶은계란 냉동실에 두고왔어요 3 ㅜㅜ 2018/09/19 2,078
856131 꿈꾸는게 기대되는 분들?! 2018/09/19 363
856130 빨갱이 가고 작전세력 왔네요. 26 ... 2018/09/19 711
856129 이해찬 노쇼하고 수습은 문프가 27 .. 2018/09/19 2,488
856128 옷장정리 옷걸이 살까요? 6 .. 2018/09/19 1,823
856127 [KTV Live]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둘째날 1부 2 ㅇㅇㅇ 2018/09/19 495
856126 관세청에서 은퇴하는 탐지견 분양합니다. 5 ㅇㅇ 2018/09/19 1,188
856125 신랑감이 삼성반도체 다닌다면 그게 자랑거리인가요? 30 대기업 2018/09/19 7,162
856124 앙돼!!!걍 도람뿌 줘라!! 11 큰 일. 2018/09/19 1,238
856123 사업자등록후 첫매출 어떻게 하는지 질문있어요 2 ㅇㅇ 2018/09/19 655
856122 1주택자 자녀교육 목적 신규 주택대출·2주택 보유 허용 11 ... 2018/09/19 1,262
856121 김어준의 뉴스공장 주요내용 (페북 펌) 22 ... 2018/09/19 1,170
856120 만약에 김정은이 방남 한다면? 17 아우~ 2018/09/19 2,057